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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한국불교의 역사적 성격론 ①

‘통불교’ ‘호국불교’ 개념은 1920년대 일본불교에서 빌려온 것

▲ 호국불교는 한국불교의 특징을 규정짓는 개념으로 폭넓게 사용되고 있다. 사진은 임진왜란 때 승병장으로 활동했던 서산, 사명, 기허 스님의 호국정신을 기리는 밀양 표충사(表忠祠) 추모재 모습. 이 행사는 불교계와 유교계가 공동으로 개최하고 있다.

한국불교의 역사적 성격에 대한 담론은 일제강점기 일본인 학자들에 의한 부정적인 시각에서 시작되었다. 당시 한국불교사에 대한 두드러진 업적을 내놓았던 다카하시 토오루(高橋亨)의 ‘고착성’과 ‘종속성’, 누카리아 카이텐(忽滑谷快天)의 ‘지나불교의 연장’, 오야 토쿠죠(大屋德城)의 ‘대륙불교의 연장’과 ‘독창성의 결여’ 등의 성격 규정이 대표적인 것들이다. 이에 대해 한국인 학자들의 반론이 물론 제기되었다. 필자가 확인한 바로는 1929년 권상로가 ‘조선불교사의 이합관(離合觀)’(‘佛敎’ 62)에서 한국불교사를 분리(分離)와 통일(統一)이라는 독특한 관점에 의해 체계화하면서 불교종파 13종을 통합한 원효의 불교를 ‘통불교(通佛敎)’라고 지칭한 것이 최초이다. 그리고 이는 바로 그 다음 해에 최남선의 ‘통불교’론으로 이어져 한국불교 성격의 대표적인 담론으로 굳어졌다. 최남선의 통불교론이 1930년대 이후 불교계에서 상당히 널리 받아들여지고 있던 상황은 다음 사실로서도 확인할 수 있다.

독창성 결여·지나 불교연장 등
일제강점기, 부정적 시각 팽배

통불교·호국불교론 제시하며
권상로 등 한국학자들 반론

민주화 운동 과정 거치면서
호국불교론에 강력한 반발

서구학자도 회통·호국 비판
한국불교 이해 부족은 한계

일본에서 빌려온 용어지만
식민사학 저항의지서 비롯

한국불교 역사적 특성인지
비판적인 검토 반드시 필요

김경주(金敬注)의 ‘현하세계(現下世界)의 불교대세(佛敎大勢)와 불타일생(佛陀一生)의 연대고찰)’(‘佛敎’ 77, 1930.11)에서 “인도의 서론적 불교, 지나(支那)의 각론적 불교, 조선의 결론적 불교)(원효에 의한 각종 통일적 불교)”라는 최남선의 주장을 그대로 받아들이고 있었으며, 허영호(許永鎬)의 ‘조선불교와 교지확립(敎旨確立)’(‘불교’신3, 1937.5)과 ‘조선불교의 입교론(立敎論)’(‘불교’신9, 1937.12)에서도 한국불교의 성격을 “통불교(通佛敎)”라고 규정하고 있었다. 또한 김영수는 1932년 최남선과 다른 시각에서 참선·강경·염불의 종합을 역사적 사실로 제시하면서 ‘통불교의 전통’을 한국불교의 특색으로 주장하기도 하였다.

해방된 이후에는 통불교론이 조명기·박종홍·민영규·이기영 등으로 이어지면서 불교학계와 역사학계의 움직일 수 없는 학술적 개념으로 받아들여졌다. 그리고 조명기·김동화·안계현·김영태·가마타 시게오(鎌田茂雄) 등에 의해 ‘호국불교(護國佛敎)’, ‘주술신앙(呪術信仰)’, ‘현세이익(現世利益)’ 등의 개념이 한국불교의 역사적 성격으로 추가되었다. 한국불교의 성격에 대한 용어로서는 총화불교(總和佛敎)·회통불교(會通佛敎)·통불교(通佛敎)·종합불교(綜合佛敎)·융합성(融合性)·호국불교(護國佛敎)·국가성(國家性)·현세이익(現世利益)·타력신앙(他力信仰)·주술성(呪術性)·복잡성(複雜性)·반도적 성격(半島的性格) 등 학자에 따라 각기 표현은 약간씩 다르지만, 여러 학자들의 주장들을 종합하면 한국불교의 역사적 성격에 대한 지배적 담론은 회통불교·호국불교·기복적 불교 등 세 가지로 정리될 수 있다. 필자의 ‘한국불교의 역사적 성격과 전개과정’(‘한국사상의 심층연구’, 1987)은 바로 이렇게 다양한 개념들을 종합 정리해 본 것이다.

그런데 한국불교의 성격론으로 불교학계에서 폭넓은 지지를 받던 회통불교론과 호국불교론은 1980년대 민주화운동이 전개되면서 강력한 도전을 받게 되었다. 1985년 심재룡이 최초로 회통불교론을 비판하기 시작하였고, 조은수가 뒤를 이어 발전시켰다. 또한 서구권의 존 요르겐센(John Jorgensen)과 로버트 버스웰(Robert E. Buswell Jr.) 등도 잇달아 통불교론과 호국불교론에 대해 강력한 비판을 전개하였다. 그 밖에 국내의 역사학계 한쪽에서도 이전의 관점을 부분적으로 비판하거나 일부 수정을 요구하는 학자들이 나타나게 됨으로써 이제 한국불교의 역사적 성격에 대한 담론은 백가쟁명의 상태가 되었다.

그러나 서구권 학자들과 이를 추종하는 국내 일부 학자들에 의한 회통불교론과 호국불교론에 대한 논란은 한국불교의 역사를 구체적으로 검토하고, 그 검토 결과를 바탕으로 하여 비판하는 것이 아니고, 그러한 담론의 기원과 발전과정에 대한 단편적인 이해만을 추구해 그 타당성 여부를 점검하는 데 그친 것이라는 점에서 한계가 없지 않다. 더욱이 그러한 담론이 제기되고 발전하는 시기의 역사적 상황과 근대불교의 내용에 대한 구체적 검토를 전제로 한 것도 아니다. 더불어 한국학계의 민족주의적이고 호교적(護敎的)인 시각에 대한 일방적인 불신에서 출발하여 민족주의적 감상이나 종교신앙의 차원으로 성급하게 단정해 버리고 말았다는 것도 문제점으로 지적할 수 있다. 필자도 오래 전부터 한국학계의 민족주의적이며 호교적인 자기중심적 접근 태도를 비판하면서 객관적인 이해의 필요성을 제기해 왔다. 그렇지만 한국불교의 역사와 전통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상태에서 성급하게 제기하는 서구적인 시각의 형식논리적인 객관성과 합리성은 문제가 없지 않다고 본다.

한국은 일본 제국주의에 의한 식민지시대를 경험하면서 불교의 내용이 적지 않게 변질되기는 하였지만, 아직도 전통적인 불교의 흐름이 이어지고 있다는 점에서 서구와는 확실히 다르다. 또한 실제 생활세계에 뒤섞여 살아 있는 불교를 안에서부터 배울 기회가 주어져 있다는 점에서 현재의 불교에 대한 이해뿐만 아니라 과거의 전통불교에 대한 인식도 서구인들과는 차이가 날 수 밖에 없다. 그런 점에서 한국인의 불교사 연구는 자신의 실제 생활세계와 전통적인 불교세계가 뒤섞여 버릴 위험성을 인식하고 고민하지 않을 수 없는 과제를 안고 있다. 그러나 이와는 반대로 서구인들과 같이, 피식민지지배의 지식인으로서 겪은 한국인의 고통과 불만, 그리고 전통의 계승을 통한 발전을 모색해 왔던 한국 불교인들의 고뇌와 갈등을 고려하지 않은 채 국외 제3자의 입장에서 접근하는 피상적인 이해와 비판에는 쉽게 동의하기 어렵다.

로버트 버스웰은 한국불교사의 이해를 추구하면서 베네딕트 앤더슨(Benedict Anderson)이 동남아시아 지역의 인류학적 조사결과에 의거하여 창안한 ‘상상의 공동체로서의 민족(imagined nation)'이라는 개념을 1700년 가까운 역사의 한국불교사에 적용하여 ‘한국불교라는 것이 실제로 존재하는 것이라기보다는 일제의 식민지지배 시기에 이르러 비로소 민족적 전통으로 만들어진 것에 불과하다’고 주장하였다. 그러나 이러한 주장은 신라에 의한 삼국통일 이후 1,300여 년의 장기간에 걸쳐 동일한 문화공동체를 형성하였고, 강력한 중앙집권체제를 경험한 한국의 역사와 문화전통에 대한 이해 부족의 소산일 뿐이다.(Robert E. Buswell Jr., "Imagining Korean Buddhism", Nationalism and the Construction of Korean Identity, edited by Hyung Il Pai and Timothy R. Tangherlini, Berkely: Institute of East Asian Studies, 1998)

한편 회통불교와 호국불교라는 담론은 원래 일본불교사 인식의 문제로서 일본 불교학계에서 먼저 제기된 것이었고, 한국의 근대불교학에서 그것을 한국불교사 인식의 문제로 받아들였다는 사실을 유의할 필요가 있다. 통불교와 호국불교라는 개념 자체가 당시 일본 불교계에서 널리 사용되고 있었고, 한국 불교계에서 그러한 용어를 빌려와서 그대로 사용해 온 것이 사실이다. 원래 ‘통불교’라는 용어는 일본 근대불교사학의 성립 초기 통일불교론의 제창과 함께 등장하기 시작하여 다카다 도오겐(高田道見, 1858~1923)의 ‘통불교일석화(通佛敎一席話)’(1902)·‘통불교안심(通佛敎安心)’(1904)과 이노우에 세이코(井上政共)의 ‘통불교(通佛敎)’(1905)·‘통불교강연록(通佛敎講演錄)’(1911) 등 ‘통불교’라는 용어를 책의 제목으로 부친 저술들이 연이어 간행될 정도로 불교계에 유행하였다.

그리고 ‘호국불교’라는 용어도 메이지 초기에 호국(護國)·호법(護法)의 일치론으로 나타나기 시작하여 겟쇼(月性, 1817~1858)의 ‘불법호국론(佛法護國論)’(1856)과 토리오 토구안(鳥尾得庵, 1847~1905)의 ‘호법호국론(護法護國論)’ 등에서 역시 책의 이름으로까지 널리 사용되고 있었다. 20세기 초기 일본의 근대불교사학을 성립시킨 주역의 한 사람인 무라카미 센쇼(村上專精, 1851~1929)의 ‘통일불교론(佛敎統一論)’(1901)에 이르러 마침내 통불교와 호국불교라는 용어가 학술적 개념으로 자리를 잡게 되었으며, 한국불교인들에게도 직접 영향을 미치게 되었다.  무라카미 센쇼의 ‘불교통일론’은 1912년 권상로가 그 일부를 번역하여 ‘조선불교월보’에 게재하였으며, 이노우에 세이코의 ‘통불교’는 1916년 박한영이 같은 ‘조선불교월보’에 그 내용을 소개하였다.

한국 불교계가 일본으로부터 통불교론과 호국불교론을 그대로 받아들여 사용하게 된 것은 한국의 근대불교사학이 일본 불교학의 영향을 직접 받으면서 성립되고 있었던 사실과 무관하지 않다. 그 당시 한국은 일본 제국주의의 침략과 지배를 받는 상태였고, 불교계도 일본불교의 침투와 조선총독부의 불교정책에 따라 철저하게 유린되고 있던 상황이었다. 따라서 당시의 한국 불교계에서 통불교와 호국불교라는 담론은 단순히 민족적 자존심을 부양하겠다는 관념적 의미만을 갖는 것에 그치지 않았다. 일본 제국주의에 유린당하면서도 저항하지 않을 수 없었던 현실적인 생존의 의미를 가진 것이며, 또한 일본의 식민지사학에 대항하려는 의지의 소산이었다. 문제는 일본에서 빌려 온 불교학의 개념을 가지고 침략세력과 그 불교에 대항하지 않을 수 없었다는 점이다. 이것은 한국 근대불교사학이 간직한 역사인식의 모순과 한계점으로 지적되지 않을 수 없는 문제이다.

그런데 해방이 되면서 본래의 현실적인 의미가 사라지게 되면서 그 담론은 관념화되어 갔고, 한국의 전통적인 불교의 성격을 정의하는 학술적 개념으로 자리를 잡게 되었다. 때로는 그 개념이 성립될 당시의 시대적 상황과 연원은 고려되지 못한 채 현실의 정치상황을 호도시키는 의미로 왜곡되어 사용되는 경우까지 나타나게 되었다. 그 결과 1980년대 민주화운동이 전개되고, ‘민중불교’라는 개념이 새로 대두되면서 마침내 그 담론에 대한 비판이 제기되지 않을 수 없었다.

한국불교의 역사적 성격론에 대한 검토는 두 가지의 다른 시점이 요구되는 문제이다. 첫째는 지금까지 살펴본 바와 같이 근대불교의 역사인식의 문제로서 일본불교의 침투와 일제의 식민지 지배라는 시대적 상황과 불교계의 현실에 대한 이해가 선행되어야 하며, 그러한 이해를 바탕으로 하여 회통불교론과 호국불교론의 기원과 발전과정, 그리고 해방 이후 불교의 전개과정과 그 역사적 의의를 추구하여야 한다. 둘째는 한국불교사 자체에 대한 체계적인 이해의 문제로서 한국불교사의 전개과정에서 회통불교·호국불교·기복적 불교라는 개념이 과연 역사적인 사실에 부합되는가? 또한 그것들을 과연 한국불교의 정체성을 나타내 주는 주요한 특성으로 볼 수 있는가? 등 두 가지 사실에 대한 비판적인 검토가 요구된다. 나아가 다른 지역과 민족의 불교사에서도 이러한 특성은 찾을 수 있는지, 만일 있다면 어떠한 차이가 있는지를 비교해 보는 작업으로 진행되어야 할 것이다.

최병헌 서울대 명예교수 shilrim9@snu.ac.kr
 

[1395호 / 2017년 6월 14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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