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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격 회복 위한 노력 필요하다

지난 겨울동안 우리 국민들은 ‘이게 나라냐!’라는 구호를 자주 접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국격(國格)이라는 단어가 자주 등장하기도 하였다. 계량화하여 설명할 수는 없겠지만, 국격은 나라가 지녀야할 상식적인 수준의 품격을 이르는 말이다. 오랜 혼란기를 거쳐 우리는 제19대 대한민국 대통령을 새롭게 선출하였다. 이제 막 임기를 시작한 문재인 대통령은 그동안 기회가 있을 때마다 나라를 나라답게 만들어가겠다는 의지를 표명하였다. 빠른 시일 안에 나라다운 대한민국의 모습, 추락한 대한민국의 국격 회복이 이루어질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최근 들어 우리 불교계에서도 ‘사격’(寺格)이라는 단어를 자주 사용하고 있다. 사격은 과거 전통시대 불교에서 사용되지 않던 용어이다. 단정할 수는 없지만, 사격은 일제강점기 이른바 본말사법이 제정·시행되는 과정에서 처음 도입된 개념이 아닐까 한다. 다분히 제도적 성격을 띤 상태에서, 그것도 일본불교의 영향 속에서 자리를 잡게 된 표현이라는 문제점을 지니고 있지만, 이제 사격은 특정 사찰이 지녀왔던 또는 현재 지니고 있는 모습 전체를 아우르는 말로 통용되고 있는 현실이다.

불교 전래 이래 한국의 사찰은 존폐와 성쇠의 역사를 거듭하며 오늘에 이르고 있다. 물론 우리의 많은 사찰들은 숱한 전란과 자연재해를 겪으면서, 특히 500여년이라는 조선불교 암흑기를 거치면서 역사 속에 사라져가는 아픔을 겪어야 했다. 하지만 아직까지 ‘전통사찰보존법’이라는 법률에 의해 법적으로 보호되고 있는 전통사찰만 해도 무려 965개에 달한다. 이들 전통사찰은 결코 적지 않은 세월동안 사격을 형성하여 왔다. 그런데 이들 전통사찰의 현재 모습에서 사격 계승을 위한 노력이 별로 보이지 않고 있어 안타까운 느낌이 든다.

청도 운문사는 한국 현대불교에서 ‘최고의 비구니 교육도량’이라는 사격을 지니고 있다. 이곳 운문사승가대학에서 배출된 스님들은 한국 비구니승가뿐 아니라, 한국불교 전체의 발전에 있어 그야말로 혁혁한 공을 세워왔다. 하지만 최고의 비구니 승가교육 도량이라는 운문사의 사격은 현대 이후에 새롭게 형성된 것임을 유념할 필요가 있다. 고려시대까지의 운문사는 ‘가지산문의 중심도량’이자 ‘조계종 중심도량’이라는 사격을 지니고 있었다. 12세기의 원응국사 학일, 13세기의 보각국사 일연은 당대를 대표하는 선승이었다. 이들 고승이 주석하던 시절의 운문사는 분명 나라 전체를 대표하는 ‘선찰’로서의 사격을 지니고 있었다. 

모악산 금산사는 7세기 후반 무렵부터 14세기 후반에 이르기까지 유식학을 연찬하는 유식도량으로서의 사격을 뚜렷하게 간직하고 있었다. 7세기 후반에는 동아시아의 대표적인 유식학승 의적이 주석하고 있었으며, 14세기는 원명국사 해원과 그의 문도들이 이곳에서 유식학을 연찬하고 있었다. 금산사는 또한 진표율사 이후 오랜 세월동안 미륵성지로서의 위상도 간직하고 있었다. 하지만 ‘유가종찰 금산사’ ‘미륵성지 금산사’라는 과거의 사격은 조선시대를 거치면서 상당 부분 희석되었으며, 현대 이후에도 이러한 사격은 온전하게 회복되지 못하고 있다.

전국에 산재하는 전통사찰 가운데 이처럼 뚜렷한 사격을 지니고 있는 도량은 결코 적지 않다. 물론 시대에 맞게 새로운 사격을 형성해가기 위한 노력도 중요하다. 이러한 관점에서 본다면 과거의 사격 전통을 중시하고 그것을 계승하자고 주장하는 것은 자칫 고루한 일로 여겨질 수도 있다. 하지만 이같은 노력은 결코 ‘복고’적 의미를 지니는 일이 아니다. 조선시대 권력에 의해 강제적으로 단절될 수밖에 없었던 사격을 되살리는 일은 복고가 아니라 ‘복원’의 의미를 지니는 것이기 때문이다.

전통사찰은 전통사찰다워야 한다. 나라를 나라답게 만들어가기 위한 노력처럼, 전국 곳곳에 자리하고 있는 전통사찰을 전통사찰답게 가꾸어가기 위한 우리 불교계의 노력이 그 어느 때보다 절실한 시점이다. 전통사찰에서 행해지는 각종 불사가 부디 사격을 존중하는 상식의 틀 속에서 진행될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가져본다.
 
김상영 중앙승가대 교수 kimsea98@hanmail.net
 

[1391호 / 2017년 5월 17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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