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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물에 방생하며 놓아준 어린 물고기의 신기한 보은

기자명 법보신문

포교원장상-김옥순

▲ 그림=근호

설 지난 후 첫 번째 도래하는 말날에 장을 담그면 맛이 좋다는 길일이다. 새벽부터 부지런을 떨었다. 작년 시골 선영 아래 밭에서 농사지은 콩으로 빚은 메주로 정성을 다해 담가 놓고 방생법회 참석을 위해 몸을 정갈하게 하려고 물을 대야에 받는데 남편이 잔소리 해댄다.

수십년 매월 정례적 실시하는
방생법회 빠지지 않고 참석

죽이지 않는 것도 중요하지만
죽어가는 목숨 살리는 것 중요

물고기 방생하며 평안을 발원
부처님 가피로 모든 것 원만

어린 물고기와 눈 마주칠 때
크고 작은 허물들 함께 반성

“아직 새벽바람이 찬데! 부처님도 이해 해줄테니 그냥 가라고! 당신 시어머니 제수 음식 만들기 전 정갈하게 하신다고 찬물에 머리를 감다 자식들 임종도 지켜보지 못한 채 부처님 곁으로 가셨다고 조심하라고!”

어느새 그런 나이가 돼 가는구나. 시린 새벽, 씁쓸히 울다 웃다 했다. 가방을 챙기며 ‘여보, 영윤 할아버지 시주돈 좀 주세요’라고 남편에게 말했더니 ‘내가 돈이 어디 있어’ 불끈 하면서도 슬며시 봉투를 던져 놓고 출근을 한다. 버스에 자리를 잡고 가방 속 봉투를 뒤져보니 생각보다 많은 돈이었다. ‘영윤 할아버지 고맙습니다’라고 남편에게 전화를 했다.

수십 년째 다니는 청주 용화사다. 도심 속이며 청주의 젖줄인 무심천을 앞에 두고 있는 오래된 고찰이다. 이 절에서 매월 정례적으로 실시하는 방생법회! 매회 빠지지 않고 참례를 한다. 올해는 처음 실시하는 방생법회다. 간절한 소망을 안고 다녀왔다.

방생. 사람 목숨도 중요하듯 다른 생물들의 목숨도 마찬가지다. 목숨을 죽이지 않는 불살생계도 중요하지만 죽어가는 목숨을 살리려는 방생의 공덕 또한 무량한 것이라고 주지스님께서 말씀한다. 무병장수, 자손창성, 길한 기운이 많이 올라와 보이지 않는 세계의 도움으로 공덕을 쌓을 수 있다고 했다. 의식적이 아닌 마음을 깨끗이 비우고 다스린 후 진정한 방생의 의미를 기원한다면 더할 나위 없을 것이다. 늦은 저녁 집에 돌아와 영윤 할아버지에게 방생담을 늘어놓았다.

대구 송림사. 신라 때 축조된 국보 189호 석탑에서 탑돌이를 하며 가정의 평안을 간절히 기원 드렸다. 몇 바퀴를 돌았는지 잊어 버렸다. 팔공산 부인사에서 108배를 올리고 은해사로 오르는 길 옆 저수지에 준비해간 물고기를 풀어놓으며 마음의 평안과 가족의 행복을 위해 진정한 방생의 예를 갖추고 ‘명이 다할 때까지 잘 살아라’ 기원하며 마음까지 물 속 깊이 담가 놓았다. 풀어놓은 물고기 한 마리가 되돌아와 멈칫멈칫 하다 내 발끝을 툭툭 치고 돌아서는 그 눈과 마주친 순간, 온몸이 상기되며 가슴 떨리는 희열이 요동쳐 멍하니 서 있었다. 옆에서 지켜보던 주지스님이 “대연심 보살님, 금년에는 좋은 일만 가득하려나 봐요. 저 놈이 고맙다고 인사하고 가네요”라고 덕담을 건넨다. 방생법회 도량과 공덕으로 큰사위 승진하여 남미지사장으로 발령 났다는 소식을 들었다. 막내딸은 둘째 아들 낳았다는 기쁜 소식을 전해왔다.

끊이지 않는 내 이야기에 영윤 할아버지 마주 보며 웃는다. 눈에 보이는 형식적인 방생이 아닌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방생의 참뜻을 통해 나 자신부터 진정한 자비행을 실천하겠다 다짐했다. 생물의 방생에서 더 나아가 일체 중생을 돕는 행(行)으로 이어지도록 부단한 기도를 드리려 한다.

마음속으로 기다려왔던 소망이었다. 아들네가 가족을 데리고 외국으로 연구차 출국한다는데 준비는 다 됐는지, 살 집은 마련이 되었는지, 아이들 학교는 알아봤는지, 잔소리를 했더니 답이 왔다. “걱정마세요 어머니. 저도 50이 낼 모래인데 알아서 할게요.” 되받는 자식의 말에 섭섭하기도 하고 부모님 살아있을 때 내 자신이 했던 대로 되받는구나 싶다. 이제 나이를 먹은 것이고 그것이 삶이고 윤회이던가.

부처님께서 삶이 행복하다는 투정이구나 야단치신다. 그리고 자찬이로구나 하신다. 마음을 들켰나 보다. 우리 내외가 밤늦도록 두런거리는 소리에 부처님께서 눈을 흘기신다. 나이 먹더니 말이 많아지는구나. 나무관세음보살.

중요한 수술 결과를 기다린다. 앞집에서 물고기 잡아 왔다고 가져다 주길래 받아 놓았는데, 살아서 펄쩍펄쩍 뛴다. “그 물고기 어찌 하려하오.” 영윤 할아버지 이마를 잔뜩 찡그리고 질책한다. “얼마 전 방생 다녀온 보살님!”

머뭇거렸더니, 다시 한 번 아프게 소리한다. “무심천에 풀어주시오.” 많이 부끄럽고 미안했다. 순간의 생각이 어지러워 고개를 떨궜다. '고맙습니다. 내가 가는, 가야할 길을 가르쳐 줘서.’

한 걸음에 무심천으로 달려가 잠깐의 잘못 생각을 용서해달라는 기도를 올리며 부끄러운 마음을 잠시 다스렸다. 몰려 있는 오리 떼들을 멀리 보내고 물고기 하나하나 정성을 다해 물속으로 넣어 줬다. 그 중 제일 어린 듯한 한 마리 머뭇머뭇 물가에 와 내 주변을 돌다 사라진다. 그 어린 물고기와 눈이 마주칠 때 살아오며 잘못한 모든 일들에 대한 후회와 반성이 함께 몰려온다. 나무관세음보살. 잠시 품었던 마음속 죄책감, 조금이나마 가시는 듯하다. 바람결에 꽃 향이 실려 온다. 무심천 가로수길 벚꽃향기.

물고기가 사라진 물가에 앉아 다시 한 번 이별을 고하고 오는데, 전화벨이 울린다. “옥순 어머님, 여기 병원인데요. 수술 결과 아무 이상 없습니다. 축하드려요.”

영윤 할아버지에게 전화했다. “법력은 있다고 당신이 놓아 주라고 한 물고기 보은인가봐.” 수선 떨었더니 남편이 웃는다. “마음입니다. 마음이에요. 허허허.”

깨달음 얻었더라도 자만하지 말고, 더 정진하여 더욱 더 큰 깨우침을 얻거라. 그것이 진정한 구도의 길인 것을.

돌아오다 용화사에 들렀다. 108배 올렸다. 다리도 무릎도 가볍다. 염불하시던 노스님, “대연심 보살님! 왜 그렇게 예불을 쉬지도 않고 하세요? 좋은 일이라도 있으신가 봐요.” “예, 스님.” 살짝 웃으며 법당을 나섰다. 범종루 누각으로 올라가 사물을 찬찬히 살펴봤다. 범종, 법고, 운판, 목어. 오늘 특히 목어가 눈에 들어온다. 잠 잘 때도 눈을 감지 않는 목어, 목탁. 밤낮없이 불심에 정진하라는 뜻이다. 다시 다짐한다. 새로운 각오 새로운 마음으로 정진하겠노라고.

늦은 밤, 뒤척이다 잠이 들었는데 용화사 범종루에서 울리는 대종소리에 새벽을 맞이했다. 덩, 덩, 덩…. 종소리를 타고 부처님의 자비로운 음성이 귓속을 타고 든다. ‘대연심 보살, 수고 많이 하셨소.’

오늘 하루도 참된 하루가 될 것이다. 나무관세음보살. 


[1390호 / 2017년 5월 3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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