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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 너와 내가 만나 숲이 되는 방법-상

기자명 김용규

더없이 아름다운 5월 숲 찬찬히 바라보세요

숲에 아름답지 않은 날 언제 있으랴마는 숲의 사계 중 가장 찬란한 때를 꼽아보라면 나는 단연 5월이라 주장하고 싶습니다. 추운 날과 중첩하며 피어났던 봄꽃들 자취도 없이 모두 사그라질 즈음 5월의 숲이 우연 같은 필연으로 찾아옵니다. 5월 숲의 찬란함은 먼저 소리로 오고 빛깔로 오고 바람으로 오고 어느 순간 환장할 향기를 토해내며 찾아옵니다.

소리·빛·향기로 찾아오는 5월 숲
철새들은 높고 고운 소리로 노래
형언할 수 없는 색·향으로 가득
우리 삶 스스로 찬란한 숲 닮아야

먼저 소리부터 볼까요? 들리지 않던 새들의 노래 소리가 숲 사방의 허공을 가르고 오가면 분명한 5월입니다. 철새들의 노래 소리는 상대적으로 높고 곱습니다. 철새들에 비하면 텃새들의 소리는 소박하다 해야 옳을 것입니다. 어쩌면 여름 한 때에 찾아와 짝을 짓고 자식을 키워 떠나야 하는 철새들의 절박함이 그들의 노래를 그토록 곱게 만든 것이 아닐까 나는 추정하고 있습니다. 5월 초입에 가장 분명하게 들려오는 철새 소리의 하나는 단연 꾀꼬리의 노래 소리입니다. 꾀꼬리의 노래는 얼마나 특별하고 아름다운지 아찔한 느낌마저 갖게 합니다. 휘파람새는 또 어떻든가요? 오죽하면 새 이름을 휘파람새로 지었을까 싶을 만큼 휘파람을 잘 부는 새입니다. 60대 이상의 남자들에게는 휘파람을 불며 어느 여인의 관심을 일으키던 젊은 날의 장면이 기억으로 남아 있을 것입니다. 휘파람새만큼은 아니어도 호랑쥐빠귀 소리 역시 절창입니다. 검은등뻐꾸기며 소쩍새며 뒤를 이을 철새들의 노래로 차차 숲은 채워집니다.

5월 숲의 빛깔이야 말해 무엇 하겠습니까? 연두로 차올라 한여름 신록을 향해 더듬어 가는 다종다양 5월 나뭇잎들의 아름다운 색을 무슨 말로 그려내야 할지 나는 잘 모르겠습니다. 숲을 가까이 두고 가만히 앉아 이  즈음의 숲 색을 보노라면 내가 인간으로 살아있다는 것이 얼마나 큰 호사인지 자주 느끼게 됩니다. 길 가장자리에 이팝나무나 칠엽수 마로니에가 피면 숲 가장자리에는 아카시가 피고 찔레가 피고 이윽고 오동나무가 제 꽃을 피웁니다.

상아빛 아카시나무 꽃의 향기는 철새들의 노래만큼이나 아찔하고 새하얀 찔레꽃 노란빛 암술에 코를 가져가면 마치 그 향기로 온 몸이 가득 채워지는 것 같은 때가 바로 5월의 숲입니다. 그리고 5월의 바람이 붑니다. 도시에서야 피하고 싶은 황사와 미세먼지로만 기억되는 바람이겠지만 소나무들은 그 바람을 기다립니다. 이윽고 마땅한 날에 적당한 바람이 찾아오면 소나무는 제 수꽃가루를 방사합니다. 수컷의 정자가 자궁이라는 공간을 유영해 가듯 소나무들의 정자가 숲의 허공을 헤엄칩니다. 인간들이 송홧가루라고 부르는 그 소나무들의 수꽃가루가 바람을 타는 모습을 보면 자칫 산불 초기의 연기가 아닐까 의심하리만치 그 밀도와 형상이 참으로 대단합니다.

이따금 멈추고 조금 찬찬히 보세요. 숲은 더없이 아름답습니다. 특히 5월의 숲은 그렇게 바람으로 오고 빛깔로 오고 소리와 그윽한 향기로 채워지며 눈부십니다. 그리고 생각해 보세요. 저것이 어떻게 가능할까? 숲에는 이념이 없는데, 법도 없고 규칙도 없는데, 숲은 어떻게 저렇게 스스로 찬란해지고 향기로우며 그윽함을 향해 나갈 수 있는 것일까? 우리의 삶이 저 숲을 닮아 저마다 스스로 찬란해지고 향기로워지고 그윽해질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그 저마다가 만나 숲을 이룰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내가 좋아하는 정희성 시인도 일찍이 비슷한 질문을 했습니다. 1972년 발표한 ‘저문 강에 삽을 씻고’라는 시집에 1970년 한 신문에 발표한 ‘숲’이라는 시가 실려 있습니다. 전문이 이렇습니다. 

당시 스물여섯 살의 젊은 시인이 묻고 있습니다. 나무들은 제가끔 서 있어도 숲인데, 우리 인간은 왜 서로가 만나 숲이 되지 못하느냐고. 숲에 머물고 숲을 참구하며 살고 있는 내게도 이 물음이 화두였습니다. 십여 년쯤 흘러 몇 가지 대답을 갖게 되었습니다.  

김용규 숲철학자 happyforest@empas.com
 

[1391호 / 2017년 5월 17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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