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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해빙소(瓦解氷消)

5·18, 그리고 대통령의 눈물

5·18은 항상 아픔이었다. 초등학교 5학년이었던 1980년 5월, 학교에 가지 않아도 된다는 방송에 너무 좋았다. 어머니는 집 밖을 나가지 못하게 했다. 수일이 지나고 가족은 광주 외곽으로 피난을 떠났다. 외지에서 일하시던 아버지를 대신한 어머니의 결단이었다. 막내를 업고 보따리를 든 어머니와 연로하신 할아버지, 그 뒤를 자식들이 따랐다. 버스가 다니지 않아 한나절을 걸었다. 거리는 살풍경이었다. 불타는 버스와 붉은 글씨의 현수막, 대학생들과 청년들이 독재타도를 외쳤고 도로에는 수많은 사람들이 모여 박수를 치고 함성을 질렀다. 주먹밥과 음료수가 청년들에게 건네지고 어디서 들리는지 알 수 없는 총성이 울렸다. 피 흘리는 부상자들이 실려 왔고 헌혈을 받았다. 어머니의 얼굴표정은 심각했다. 할아버지도 말이 없으셨다. 그날 저녁 친척집에 도착했다. 깊은 밤, 갑자기 하늘엔 불꽃이 날아다니고 헬기 소리가 들리고 총소리가 들렸다. 일대에 공수부대가 투입됐다는 말을 들었다. 아침 일찍 대문 주변에 그림자가 비쳤다. 교련복을 입은 청년이 서성거리고 있었다. 총성의 현장에서 낙오됐다고 했다. 겁에 질린 청년의 입술은 잿빛이었다. 아침을 차려줬지만 잘 넘기지 못했다. 불안해하면서도 우리가족이 피해를 볼까봐 결국 집을 나섰다.

37주년 5·18광주민주화운동 기념식의 여운이 가시지 않는다. 문재인 대통령은 탄생과 함께 아버지를 잃어 생일이 아버지의 기일이라는 기막힌 인생을 살았던 피해자를 직접 안아 주었다. 눈시울 붉히며 함께 눈물을 흘렸다. 그 모습에 국민들이 함께 목 놓아 울었다. 지난 9년, 야만의 세월에 숨죽였던 울음이었다.

와해빙소(瓦解氷消)라는 말이 있다. “기왓장이 부서지고 얼음이 녹는다”는 뜻이다. 문 대통령의 눈물에 지난 세월의 억울함, 답답했던 그 가슴 속 응어리가 조금씩 녹아내리는 듯했다.

대통령은 “5·18민주화운동의 정신을 헌법에 새겨 이 땅에 민주주의를 온전히 복원하겠다”고 약속했다. 그 약속 반드시 지켜지기를, 그리고 바라건대 교련복 앳된 그 청년이 무덤 속 역사가 아닌, 살아 숨 쉬는 우리 이웃이 돼 있기를 간절히 기원한다.

김형규 법보신문 대표 kimh@beopbo.com
 

[1392호 / 2017년 5월 24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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