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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통으로 다가왔다가 인생을 바꿔준 ‘부처님의 초대장’

기자명 법보신문

중앙신도회장상-강아람

▲ 그림=허재경

그날 밤은 서른 여섯, 내 생을 통틀어 가장 어둡고 깊고 기나긴 밤이었다. 두려움이라는 단어는 그 무게가 너무 가벼웠다. 슬픔이라는 말은 사치스러웠고 오히려 공포라는 말이 그나마 제일 어울리는 밤이었다. 그 날은 한 달 전부터 가슴에 잡히던 혹을 떼 조직검사를 한 날인데 악성으로 판명되어 암환자가 된 첫 날이었다. 그리고 내일은 암세포주위로 더 넓게 절제수술을 진행할 예정이었는데 다른 쪽 가슴과 림프절에도 의심스러운 소견이 보인다고 하여 함께 검사를 진행하기로 한 상태였다. 대학 입학과 취업 그리고, 결혼에 이르기까지 한 번의 시련도 없이 곱게 포장된 고속도로를 달리듯 무난하게 살아온 나의 서른여섯 삶에 불현듯 죽음이 찾아와서는 아홉 살 딸아이를 두고 떠나야 한다며 길고도 어두운 밤을 잔인하게 뒤흔들고 있었다.    

서른여섯에 진단받은 ‘암’
죽음의 그림자 엄습했지만
마음 속에선 “뭐가 어때”
당찬 목소리 크게 올라와

딸 아이와 도서관 들렀다
월호 스님의 책 읽은 뒤
‘세상에 없을 나 사랑한다’
글귀에 부처님과 인연 시작

‘죽음은 옷바꿔 입는 것’
법륜 스님 즉문즉설에서
삶의 희망과 기대감 생겨

정신을 차려야 했다. 도망갈 곳이 있다면 지구 끝이라도 도망가고 싶었지만 도망치면 칠수록 두려움이 커질 거라는 것을 직감적으로 알 수 있었다. 도망가기를 포기하고 있는 힘껏 도망쳐오던 곳을 향해 뒤돌아 나를 몰아붙이는 그것을 정면으로 마주보았다. 심호흡을 크게 하고는 생각했다.

“상황을 냉정하게 바라보자. 두려워 피하지 말고 정면으로 바라보자….”
‘암’이란다. 내일 수술을 할 것이고 림프절로 전이가 됐을지도 모른다.
“그래, 몇 년 전부터 고질병으로 앓아왔던 왼쪽 날개 뼈 통증이 그냥 통증이 아닌 암 전이로 인한 것일 수도 있다는 것이 가장 두려운거야. 무엇이 두려운거야? 딸아이? 죽음?”

가슴 먹먹한 아픔이 느껴졌다. 엄마 머리카락을 만져야지만 잠이 드는 아홉 살 딸아이를 비롯하여 부모님, 남편, 동생, 시댁식구들 그리고, 친구들 얼굴이 하나 둘 스쳐 지나갔다. 이 모든 이가 나를 그토록 사랑해주는 사람들이건만 나를 죽음으로부터 건져 올려줄 이가 하나도 없단 말인가.
죽음의 그림자가 나를 거의 삼켜버렸을 즈음, 마음 깊은 곳에서 오기가 일어나며 당찬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그래, 내일 죽는다고 치자. 그래서 뭐? 뭐가 어떤데?”

그 순간 기이한 일이 벌어졌다. 그토록 외롭고 두렵던 마음이 어느 새 고요해지면서 이상하게도 평온해졌다. 몸의 경련도 멈추었다. 얼굴을 떠올릴 때마다 가슴을 후벼 파던 가족들의 얼굴이 더 이상 아픔으로 다가오지 않았다. 그들의 얼굴을 모두 떠올리고 난 후 마지막 내 가슴에 남은 느낌은 오로지 이것뿐이었다.

“홀~가~분”

솔직히 말해 두 가지는 아쉬웠다. 엄마 없이 자랄 아홉 살짜리 딸아이 그리고, 내가 좀 더 나은 사람이 될 수 있을 것 같은데 차마 그 기회를 만나보지 못하고 떠난다는 점. 이 두 가지는 아쉬웠다. 하지만 이내 곧 “전자는 딸아이가 감내해야할 몫이니 미안하지만 내가 어찌할 수 없는 일이고 후자는 내 명이 그렇게 정해져 있으니 이제와 원망하고 아쉬워한들 도리가 없는 일이다”라고 한 생각을 돌리고 나니 기적처럼 홀가분해졌다.

“다행히 두 번째 수술에서는 다른 곳으로 전이가 안 되었다”는 결과를 들었다. 수술도 무사히 끝내고 항암치료를 시작했다. 초기에 발견되어서 그나마 불행 중 다행이었지만 어찌된 일인지 나는 두 번째 화살을 고스란히 맞으며 첫 번째보다 훨씬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항암치료 중에 병원에서 본 재발 환우들의 모습을 자꾸 떠올리며 두려움에 떨고 있었던 것이다. 두통이라도 있을 때면 뇌암인가 싶고, 어깨라도 결리면 뼈암인가 싶었다. 마음이 서서히 병들어 가고 있었던 것이다. 1차 항암치료가 끝나고 15일이 지나자 머리가 빠지기 시작했다. 머리를 삭발하고 두건을 쓰면서 전형적인 암환자로의 모습이 완성되었다. 거울을 볼 용기가 나지 않았다. 항암치료로 인해 체력이 소진되어 하루 종일 잠만 잤다. 아이가 학교에서 돌아와도 간식 하나 챙겨주지 못했다. 남편은 퇴근해서 쉬고 싶기도 하련만 저녁 준비를 하고 설거지, 청소, 빨래를 도맡아 하느라 여념이 없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가족들에게 짐만 되는 것 같아서 우울해졌다. 면역력이 거의 바닥인 상태라 외출도 불가했다. 

그렇게 며칠을 보냈을까. 그 날도 여느 때와 같이 우울한 마음으로 눈물 흘리며 창밖을 내다보고 있는데 마음 깊은 곳에서 내게 말을 건네 왔다.

“강아람! 잘 살고 있는거야? 힘들게 선물 받은 시간인데 잘 살고 있는 거냐구?”

하지만 차마 잘 살고 있다고 대답할 수 없었다. 그렇지. 재발한다 해도 내가 뭘 어쩌겠는가? 그렇다손 치더라도 어쨌든 지금은 이렇게 살아 있는데 뭘 두려워하는가? 얼마나 힘든 시간을 보내며 선물 받은 시간인데 내가 이렇게 쉽게 무너지면 안 되지 싶었다. 서둘러 세수를 하고 가발을 눌러쓰고 딸아이의 학교로 향했다. 수술 전에는 매일 하교시간에 맞춰 아이 학교 도서실에 가서 딸아이와 함께 책을 빌려오곤 했다. 딸아이에게 예전의 일상을 선물하고 싶었다. 가발을 눌러쓴 엄마의 모습에 조금은 당황한 듯 했지만 집에서 축 쳐져 잠만 자던 엄마를 따스한 햇살과 함께 학교에서 만나니 싫지만은 않아 보였다. 딸아이와 함께 도서실로 향해 책을 둘러보는데 내 눈과 마음과 걸음을 멈추게 하는 책이 거기에 있었다. 이제 생각해보면 그 날 그 책이 나를 흔들어 깨운 것이 아닌가 싶다. 바로 월호 스님의 ‘언젠가 이 세상에 없을 당신을 사랑합니다’였다.

언젠가 이 세상에서 없어질까봐 내내 두려움에 떨며 울고불고 우울해하다가 겨우 한 걸음 나왔는데 ‘언젠가 이 세상에 없을 당신을 사랑합니다’라니, 그 책은 나에게 ‘언젠가 이 세상에 없을 강아람, 당신을 사랑합니다’라고 계속 속삭이고 있었다. 서러움, 외로움, 두려움이 한꺼번에 쏟아지면서 눈물이 맺혔다. 언젠가 이 세상에 없을 나를 사랑한다고 말씀하시는 이 스님은 무슨 말씀을 하실까 궁금했다. 망설임 없이 그 책을 빌려서 집에 돌아왔다. 그렇게 부처님 가르침이 우리 집에 와 주셨다.

불법이 궁금해지기까지는 그렇게 오래 걸리지 않았다. 머리말을 몇 줄 읽어나갔을 때 ‘죽음이란 그저 옷을 바꿔 입는 것일 뿐’이라는 구절에서 눈길이 멈추어 더 이상 읽어 나갈 수가 없었다.

지난 몇 달간 죽음이 그렇게도 두려워 몸부림을 치며 괴로워했는데 죽음이 그저 옷을 바꿔 입는 것일 뿐이라고, 불교에서는 죽음을 이렇게 본단 말인가? 어쩌면 불교에서 길을 찾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희망과 기대가 생겼다.

내가 아프다는 소식을 듣고 여러 지인들이 “종교를 가지면 좋다”며 종교를 권해주었을 때에도 미동도 않던 나였다. 두 번째 수술 전 날 죽음을 정면으로 마주했던 그 순간에도 이상하게 딸아이와 내가 만나지 못한 미래의 시간이 아쉬울 뿐, 죽어서 좋은 곳에 가고 싶다는 생각은 조금도 들지 않았다. 만약 그랬다면 믿기만 하면 천국에 갈 수 있다는 타종교로 달려갔겠지만 죽음이 그토록 두렵고 공포스러웠던 그 순간에도 이상하게 그런 생각은 조금도 들지 않았다. 아마도 부처님으로부터의 초대장을 받았음이리라.

그 때는 아직 항암치료 중이라 밤에 잠을 못 이루는 날이 많았다. 아프기 전에는 아이와 남편이 모두 잠든 조용한 밤 시간을 그토록 사랑했던 나였지만 몸과 함께 마음도 나약해졌는지 홀로 깨어있을 때 어김없이 찾아오는 죽음의 그림자 때문에 나에게 밤은 너무나도 아득하고 두려운 시간이었다. 그렇게 외로움, 두려움과 홀로 마주하고 있을 때 또 다시 부처님께서 당신의 소중한 제자 한 분을 보내주셨다. 바로 법륜 스님의 팟캐스트를 듣게 된 것이다. 전부터 팟캐스트를 즐겨들었는데 그 때마다 ‘법륜 스님의 즉문즉설’은 인기순위 3위권 안에 꼬박꼬박 들어 있었다. 하지만 그 전까지는 어쩐지 스님이 하시는 말씀은 다 지루하고 똑같을 것 같다는 고정관념 때문에 인연이 닿지 않았었다. 그런데 그 날은 어쩐지 마음이 동하여 듣게 된 것이다. 그렇게 법륜 스님과 인연이 되어 400여회에 달하는 즉문즉설을 모두 듣기까지도 오래 걸리지 않았다.

법륜 스님 팟캐스트를 들은 이후로는 재발과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 일어날 때마다 더 이상 울지 않았다.

그런데 산 중턱에서 만족하며 머무르려는 나에게 산 정상까지 어서 가라는 부처님의 또 한 번 재촉이 있었다. 항암치료를 끝내고 방사선 치료를 위해 매일 두 시간 거리를 오가며 법륜 스님의 즉문즉설을 들을 때였다. 육도윤회에 대한 질문에 법륜 스님이 답변을 하셨다. 지옥, 아귀, 수라, 축생, 인간, 천상의 여섯 갈래길을 윤회하는 중생의 삶을 설명하셨다. 그 부분을 들으며 나는 “죽어서 가는 세상을 어찌 알겠는가? 뭐라고 말한들 사람으로서는 확인할 길이 없으니 그저 믿는 수밖에…. 이런 미지의 세계를 말해야 사람들로 하여금 신비로움과 두려움을 일으켜 종교가 유지되는 거겠지”라며 식상한 이야기가 나올 거라고 큰 기대없이 듣고 있었다. 그런데 법륜 스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육도윤회는 죽어서 가는 세상이 아니라 지금 여기에서 우리가 겪는 세상을 이야기 한다는 것이었다. 어리석음에 빠져 있으면 축생의 삶이요, 성내는 마음에 빠져있으면 아수라요, 탐하는 마음에 빠져있으면 그것이 곧 아귀의 삶이라는 것이다.

“아하! 참으로 그렇구나.”

괴로움에 빠져있으면 그 곳이 곧 지옥이고 일이 뜻대로 잘 풀리고 풍족하면 그 곳이 곧 천상의 세계인 것이다. 

“그러한 경지? 바로 해탈!”

이 말씀을 듣는 순간 머리가 아찔하여 걸음을 옮길 수가 없어 한참을 길에 멈추어 서 있었다.

“도대체 뭐야? 불교, 도대체 뭐지? 내가 알던 불교는 불교가 아니었어. 꼭 알아봐야겠어.”

그렇게 혼란스러우면서도 간절한 마음으로 조계사 기본교육에 이어 불교대학에 입학했다. 첫 개강일은 방사선 치료가 끝난 바로 다음 주 월요일이었다. 일정이 하루도 겹치거나 떨어져있지 않은 것이 신기했다. 항암치료와 방사선치료를 받으러 5000번 버스를 수 없이 타고 다녔었는데 신기하게도 조계사를 가려면 그 버스를 타야했다. 조계사는 병원에서 두 정거장을 더 가야했다. 개강 첫 날, 병원에 갈 때면 늘 내려야했던 그 정거장을 지나치던 순간을 기억한다. 병원 앞 정거장이 뒤로 멀어져가는 모습을 보며 버스 안에 앉아 마음 속으로 되뇌었다.

“부처님! 이제 저는 아픔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부처님 가르침을 배우렵니다. 부지런히 배워 언젠가 이 세상을 떠나는 그 날, 여여(如如)하게 그렇게 떠나고 싶습니다.”

죽음을 한 번 마주한 후로 나는 하루에도 몇 번씩 스스로에게 묻는다.

“오늘 밤에 죽는다고 해도 이렇게 살거니?”

그러면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대답한다.

“5분 후에 죽는다고 해도 이렇게 살거야. 부처님 가르침 듣고, 읽고, 배우고, 행하고, 전하면서 이렇게 살거야.”라고.

서른 여섯, 어린 나이에 받은 암진단은 너무나도 암담했다.

부처님 가르침을 만난 지금은 이렇게 이른 나이에 암 진단을 받은 것에 너무나도 감사하다. 그것은 병이 아니라 부처님으로부터의 초대장이었다.


[1390호 / 2017년 5월 3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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