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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일 불교교류’ 재검토해야

기자명 이병두

일본과 우리는 긴 역사에 걸쳐 ‘갈등과 원한’ 관계를 이어왔다. 멀리 임진왜란까지 들 것도 없이, 지난 세기 초반 35년 동안 저들에 강점당해 모든 것을 수탈당하였고 심지어 조상에게서 물려받은 고유한 말과 글 그리고 성씨(姓氏)까지 그들의 것을 강제로 사용하는 설움을 겪었다.

저들의 잔학한 행위에는 종교도 빠지지 않았다. 총칼에 앞서, 또는 총칼과 함께 선교사를 보내어 정신적 식민지로 삼는 서구 제국주의의 수법과 똑같이 일본의 종교, 특히 불교 각 종파는 경쟁적으로 한국을 포교 시장으로 삼고 침략의 첨병으로 앞장섰다.

천만다행으로 일제가 제2차 세계대전에서 패전한 뒤, 불교를 비롯한 일본의 각 종교와 국민은 제국주의 시절 ‘정교유착의 폐해’가 심각했다는 점, 구체적으로는 “종교가 해외 침략과 수탈의 첨병 역할을 마다하지 않거나 혜택을 누렸다”는 데에 공감하여 철저한 ‘정교 분리’를 시도하여 현재 전 세계에서 가장 모범적으로 정교 분리를 실천하는 국가로 인정받게 되었다.

우리와 일본이 우여곡절 끝에 1965년 ‘한일협정’을 체결하여 외교 관계를 정상화했다고는 하지만 가슴 속에 남아 있는 오래된 앙금은 결코 쉽게 가라앉을 수 없는 법이다.

“이런 상황을 영원히 이어갈 수는 없다”는 데에 인식을 함께 한 두 나라 불교계가 ‘순수한 문화 교류를 본격화하기로’ 합의하여, 지난 1977년 ‘한일불교문화교류협의회’ 제1차 서울대회를 개최하게 되었던 것이다.

그 뒤로 설사 양국 사이에 첨예한 외교 현안이 생기거나 국민감정이 들끓는 일이 있어도, 이 ‘교류대회’는 해마다 두 나라를 오가며 단 한 차례도 거른 적이 없었다. 그러나 올해 처음으로 이변이 생겼다.

애초 6월12~14일 속리산 법주사에서 제38차 대회를 개최하기로 하고 모든 준비가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었는데, 일본 쪽에서 ‘한반도 안보 정세 불안’을 이유로 연기(말로는 연기이지만 실제로는 취소)를 요청해 왔고 한국 불교계가 이것을 수용하였다는 보도가 나온 지 오래 되었다.

필자는 일본 불교계의 이번 요청을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다. 그뿐 아니라 그 요청을 그대로 수용한 한국 불교계에도 동의할 수 없다. 저들이 대회 연기 사유로 내세운 ‘한반도 정세 불안’은 일본의 아베 정부가 불안을 과장하여 일본의 재무장 명분을 만들고 장기 집권을 꾀하려는 국내 정치적 목적에서 만들어진 ‘관제 여론’일 뿐이고, 극우파 언론이 그것을 추종하는 데에서 비롯된 것이다. 여기에는 아시아 태평양 지역의 긴장을 고조시켜 무기 판매를 늘리고 지역 맹주의 자리를 이어가려는 미국의 국제 전략이 그 뒤에 있음은 물론이다.

그러나 일본 불교계까지 아베 정권의 들러리를 서겠다고 나서서 ‘교류대회’ 연기를 요청해온 사실은 동의는커녕 이해할 수도 없는 일이다. 이 기회에 한국 불교계는 “앞으로 한일불교교류뿐 아니라 한중일 3국의 불교 교류에서도 일본을 배제하는 방안을 적극 검토하겠다”는 단호한 뜻을 감추지 말아야 한다.

지난 2012년 6월 ‘세계불교도우의회(WFB)’ 여수 총회에서 티베트 대표 참석을 이유로 중국 대표단이 자리를 박차고 나가는 불상사가 있어서 ‘평화’와 ‘우의’를 목적으로 모인 세계 불교인들의 대회에서 이런 무례하고 몰상식한 행태를 보인 중국 불교계에 크게 실망한 적이 있었다.

일본 불교계가 아무런 근거도 없는 ‘한반도 정세 불안’을 이유로 40여년 동안 이어져 온 ‘교류대회’를 보이콧하는 상황을 그냥 넘어가면 안 된다. 다시 아시아 맹주 자리를 노리는 아베와 그를 추종하는 이들에게, 그들이 설사 불교인일지라도 끌려 다닐 수는 없지 않은가.

그리고 이번 사태를 계기로 한국 불교가 ‘한-일’ ‘한-중-일’이라는 좁은 마당에서 벗어나 아시아와 유럽을 비롯한 세계 불교 외교계에서 적극적인 역할에 나서는 좋은 기회로 삼기를 기대한다.

이병두 종교평화연구원장 beneditto@hanmail.net
 


[1393호 / 2017년 5월 31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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