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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문수보살의 진용과 오대산 신앙

기자명 오중철

오대산 신앙, 중국불교 독자성 알리는 선언

▲ 막고굴 220굴 통도에 그려진 신양문수보살상. 159굴 문수보살상과 비교하여 정면을 바라보는 보살의 시선과 사자를 이끄는 인물의 외관에 뚜렷한 차이가 있다. 명문에는 이 인물이 우전국왕임을 명시하였다. 좌측은 선재동자다.

1975년, 돈황문물연구소는 막고굴 220굴의 주실로 들어가는 통도(通道)에 그려진 서하시대(1032~1127) 벽화 보존을 위한 작업을 진행하였다. 벽화를 벗겨내자 그 안에 가려져 있던 이전 시기(925)의 벽화가 모습을 드러냈다. 새롭게 드러난 벽화의 주요 장면을 보면, 한 보살이 사자 위에 앉아 정면을 응시하고 있다. 그 우측에는 북방민족의 복식을 하고 턱수염을 기른 남자가 사자의 고삐를 쥐고 있고, 좌측에는 자그마한 체구의 동자가 자리하고 있다. 이 벽화는 어떤 보살을 표현한 것일까? 벽화에 남겨진 명문을 통하여 이 상이 ‘대성문수사리보살’의 ‘진용’을 표현한 것임을 알 수 있다. 주목할 점은 명문 내용에 ‘신양(新樣)대성문수사리보살을 그렸다’고 하여 이 벽화가 기존의 문수보살상과 다른 새로운 모습의 것임을 명시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기존의 문수보살 도상과의 차이에 있어 어떤 특별한 의미를 갖기에 굳이 ‘새로운 양상’이라고 명시를 한 것일까?

막고굴 200굴 문수보살 도상
다른 소재 조합해온 것과 달리
단독으로 그리고 시선도 정면
오대산 문수보살 신앙의 영향

불교미술사에서 지혜를 상징하는 문수보살을 표현하는 두 가지 대표적 도상 형식이 있다. 하나는 ‘유마경’을 배경으로 하여 유마거사와 마주 앉아 불이(不二)법문을 펼치는 장면이고, 다른 하나는 ‘화엄경’을 배경으로 하여 코끼리를 탄 보현보살과 함께 비로자나(혹은 석가모니) 부처님을 협시하는 화엄삼성을 표현한 것이다. 이러한 도상들에서 문수보살은 다른 소재와의 조합을 통해 경전상의 교의를 상징하는 역할을 맡는다.

이러한 특징은 220굴에서도 여실히 드러난다. 220굴에는 통도의 신양문수보살 외에 주실의 동벽과 서벽에도 문수보살의 도상이 등장한다. 이들은 각각 유마거사와 대화를 나누는 문수보살과 화엄삼성으로서의 문수보살이다. 이는 다시 남벽과 북벽에 그려진 변상도와 함께 어우러져 주실을 경전상의 불국토로 장엄한다. 이와 비교하여 통도의 벽에 그려진 ‘신양문수보살상’은 화엄삼성상의 경우와 같이 사자를 탄 형식으로 등장하지만, 보현보살을 대동하지 않고 단독으로 등장하며, 시선도 정면을 향하고 있다. 이는 이 도상이 독립적인 신앙의 대상으로서 그려진 것임을 의미한다.

▲ 막고굴 159굴의 문수보살상. 주존감실의 우측에 보현보살과 대칭하여 그려졌다. 사자 등에 앉은 문수보살의 시선이나, 사자의 고삐를 쥔 곤륜노의 외관 등에서 신양문수보살상과 차별성을 갖는다. 8세기.

10세기 전후에 신양문수보살상은 회화, 판화, 자수, 조각 등 다양한 방식으로 제작되었다. 특히 돈황 장경동에는 판화 형식으로 제작된 신양문수보살상이 다량 발견되었는데, 이것은 당시 신양문수보살상이 인쇄를 통하여 광범위하게 민간에 유통되었음을 의미한다. 그 명문에는 ‘오대산에 계신 문수사리대성’이라는 내용이 있어 신양문수보살상이 오대산에 화현한 문수보살을 재현한 것임을 알려준다.

오대산은 문수보살이 상주하고 화현한다는 성산으로 유명하다. 그 직접적인 전거는 ‘화엄경’에서 문수보살이 상주하는 도량으로 오대산의 다른 이름인 청량산을 언급한 내용이다. ‘고청량전’ ‘입당구법순례행기’ ‘광청량전’ 등의 문헌 자료들은 7세기 당나라 성립 이후 오대산 문수보살 신앙이 성행하였음을 보여준다. 그중 11세기 편찬된 ‘광청량전’에서 전하는 ‘가난한 여인으로 화현한’ 문수보살의 이야기는 신양문수보살 도상과 직접적인 관련이 있다. 어떤 가난한 여인이 두 아들과 개를 데리고 오대산의 대부영취사란 절에 찾아와 음식을 구걸하였다. 절의 승려는 처음에는 여인의 요청에 응하여 음식을 나누어주었지만, 여인이 뱃속의 태아 운운하면서까지 음식을 계속 요구하자 그 무례함을 꾸짖었다. 이 순간 여인은 문수보살로, 개는 사자로, 두 아들은 각각 선재동자와 우전국왕으로 변신하고 색진(色塵)에 반연하는 승려의 어리석음을 경계하였다고 전한다. 이 이야기는 오대산에 화현했다는 문수보살의 진용(眞容)에 대한 당시의 인식이 신양문수보살상의 도상과 일치함을 보여준다.

우전국왕이 사자를 이끄는 도상은 신양문수보살상의 도상특징 중 기존의 도상과 가장 뚜렷한 차별성을 갖는 부분이다. 기존의 문수보살 도상에서 사자를 끄는 인물은 곤륜노라는 검은 피부에 간소한 의복을 갖춘 시종이었다. 이것이 어떤 이유로 우전국왕으로 바뀌게 되었는지 아직까지 명확하게 밝혀지지 않고 있다. 10세기 당시에 우전국은 중국과 교류가 활발하였다. 이전 기사에서 언급했듯이 돈황에 유입된 우전국 불교문화의 영향은 지대하다. 당시 우전국의 왕인 이성천이 사자를 잘 다루었다는 기록이 있는데, 우전국의 지리적 요건을 고려할 때 이 기록은 이성천이 사자를 타고 나타나는 문수보살과 관련이 있었음을 추정케 한다. 또한 ‘화엄경’의 60권본과 80권본 모두 우전국에서 입수하여 역출되었다는 점, 그리고 우두산을 중심으로 한 각종 서상들이 스스로 날아오는 영험을 보이는 곳이라는 점들은 당시 중국의 승려나 대중들에게 대승불교의 성지로서 우전국의 이미지를 부각시키는 부분이다.

▲ 통도에서 바라본 막고굴 61굴 중앙에 배치된 불단 위에 주존상이 남아있지 않다. 불단위 배병에 사자의 남아있는 사자의 꼬리는 본래 주존이 문수보살임을 추정케 한다. 불단의 뒤에 보이는 서벽에 오대산도가 그려져 있다.

이러한 오대산 문수보살 신앙이 가장 극적으로 발현된 것이 막고굴 61굴이다. 막고굴을 방문하면 필히 참관하게 되는 이 석굴이 우리에게도 친숙한 이유는 주실의 서벽을 가득 채운 오대산 때문이다. 벽화에서 묘사된 오대산은 다섯 봉우리를 중심으로 수많은 사찰들이 자리하고, 문수보살이 곳곳에서 화현하고, 갖가지 불법의 신이가 일어나는 곳이다. 화면 하단에는 오대산의 문수보살을 친견하고 예배하기 위해 세계 각국에서 순례행렬이 모여든다. 그중에 신라나 고려의 사절단, 신라왕탑 등의 장면을 발견하면 반가운 마음이 들면서, 한편으로 각지에서 머나먼 여정을 마다하고 찾아들게 하는 당시 중국 오대산의 위용을 간접적으로나 확인하게 된다.

안타깝게도 61굴 주실의 중앙에 자리한 불단 위의 주존상은 모두 소실되었다. 그러나 불단의 뒷벽(背屛)에 남아있는 사자의 꼬리와 바닥에 잔존하는 사자와 인물들의 발의 흔적들은 61굴의 주존상이 사자를 타고, 우전국왕과 선재동자를 포함한 권속들과 함께 모셔진 신양문수보살상임을 보여준다. 조각과 회화의 조합을 통하여 오대산 속의 문수보살의 진용을 완벽하게 재현한 석굴 설계자의 혜안이 엿보이는 부분이다. 한편으로 오대산을 찾은 많은 이들이 그토록 보고자 했던, 그러나 끝내 알아보지 못했던 문수보살을 위한 자리가 현재 허허한 공백으로 남아있다는 점은 또 따른 감흥을 불러일으킨다.

중국의 오대산이 문수보살의 도량으로서 세계적인 불교성지가 된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7세기에서 10세기의 기간 동안, 중국은 반야에서 밀교에 이르는 역경의 완성과 종파의 성립, 그리고 선종이라는 독창적인 사상을 창출하는 단계에 이르렀다. 이 과정에 확립된 오대산 신앙은 중국 불교문화의 절정기에서 중국불교의 독자성을 알리는 상징적 선언일지도 모른다.

오중철 중국 사천대학 박사과정 ory88@qq.com
 

[1394호 / 2017년 6월 7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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