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3. 자연이 보내는 메시지, ‘더 늦기 전에!’
53. 자연이 보내는 메시지, ‘더 늦기 전에!’
  • 최원형
  • 승인 2017.06.05 18:09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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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의 바닷속이 쓰레기로 채워지고 있다

늦은 저녁에 띠링 띠링 소리가 나더니 김치냉장고가 작동을 멈춰버렸다. 따져보니 십년 조금 넘게 썼다. 마지막 신호음과 함께 전원이 나가고 안에 끼었던 성에가 다 녹아내렸다. 기온은 5월 예년 평균을 훨씬 웃돌며 일찍 더위가 찾아왔고 며칠 전 담근 김치는 두 통이나 냉장고 안에 들어있던 상황이라 난감했다. 게다가 다음날은 일박이일 출장까지 잡혀 있어 수리를 부탁하기에도 일정이 맞질 않았다. 전자제품을 수리해서 최대한 오래 쓰겠다던 애당초 내 다짐은 순식간에 물거품이 되었다. 이것저것 따지고 잴 형편이 안 되었다. 출장을 가는 차 안에서 전자제품 매장을 검색해서 전화를 하고 새 제품을 주문했다. 출장을 다녀온 저녁에 새 김치냉장고가 배달되었다. 쓰던 냉장고는 배달 온 매장 직원들이 가져갔다. 전에 쓰던 것에 비해 새 냉장고는 디자인도 세련되고, 기능도 편리했다. 금세 새 냉장고가 마음에 들었다. 하지만 저녁에 잠을 자려고 누웠는데 어쩐 일인지 마음 한쪽이 영 불편했다.

20년간 새끼 못 낳은 고래
체내 축적된 오염물질 원인
최종 포식자 유해물질 집중
고통은 인간에게 돌아올 것


룰루의 사체 부검 결과가 실린 기사를 읽다가 며칠 전 그 불편함의 까닭을 찾아내고야 말았다. 룰루는 2016년 1월 영국 스코틀랜드 타이리섬 해변가에 쓸려온 범고래 이름이다. 영국에 남아있던 정주형 범고래 아홉 마리 가운데 한 마리였는데 20년 넘게 새끼를 낳지 못했다. 작년 1월 스코틀랜드 타이리섬 해변가에 쓸려온 룰루는 그물에 걸렸는지 죽은 상태였다. 정확한 사인을 알기 위해 부검이 실시 됐고 그 결과가 오늘 기사에 실렸다. 결과 가운데 충격적인 것은 룰루 몸에 축적된 폴리염화바이페닐(PCB) 농도가 기준치의 100배가 넘는 950mg/kg으로 나왔다는 사실이다. 일반적으로 해양 동물 건강에 영향을 미치는 농도는 9mg/kg이다. 폴리염화바이페닐은 잔류성 유기오염물질(POPs) 가운데 대표적인 물질이다. 자연 상태에서 거의 분해가 되지 않고 잔류하면서 생태계에 있는 동식물의 체내에 오염물질이 축적된다. 체내에 축적된 유기오염물질은 생물체의 면역체계 교란, 중추신경계손상 등의 문제를 일으킬 수 있고 나아가 지구촌 전체를 위협할 수 있다는 심각성이 대두되었다. 폴리염화바이페닐은 내열성, 전기 절연성이 좋아 변압기나 차단기, 콘덴서 등에 절연유로 쓰이고 플라스틱 가소제 등에도 널리 쓰였다. 생물의 생식·면역 체계에 이상을 일으킨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1970년대부터 금지되기 시작했다.

고장 나자마자 곧장 버린 냉장고가 마음 한쪽에서 떠나질 않았다. 수리를 해 볼 시도는 했어야 하지 않았을까 하는 후회가 들었다. 김치가 하루 이틀 상온에서 쉰다고 해도 그런 시도는 했어야 했다. 또 새로 구입해야 한다면 평소 생각해오던 재활용센터에 먼저 들렀어야 했다. 새 물건을 산다는 것은 또 하나의 잠재적 쓰레기를 만드는 일이기 때문이다. 주변에서 물건을 새로 사려는 이들에게 늘 읊어대던 이런 저런 매뉴얼이 어째서 나에게는 허약하게 자취를 감추었을까? 내 집에서 사라진 고장 난 김치냉장고는 가전회사를 통해 폐기물 집하장으로 갔을까? 아니면 수리를 해서 재활용센터로 갔을까? 어디로 가든 결국 가전제품들의 말로는 폐기에 이를 수밖에 없다. 김치냉장고를 만드는데 쓰인 플라스틱이며 고철류, 금속, 비금속류, 전선, 납땜 등 많은 물질들이 분리가 되어 버려지게 될 것이다. 버려지는 방법 가운데 유독성인 것은 매립을 하게 된다. 매립을 해도 분해가 되어 자연으로 돌아가지 못하면 땅을 오염시키고 일부는 흘러서 바다로 들어가게 된다. 해양생태계에 지속적으로 영향을 끼치게 될 것은 명확한 사실이다.

지구의 모든 바닷속이 쓰레기로 채워지고 있다. 심지어 사람의 손길이 거의 닿지 않는 심해의 대부분이 비닐봉지, 플라스틱, 그물, 유리병 등 우리들이 버린 쓰레기들로 뒤덮여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버려진 플라스틱은 분해되지 않고 잘게 쪼개져 미세플라스틱이 된다. 미세플라스틱이 동물성플랑크톤의 몸에 들어간다. 그것을 먹은 물고기 몸에도 들어간다. 결국 최종 포식자에게는 유해한 물질들이 집중될 수밖에 없다. 룰루처럼 몸집이 큰 포유류가 지구에서 사라지는 것이 우리에게 주는 메시지는 비극적으로 유의미하다. 새끼를 낳지 못한 채 죽어간 고래의 뒤에 남겨지는 건 뭘까? 소비만능의 시대, 쓰고 버린 쓰레기가 우리의 뒤통수를 치고 있는데도 여전히 그걸 감지하지 못하고 있는 건 아닐까? 지속적으로 만들어지는 고통은 바로 나에게 돌아온다.

최원형 불교생태콘텐츠연구소장 eaglet777@naver.com
 



[1394호 / 2017년 6월 7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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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mita 2017-06-07 11:21:09
깊이 생각하게 하는 칼럼입니다. 좋은 글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