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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우재(祈雨齋)

역사엔 영험한 스님들 등장
기우재 지내면 영락없이 비
불교계도 이제 정성 모아야

가뭄이 길어지면서 한반도 전역이 타들어간다. 농작물은 죽어가고 채소와 과일 가격은 폭등하고 있다. 산업 현장도 공업용수 공급을 위한 비상체제에 돌입했다. 정부도 다양한 대책을 강구하고는 있지만 한계가 분명해 충분한 비가 오기만을 기다릴 수밖에 없는 실정이다.

가뭄은 아주 오래전부터 홍수나 태풍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의 큰 재난이었다. 인류문명을 꽃피웠던 메소포타미아, 마야, 이집트, 인더스, 앙코르 문명이 모두 가뭄으로 멸망했다는 사실도 가뭄의 무서움을 잘 보여준다.

가뭄의 재앙은 우리나라도 예외는 아니었다. 사료에 따르면 고구려 13회, 백제 27회, 신라 59회, 고려 36회, 조선 100건의 가뭄이 있었다. 1년 내내 비가 오지 않은 해도 있고, 6년 동안 연속 가뭄이 들어 사람이 사람을 잡아먹는 일들도 벌어졌다고 전한다.

조선시대까지도 가뭄이 들면 임금은 자신의 허물로 인한 천벌이라고 여겨 스스로 몸을 정결히 하고 제사를 지냈다. 그래도 비가 안 오면 음식을 줄이거나 초가로 거처를 옮겼다. 기상학이 발달한 오늘날에는 쉽게 찾아보기 어렵지만 근대 이전까지 마지막 의지처는 기우재였다.

이러다보니 역사서에는 비를 내리게 했던 영험한 스님들이 종종 등장한다. ‘왕오천축국전’의 저자 혜초 스님이 그렇다(동명이인이라는 학설도 있다). 774년 2월, 혜초 스님이 중국 황제에게 올린 표에 따르면 혹독한 가뭄이 이어지자 황제는 혜초 스님에게 기우재를 부탁했다. 이에 스님이 법단을 세우고 기우재를 시작하자 비가 쏟아지기 시작했고, 불과 이틀 만에 가뭄이 완전히 해소됐다고 한다. 이에 황제가 감사의 마음을 전했다는 비문이 오늘날까지 전해진다.

동아시아에서 비를 부르는 능력이 가장 출중한 인물로는 단연 당나라 현수법장 스님을 꼽을 수 있다. 화엄학 대가였던 스님은 측천무후를 비롯해 중종, 예종, 현종의 각별한 존경을 받았다. 극심한 정치적 혼란에도 그럴 수 있었던 것은 뛰어난 학문뿐 아니라 기우재로 가뭄을 해소시킨 놀라운 능력 때문이다. 687년, 695년, 708년, 711년에 큰 가뭄이 들었고, 이때마다 법장 스님이 황제의 요청에 따라 기우재를 지내면 비가 내렸다고 정사에 기록돼 있다.

조선 초 장원심 스님도 마찬가지다. 1406년 7월, 혹독한 가뭄으로 백성들이 죽어나가자 태종은 종묘와 산천에 기우재를 지내고, 온갖 대책을 세웠으나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 이때 황희가 원심 스님을 소개하고 그가 흥천사에서 기우재를 지내면 비가 내린다고 단언했다는 얘기를 전했다. 숭유억불의 시대였지만 다급했던 태종은 이를 허락했다. 그런데 묘하게도 원심 스님이 기도를 시작한 지 이틀 만에 많은 비가 쏟아졌고, 태종이 감격해 큰상을 내린 것으로 조선왕조실록에 전한다.

▲ 이재형 국장
오늘날 관점에서 보면 기우재는 비합리적이다. 그렇지만 역사기록은 허황되지 않을 수 있음을 보여준다. 다만 기우재를 지내는 스님의 도가 높았다는 공통점은 있다. 곧 장마 시즌에 돌입하지만 비구름이 남해안에만 머무르는 ‘마른장마’일 가능성이 높다는 게 기상청의 안타까운 예보다. 우리도 옛사람들처럼 기우재로 가뭄이 해소되기만을 바랄 수는 없다. 그렇더라도 부처님의 공덕과 위신력에 의지해 국민들의 고통이 해소되기를 염원하는 일까지 무의미할 수는 없다. 스님과 불자들이 몸과 마음을 정결히 하고 정성을 다해 기도함으로써 메마른 하늘을 움직여볼 일이다.

이재형 mitra@beopbo.com


[1397호 / 2017년 6월 28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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