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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8. 빈승이 정한 새로운 계율 ③

“자기감정도 조절 못하며 어찌 인천의 스승이라 할까요”

▲ 불광산 스님들이 이재민들에게 도시락을 전달하고 있다. 대만 불광산 제공

"감정적으로 행동하면 자기의 품성과 덕목이 남들에게 만만하게 보이게 되고 자기 수양의 부족함이 드러나게 됩니다. 정서는 스스로 절제해야 하고 스스로 다스려야 합니다. 빈승도 매일매일 최선을 다해 감정을 다스리고 계행을 실천하고 점검합니다. "

남을 가볍게 여기는 것은 자신의 교만으로, 잘 익은 벼이삭은 고개를 숙이는 법입니다. 잘 익은 모든 과일은 아래로 늘어져 있는 것이 자연의 이치입니다. 진정으로 수행자가 되고자 하면서 생활 속 행동거지에서 조금이라도 오만함이 있다면 필히 사람들의 ‘업신여김’을 당할 것입니다. 부드러운 얼굴로 허리를 굽혀 합장인사를 하면서 입으로는 “고맙습니다! 미안합니다!”라고 항상 말하면서 남을 칭찬해주고 자신은 늘 겸손해야 수행에 발전이 있게 됩니다.

셋째 ‘남을 시샘하지 않는다’입니다.

질투는 마치 불길과도 같아서 질투의 불길이 일단 타오르면 좋은 사람을 태워서 변태적인 사람으로 만들고, 좋은 일도 태워버려 가치가 없게 만들어 버립니다. 그래서 질투의 불길은 사람 성품 가운데 가장 추악합니다. 남이 잘되는 꼴을 보지 못하는 성품을 가진 사람은 남이 잘되는 것을 보게 되면 그 사람을 질투하고 좋은 일을 보아도 싫어하는데 이것이 모두 그 자신의 추악한 심보입니다.

남이 잘되면 우리에게도 이롭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친구가 승진을 하면 나도 덕을 볼 수 있고 동료가 돈을 벌어서 좋은 집을 사면 나도 들어가 볼 기회가 생깁니다. 어쨌든 남들이 가진 것이 비록 내 것은 아니지만 덕을 보거나 누릴 기회가 생기는데 굳이 그 사람을 질투할 필요가 있을까요? 과연 세상 사람 모두가 거지가 되고 자기 혼자 돈을 벌어야 부자일까요? 수행하는 사람은 남들이 가진 것을 보면 같이 기뻐해주어야 합니다.

그래서 스스로 좋은 사람이 되고 싶으면 좋은 사람을 질투하지 않고 좋은 일을 질투하지 않아야 합니다. 좋은 사람을 보면 찬탄해주어야 하고 좋은 일에 대해서는 칭송해주어야 합니다. 세간이 이렇듯 아름답고 좋은데 어찌 우리는 좋은 사람과 좋은 일을 찬탄하고 알리지 않을까요?

저와 함께 지내던 도반 자운(煮雲) 스님은 좋지 않은 습관과 버릇이 많았지만 훌륭한 점도 있었는데 바로 다른 사람을 질투하지 않는 것이었습니다. 이 한 가지만으로도 배워나가는 과정에서 보통사람들 누구나 모두 해낼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넷째 ‘남을 침범하지 않는다’입니다.

출가, 재가를 막론하고 부처님께서 제정하신 계율의 핵심은 바로 남을 침범하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계는 자유의 의미를 갖고 있어서 당신이 자유롭고 싶은 것처럼 다른 사람도 자유롭고 싶어하며 좋은 사람, 좋은 일 모두 다 자유로워야 합니다. 그래서 불교 오계에서 불살생(不殺生)은 다른 사람의 생명적 자유를 침범하지 않는 것이고 불투도(不偸盜)는 다른 사람의 재산적 자유를 침범하지 않는 것입니다. 불사음(不邪淫)은 다른 사람의 신체적 자유를 침범하지 않는 것이고 불망어(不忘語)는 다른 사람에 대한 평판의 자유를 침범하지 않는 것이고 지혜를 흐리게 하는 물질을 멀리 함은 자기의 지혜와 건강의 자유를 침범하지 않는 것입니다.

다른 사람을 침범하는 것은 좋지 않은 행위로 당신이 남을 침범하면 남들도 자연적으로 당신에게 같은 방식으로 되돌려주려고 하게 되니 대립하고 원한이 생깁니다. 만약 불교에서 말하는 것처럼 모두가 계율을 지켜서 다른 사람의 자유를 침범하지 않고 서로 존중하고 포용할 수 있다면 마치 지금 언론에 보도의 자유가 있는 것처럼 신앙의 자유 역시 존중하게 될 것이고 누구에게나 거주의 자유가 있듯이 이민의 자유도 있습니다. 모두가 자유를 존중하여야 아름다운 인생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다섯째 ‘관료적인 언어를 쓰지 않는다’입니다.

말 한 마디로서 나라를 흥하게 하고 말 한 마디로서 나라를 망하게도 합니다. 한 마디의 말이 간단해 보이지만 친한 친구사이에서의 좋은 말 한 마디가 좋은 인연을 맺게 되니 이어지는 인연과보 모두가 아주 순조롭습니다. 나쁜 말 한 마디로 인해서 원망과 미움이 생기면 서로 잘 지내기가 어렵게 됩니다. 그래서 말을 하려면 신중해야 합니다. 요즈음 ‘까마귀 입’(까마귀 우는 소리를 사람들이 듣기 싫어하듯이 입만 벌리면 사람들이 듣기 싫어하는 말을 쏟아내는 사람. 역자 주)을 가진 사람들이 듣기에 좋지 않은 말만 하고 있으니 사람들의 미움을 받습니다. 좋은 사람은 좋은 말을 하므로 나쁜 말을 하는 사람은 필시 나쁜 사람입니다. 불광회에서 펼치고 있는 ‘삼호운동(三好運動)’은 몸으로는 좋은 일을 하고 입으로는 좋은 말을 하며 마음에는 좋은 생각을 갖자고 하는 것입니다. 특히 좋은 말을 하는데 돈이 들어가는 것도 아니고 당신에게 손해가 되는 것도 아니며 남을 기쁘게 하는데 어찌 기꺼이 행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여섯째 ‘비인(非人)이 되어서는 안 된다’입니다.

비인(非人)이란 말은 아주 듣기 싫은 말로 ‘사람 같지 않다’는 의미입니다. 당신의 언행이 사람의 언행같지 않고 나쁜 생각, 싸움질, 못된 마음, 남을 해치는 등등을 말합니다. 경전에서 부처님도 누구를 욕하셨을까요? 부처님께서는 비록 직접적으로 사람을 욕하지는 않으셨지만 세상에 ‘다섯 종류의 비인(五種非人)’이 있다고 지적하셨는데 사람 같지 않다는 뜻입니다. 바로 “웃어야 할 때 웃지 않고 기뻐해야 할 때 기뻐하지 않으며 자비해야 할 때 자비하지 않고 나쁜 점을 듣고서도 고치지 않으며 좋은 소식을 듣고도 즐거워하지 않는다(應笑而不笑 應喜而不喜 應慈而不慈 聞惡而不改 聞善而不樂)”는 것으로, 우리 수행자들이 어찌 스스로 경각심을 갖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사람은 인간의 예의를 지키고 신용을 지켜야 하는데 유교에는 사유팔덕(四維 : 禮義廉恥, 八德 : 忠孝仁愛信義和平)이 있고 불교에는 삼귀의, 오계, 육도만행(六度萬行 : 布施 持戒 忍辱 精进 禅定 般若) 등 여섯 가지 가르침을 실천하는 보살의 많은 수행법이 있어서 이 모든 것이 사람됨의 원칙으로 사람이 사람 같아야지 ‘비인’이 되어 사람의 웃음거리가 되면 안 됩니다.

일곱 번째 ‘불법적인 약속을 하면 안 된다’입니다.

도움이 필요한 사람에게는 도움을 주어야 하지만 불법적인 것은 도울 수 없습니다. 자신에게 기회인연을 달라고 하는 사람이 있지만 만약 좋지 않은 일이라면 나쁜 일의 인연을 도와서는 안 됩니다. 자신에게 약간의 힘을 실어달라고 부탁하는 사람이 있는데 만약 남을 침범하는 일이라서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주게 된다면 우리는 그 사람을 도와줄 수 없습니다. 아무튼 법률에 위배되는 불법적인 것은 당연히 나쁜 일이며 불교적 가르침에 부합되지 않는 일 역시 나쁜 일이므로 우리는 세상을 위해서 좋은 인(善因), 좋은 과(善果)를 길러내야 합니다. 불법행위를 조장하면 안 됩니다.

보살계에 ‘요익유정계(饒益有情戒)’가 있는데 모든 일에서 남에게 유익하게 하고 도움이 되고 남을 성취시키는 것으로 이는 불도(佛道)를 추구하는 수행자의 기본적인 가르침입니다.

여덟째 ‘남에게 폐를 끼치면 안 된다’입니다. ‘세상의 강물을 흔들어 놓더라도 수행자의 마음을 흔들지 못한다’라는 말처럼 남을 방해하여 그 사람의 마음을 흔들고 특히 나쁜 마음을 먹게 하면 그것은 우리의 죄업입니다. 그래서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남에게 함부로 일을 시키거나 남을 함부로 소나 말처럼 부려먹으면 안 되고 상호 존중해야 합니다.

좋은 일이라고 해도 사람들을 기쁘게 할 수 있도록 해서 사람들의 선의의 동참을 이끌어내야 합니다. 태도가 나쁜 사람한테는 사람들이 도움을 주더라도 마음으로 원해서 하는 일이 되지 못하고 말투가 거친 사람한테는 도움을 주더라도 사람들이 즐거워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수행자는 함부로 남에게 폐를 끼치면 안 됩니다.

지지보살(持地菩薩)은 길을 걸으면서도 밟은 땅이 아파할까봐 발걸음을 무겁게 내딛지 않으셨으며 대지가 오염될까봐 물건도 함부로 버려두지 않았고 시끄러워 대지가 깰까봐 말씀도 크게 하지 않으셨는데 이러한 보살의 행동은 우리들이 마땅히 본받아야 합니다.

아홉 번째 ‘쉽사리 물리지 않는다’입니다. 약속을 지키는 것은 사람됨의 근본으로 ‘군자의 말 한 마디가 입 밖을 나가면 사두마차도 따라가지 못한다(君子一言 駟馬難追 : 남아일언중천금이란 의미. 역자 주)는 말이 있듯이 이미 약속한 것은 진심으로 실행하여 도움을 주어야 합니다. 약속을 가볍게 여겨 신뢰가 부족한 사람은 결국 사람들에게 버림을 받게 됩니다. 당신이 진심과 성의를 갖고 약속을 함부로 물리거나 저버리지 않는다면 모두가 즐겁지 않겠습니까?

예전에 어떤 사람이 부모님의 질병으로 영양제를 사려고 시장에 나섰는데 동쪽 길에서 물어보니 영양제 한 병에 3원이라고 하였고 서쪽 길에서 물으니 2원50전만 달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이 사람은 동쪽 길에서 돌아오는 길에 사겠다고 이미 말했으니 사람으로서 신용을 잃을 수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비록 싼 것은 찾았지만 신용의 가치는 더욱 소중하기 때문입니다. 전쟁 중에는 사람들 모두가 먹을 것이 없으니 남의 밭에서 과일을 따기도 하지만 도덕을 중시하는 군자는 그렇게 행동하지 않습니다. 사람들이 그 사람을 보고 비웃으며 지금은 전쟁 중이라서 이 과일은 주인이 없다고 말하지만 군자는 ‘전쟁 통이라 주인이 없다고 하더라도 내 마음 속에 주인이 없을 수는 없다’고 답했습니다.

열 번째 ‘경우 없이 감정에 치우치면 안 된다’입니다.

저를 따라서 출가한 일부 청년들에게 제가 가장 염려하는 것은 나이가 어리고 세상사 경우를 잘 모르니 감정에 쉽게 치우쳐서 말 한 마디나 한 가지 일 때문에 밥을 안 먹고 잠도 안자면서 단체를 불편하게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삭발법어’에서 “출가인의 도리를 바르게 행하면서 감정적으로 행동하거나 의기소침하지 않는다. 부지런히 소임을 맡음은 사중을 위함이고 공경겸손하고 좋은 말을 한다”라고 말하며 격려했습니다.

감정적으로 행동하면 자기의 품성과 덕목이 남들에게 만만하게 보이게 되고 자기 수양의 부족함이 드러나게 됩니다. 정서는 스스로 절제를 해야 하고 스스로 다스려야 합니다. 자기의 감정도 조절하지 못하는 당신이 어찌 남을 가르치고 관리하며 인천의 스승이 될 수 있겠습니까?

이상 서술한 새 계율항목의 실천은 출가 수행자에게만 적용되는 것은 아닙니다. 계율이라 함은 자유를 위한 법률과도 같아서 법률 앞에서 사람 누구나 평등하고 자유로울 수 있으니 모든 사람에게 다 적용되어야 할 것입니다.

빈승이 자아절제와 자아교육, 자아요구의 인생을 살아오면서 행해야 하는 열 가지와 행하지 말아야 하는 열 가지 계율에 대해서 수십 년간의 노력과 실천의 삶을 실행해 왔지만 여전히 부족함을 느끼기에 계속해서 조금씩 계속해서 노력하는 수밖에 달리 방법이 없습니다. 

번역=이인옥 전문위원

[1396호 / 2017년 6월 21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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