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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4. 조오현의 ‘이 내 몸’

기자명 김형중

관념적 시상·시어에 머물지 않고
깨달음 얻어 자기의 실체 밝힌 시

‘남산 위에 올라가 지는 해 바라보았더니/ 서울은 검붉은 물거품이 부걱부걱거리는 늪/ 이 내 몸 그 늪의 개구리밥 한 잎에 붙은 좀거머리더라.’

출가자로서 자신 겸허히 성찰
구체적인 생물체를 통해 묘사
우주는 하숙집 인간은 나그네
무아 깨달으면 부처의 삶 시작

불교에서 나에 대한 올바른 인식이 무아(無我)이다. 중생은 나에 대한 아상(我相)과 아집(我執)으로 산다. 나에 대한 집착과 나라고 하는 생각 때문에 욕심과 성질을 부리며 산다. 그래서 고통이 생긴다.

본래 나는 없다. 오온(五蘊)이 공(空)하다. 나를 이루고 있는 색(色: 몸)과 수상행식(受想行識: 정신작용)이 본래 나라고 할 수 있는 실체〔自性〕가 없고 내가 아닌 여러 가지 요소들이 인연 따라 나타났다가 인연 따라 사라질 뿐이다. 그러나 어리석은 중생은 일시적으로 나타난 현상의 모습을 진짜 내 모습으로 착각하고 거기에 집착해서 천 년을 살 것으로 살아가고 있다.

불교에서 이 몸과 자신의 생각작용이 허망하고 무상하고 무아임을 깨닫고 삼독심으로부터 벗어나 사는 삶을 부처라고 한다. ‘금강경’ 사구게에서 “눈에 보이는 모든 모습(諸相)이 실제 모습이 아닌 줄을 알면(非相) 부처를 본다(?見如來)”고 하였다. 이상불(離相佛)이다.

오현(1934~현재) 스님의 ‘이 내 몸’은 깨달음을 얻고 자기 자신의 실체를 밝힌 시이다. “남산에 올라가 지는 해를 바라보았더니”라고 읊고 있다. 높은 남산에 올라가서 자신이 살아온 지난 날, 지는 해를 바라보며 반추해 보니 우리가 살고 있는 찬란한 “서울은 물거품이 부걱부걱거리는 늪이고, 이 내 몸은 그 늪에 떠다니는 부초(浮草)인 개구리밥 한 잎에 붙어살고 있는 좀거머리더라”라고 하였다.

시인은 자기 자신의 몸을 ‘좀거머리’라고 성찰한 것이다. 광대무변한 우주 속에 미미한 한 중생에 불과하다. 그 중생이 깨달음을 얻으면 천상천하 유아독존인 부처가 된다. 그 깨달음은 무아요 좀거머리이다. 우주는 하숙집이고 인간은 나그네이다. 무아를 깨달으면 곧바로 고해화택의 중생세계를 떠나 연화화엄의 부처의 삶이 시작된다.

잘난 사람 못난 사람 차별이 없고 모두가 평등한 부처님 세상이 된다. 지옥과 극락이 별개의 공간에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깨달음에 의한 인식의 전환에 의해서 중생의 집이 부처의 집이 된다. 본래 중생은 없다.

‘이 내 몸’의 시는 두보의 인구에 회자하는 시 “태산에 올라 바라보니 뭇 산들 모두 작게 보이네”라는 ‘망악(태산에 올라 바라보니)’이 연상된다.

서산대사의 절창시 ‘등향로봉(향로봉에 올라 바라보니)’의 시에 “만국의 도성이 개미집 같고/ 천추의 호걸들은 초파리와 같구나/ 밝은 달 아래 허공을 베개 삼으니/ 한없는 솔바람의 곡조가 아름답도다”고 하였다. 이 시는 탈속한 출가 도인의 깨달음의 경계와 호연지기를 읊은 시이다.

서산대사는 “만국의 수도 서울이 개미집과 같고/ 천추의 영웅호걸이 초파리와 같다”고 읊었는데, 오현 스님은 “서울은 검붉은 물거품이 부걱부걱거리는 늪/ 이 내 몸 그 늪의 개구리밥 한 잎에 붙은 좀거머리더라”고 하였다.

‘개미집’ ‘늪’ ‘초파리’와 ‘좀거머리’의 시어는 파격적이고 초연한 비유이다. 그러나 서산대사는 천하의 영웅호걸이 ‘초파리’라고 읊었으나, 오현 스님은 자기 자신의 몸이 ‘물거품이 부걱거리는 늪 속에 더 있는 부초(浮草)인 개구리밥의 잎에 붙어살고 있는 ’좀거머리‘라고 읊고 있다.

‘이 내 몸’의 시는 추상적이고 관념적인 시상과 시어에 머물지 않고 출가자로서 자기 자신에 대한 겸허한 성찰을 현상계의 구체적인 생물체를 통해서 적나라하게 묘사하고 있다. 우주적 관점에서 자기 자신과 미물 중생을 동일시하는 차별이 없는 평등한 세계에 대한 오도(悟道)의 인식을 펼치고 있다.

올해 하안거가 지난 10일에 들어갔다. ‘좀거머리 부처’를 참선 화두로 참구해 볼 일이다.

김형중 동대부여중 교장·문학박사 ililsihoil1026@hanmail.net
 


[1393호 / 2017년 5월 31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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