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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리선수 권중달-하

기자명 법보신문

▲ 77, 오맹
그런데 이를 전하는 분들이 중국출신 법사님들이어서 언어 소통이 어려웠다. 우리말이 서툴러서 이야기를 하는 도중에는 잘 표현할 수 없는 내용이 있으면 나를 쳐다보고 중국어로 말하면서 한국어로 어떻게 표현해야 되느냐고 묻곤 했다. 그렇지만 무척 검소한 생활을 했다. 추운 겨울 슬리퍼를 빨아 신고서 우린 교육을 마친 늦은 시간에도 병원에 입원한 사람들에게 갔다. 가피를 해야 한다고 가는 뒷모습을 보면서 그분들이 정말 남을 돕는 것을 행복으로 느끼는 분들 같았다.

중국 법사 통역 인연으로
수행기 ‘가사’ 한국어 번역
감동 받았다는 독자 말에
조그만 재능기부로 행복감

내가 교육을 받고 난 지 몇 달쯤 지나서 이 법사님들이 집으로 찾아왔다. 목적은 두 가지였다. 하나는 ‘선(禪)’이라는 중국어로 된 노래를 한국어로 번역해 달라는 것이었는데, 이 노래가 사람들을 선 경지로 이끄는데 도움을 줄 것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진푸티 종사의 수행기 ‘가사(袈裟)’를 한국어로 번역 출판하는 것이었다. 노래 선의 가사는 길지 않아서 그 자리에서 끝낼 수 있었다. 그런데 이 노래를 번역하면서 그 내용을 음미하다보니 내 스스로가 감동을 받았다. ‘부처님은 항상 내 곁에 있었지만 우리가 늘 몰라보고 있었는데, 선의 경지에 가 보니 바로 부처님이 옆에 있다는 것을 알았다’는 내용이었다. 이 내용은 그 후로 항상 내 머리에서 맴돌았다.

‘가사’를 번역하는 문제는 간단한 것이 아니었다. 사실 나는 그때 10여년 간 작업해 왔던 ‘자치통감’을 출판하기 위하여 교정하고 있었다. ‘자치통감’은 번역 원고로 8만매였고, 이를 출판했을 때 700쪽짜리 책 32권이나 되었으니 그 작업량은 엄청났다. 그 때 한참 이 작업을 하고 있어 다른 일에 시간을 내는 것이 쉽지는 않았다. 그러나 보리선수에서 익힌 수행법을 매일 행하면서 수행 중에 이끄는 말 가운데 ‘고통 속에 있는 사람들’을 구제해야겠다고 서언하는 부분이 생각났다.

이 서원을 매일 습관적으로 하면서 실제로 일이 닥쳤는데 바쁘다는 핑계로 이를 마다할 수가 없었다. 책을 통하여 많은 사람들이 마음의 평화를 얻을 수 있게 하는데 조금이라도 기여할 기회가 된 것이다. 찾아서 해야 될 일이었는데 내게 저절로 다가 온 것이다. 바쁘다고 거절할 일은 아니었고 이 행운을 놓칠 수도 없었다. 즐겁고 고맙게 이 일을 맡았다.

열일 젖혀놓고 이 책을 번역했다. 번역하는 동안 몇 가지의 불가사의한 일을 경험했다. 하나는 ‘벽곡(?穀) 현상’이 내게 다가 온 것이다. 이 작업을 하면서 얼마 지나지 않아 음식 먹을 생각이 나지 않았다. 기껏해야 물과 오이나 토마토 한 조각으로 식사를 대신하였는데 이 현상은 100일 간 지속되었다. 그뿐이 아니었다. 이 벽곡 기간 중에 외교안보연구원에서 3일간 특강을 해 달라는 부탁이 있었다. 하루에 3시간씩 3일을 강의해야 하는 일은 정신력과 체력을 소모하는 일이어서 음식을 안 먹은 상태로 하기 힘든 것이다. 그런데 강의를 잘 마쳤다. 돌이켜보면 불가사의한 일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가사’는 무사히 번역을 마치고 집사람이 운영하는 출판사에서 출간하였다. 처음으로 한국에 정식으로 대수행자 진푸티 종사를 소개한 셈이었다. 진푸티 종사가 누구인지 모르는 상태에서 이 책을 받아 본 어느 일간지 신문사의 문화담당기자는 ‘아름다운 지구인’이라는 칼럼을 통하여 신문에 소개를 했다. 그의 수행기만을 가지고 진푸티 종사의 아름다움이 느껴진 모양이다.

다음 해엔 진푸티 종사의 ‘깨달은 눈으로 본 인생’이라는 책도 번역 출판하였다. 이 책을 읽은 많은 사람들이 실제로 인생의 변화를 느꼈고, 새로운 인생관을 가지게 되어 행복한 생활을 한다는 이야기를 많이 듣는다. 진푸티 종사의 말씀을 우리말로 바꾸어 전한 것뿐이지만 이 책을 읽은 독자들이 새로운 의미를 가지고 행복하게 살아간다는 말을 들을 때마다 내 조그만 재능이 이들을 도와 준 것 같아서 스스로 행복해 진다. 그래서 나와 집사람은 이 책이 더 많은 사람에게 보급될 수가 있다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출판권을 보리선수에 기증했다. 그리고 행복감을 느꼈다.

이 책들은 보리선수를 통하여 더 많은 사람이 볼 수 있을 것이고 행복해 질 수 있을 것이다. 많은 사람이 행복해 지는 일에 내가 작은 기여라도 했다면, 선을 공부하고 싶어 발심수행한 덕택일 것이다.

[1395호 / 2017년 6월 14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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