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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승재서 한국불교 미래를 보다

기자명 심원 스님

저수지가 바닥을 드러내고, 말라 갈라진 논에서는 모들이 타들어가고 있다. 예사롭지 않은 가뭄에 농부가 아니어도 쨍쨍한 하늘이 원망스러운 이 때, 한줄기 단비 같은 청량한 게송이 울려 퍼졌다.

“아, 거룩하여라, 해탈복이여[善哉解脫服]/ 가장 수승한 복전의 옷이로다[無上福田衣]/ 내가 지금 이 가사를 받들어 수하노니[我今頂戴受]/ 널리 모든 중생을 제도하여지이다[廣度諸群迷]”

지난 6월12일, 반야사 원욱 스님과 신도가 200명에 가까운 스님들에게 가사와 장삼을 공양하는 공승재 법회를 거행한 것이다.

공승재라 하면 대개의 불자들은 대만의 공승재를 떠올린다. 세계 16개국이 넘는 나라 스님들을 초청하는 국제적 규모와 스님들에게 극진한 공경을 다하는 대만불자들의 신심이 깊은 감명을 주었기 때문일 것이다.

이에 영향을 받아 최근 우리나라에서도 진관사, 서울국제선센터, 부산사암연합회와 같은 큰 사찰이나 단체에서 승보공양법회와 공승법회라는 이름으로 공승재를 거행하고 있다.

이처럼 승보에 공양을 올리는 공승재는 목련존자에서 시작된다. 하안거 결제가 끝나는 날, 지옥에서 고통받는 어머니를 위해 목련존자는 스님들께 정성을 다해 공양을 올림으로써, 스님들의 수행력으로 어머니를 제도하였다. 이것이 유래가 되어 효를 중시하는 중국과 우리나라에서 우란분재(백중)라는 불교 4대 명절 중 하나로 자리 잡았다.

스님들께 올리는 대표적인 공양물은 사사공양(四事供養)이라 일컬어지는 음식과 의복과 좌구와 의약품으로, 수행에 필요한 최소한의 물품이다. 이 가운데 의복에 해당하는 가사는 부정색(不正色) 또는 괴색(壞色)이라는 뜻의 산스크리트어 카사야(kāṣāya)를 음역한 말로, 스님들의 법의를 지칭한다. 받아 입는 이는 번뇌를 떠나 해탈하는 옷이어서 해탈복이고, 보시하는 이에게는 무량한 복덕의 밭이 된다하여 복전의이니, 출가하여 가사를 입는 순간 스님들은 중생을 제도하길 서원하는 것이다.

이렇듯 가사는 단순한 옷이 아니라 불법승 삼보의 상징이다. 많은 이들이 현재 우리 한국불교는 위기상황이라 진단한다. 미래도 결코 낙관할 수 없다. 승가를 떠받히고 있는 삼륜청정(三輪淸淨)의 기본정신이 무너진 것이 중대한 요인 중 하나일 것이다. 그래서일까. 여기저기서 출가승단의 청정성에 대한 날선 비판이 연일 쏟아져 나오고 있다. 듣기 민망하고 보기 거북하다. 그러나 과연 이러한 비판 앞에 당당하게 자유로울 수 있을까를 생각하면 스스로 부끄럽기 한량없다.

비판 없는 사회는 부패하기 쉽고, 비판만 하는 사회는 갈등과 반목만 남는다. 비판을 수용하면서 비판을 넘어서는 대안은 없을까?

동사섭의 용타 스님은 ‘맑은 물 따르기를 하라’ 하신다. 흐린 물의 혼탁함만 탓하다 보면 어느 결에 자신이 황폐해진다. 오히려 시선을 바꾸어 맑은 물로 더럽고 혼탁한 물을 맑혀 나간다면, 우리가 희망하는 세상은 그렇게 열릴 것이다.

공승재를 준비한 신도들은 “세상에서 가장 청정한 스님들께, 세상에서 가장 청정한 신도들이, 세상에서 가장 청정한 가사를 공양합니다”라는 주지스님의 말씀을 가슴에 담고 지극한 마음으로 스님들께 가사와 장삼을 공양 올렸다. 맑은 물을 따르고 또 따르니, 놀랍게도 어느 순간 삼륜이 청정한 세상이 구현될 것이다.

어떤 사건이 역사의 흐름을 바꾸는 계기가 될 때, ‘역사적 사건’이라 한다면 반야사 신도들의 가사공양 공승제는 단연코 한국불교의 역사적 사건이라 할 만하다. 종단이나 본사에서 기획한 불사도 아니고, 대규모 사찰에서 개최한 행사도 아니다. 도심의 조그만 비구니 사찰 신도들이 주지스님의 뜻에 공감하여 이렇듯 장엄한 공승재를 행하였다고 하는 것은 한국불교의 도약을 위한 가장 불교적인 차원의 시도이기 때문이다. 비판을 넘어서 함께 할 때 한국불교의 미래가 열릴 것이다.

심원 스님 중앙승가대 강사 chsimwon@daum.net
 


[1397호 / 2017년 6월 28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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