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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 카투니스트 지찬 스님

“남을 칭찬하고 관심 갖다보면 내가 행복해집니다”

▲ 지찬 스님은 “만화를 통해 상처받은 이들에게 희망을 주고, 스스로 삶의 대해 진지하게 성찰할 수 있는 기회를 주고 싶다”며 불교 카투니스트가 된 이유를 설명했다.

“좋은걸 어떡해, 그녀가 좋은걸. 누가 뭐라 해도, 좋은걸 어떡해. ~ 눈 감으면 떠오르고, 꿈을 꾸면 나타나고, 안보면 보고 싶고, 헤어지기 싫어지네. 좋은걸 어떡해~♬”

칭찬은 상대 관찰하고
관심으로 바뀔 때 가능
처음엔 어색할 수 있어도
하다보면 스스로도 만족

동물친구 위해 음식 나른
리리카의 선행을 보면서
‘어떻게 살까’ 깊은 고민
‘남 위한 삶 살겠다’ 발원

이 노래 많이 들어보셨죠? 부처님에 대한 마음이 이 마음 같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화두 공부를 할 때도 저렇게 된다면 금방 깨우칠 겁니다. 눈을 감아도 떠오르고, 꿈을 꿔도 나타나고. ‘몽중일여’ 아닌가요?

저는 어렸을 때 이런 노래가 찬불가였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출가해서 얼마 안 됐을 때는 전통적인 것이 고리타분하다고 여겼습니다. 그래서 늘 파격을 꿈꿨습니다. 그런데 파격을 추구하다가 보니 어느 순간부터 저 역시 전통으로 회귀하게 되더라구요. 쉽게 이야기해서 자동차 ‘튜닝’을 많이 해본 사람들은 다 알겁니다. 차를 새롭게 꾸며보고 싶어서 계속해서 튜닝을 하지만 나중에는 결국 처음 출시될 때의 차모양이 제일 좋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파격’ ‘파격’ 하지만 결국 그 안에 본질적으로 갖췄던 것들이 굉장히 중요하다는 것을 파격을 통해 알게 된다는 뜻입니다.

제가 선방을 다닐 때 한 중진스님이 하신 말씀이 기억이 납니다. 그 스님도 저 같은 시절에는 선배 노스님들을 보면서 한탄을 했다는 겁니다. 저 나이가 되도록 깨닫지 못하고 뭘 하는지 모르겠다면서요. 그런데 막상 자신도 20~30안거를 지나도록 깨닫지 못했다면서 젊은 날 노스님들을 비판했던 것이 부끄럽게 여겨졌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저 역시 그런 과정을 겪으면서 공부라는 것도 과정이 있고 그 과정 속에서 선배스님들이 얼마나 치열하게 살아오셨는지를 알게 됐습니다. 수행을 하다보면 매너리즘에 빠지고, 새롭지 않다고 느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진득하니 하다보면 하나씩 건져지는 것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제가 만화를 하게 된 계기는 일본작가 고이즈미 요시히로의 ‘우리는 모두 돼지’라는 책을 보면서부터입니다. 지금은 절판이 되어서 구하기가 쉽지 않는 만화책입니다. 작가는 불교를 전공한 분이 아니었지만 네 컷의 만화를 통해 인간의 마음을 불교적으로 해석하고 있었습니다. 배경도 별로 없고, 캐릭터의 말로 이야기하는데 그 내용이 선(禪)적입니다. 저는 자괴감이 들었습니다. 스님인 나도 말로 표현하지 못하는 불교이야기, 마음이야기를 어떻게 저 간단한 만화로 표현할 수 있을까? 한편으로는 ‘저 정도는 나도 그릴 수 있겠다’라는 생각을 가졌습니다. 만화를 통해 상처받은 이들에게 희망을 주고, 삶의 대해 진지하게 성찰할 수 있는 기회를 주면 좋겠다고 마음먹었습니다. 이후 저는 만화를 수행으로 삼았습니다.

그런데 처음에는 마음먹은 대로 잘 되지 않았습니다. 예술가들은 삶과 정신이 혼용일체가 되었을 때 작품이 나오는 것인데, 저는 그림에 메이고, 스토리에 메이고, 시간에 쫓기다보니 생각처럼 되지 않았습니다. 어릴 때 삶에 대해 아주 자연스런 질문으로 의심을 하다보면 깊게 사유할 수 있었는데 선방에 와서 억지로 화두를 들면 잘 안 되는 것과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러다가 ‘화엄경’에서 “마음은 그림을 그리는 화가와 같아서 능히 모든 세상을 다 그리네. 오온이 모두 마음으로부터 생기기에, 만들지 않은 것이 없네. 마음과 같이 부처 또한 그러하며 부처와 같이 중생도 그러하네. 응당이 알라. 부처와 마음은 그 최상이 모두 끝이 없네”라는 구절을 보고 한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림도 수행과 하나가 될 수 있다고 여겼습니다. 변화하는 마음의 무궁무진한 세상을 그림으로 그렸다, 담았다, 풀었다, 헤쳤다 할 수 있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물론 아직 그 경지까지 가지는 못했지만, 그 일체된 삶을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학생들에게 마음을 담아 부모님을 칭찬하고, ‘칭찬일기’를 써보라는 숙제를 낸 적이 있습니다. 그런데 처음에는 어색하고, 부끄러워서 잘 못합니다. 또 갑자기 아이가 생뚱맞은 말을 하자, 부모님들도 낯설어 합니다. ‘얘가 오늘 뭘 잘못 먹어나’ ‘공부나 하라’는 등의 잔소리를 했겠지요.

아이들은 ‘돌아오는 것은 서운한 말 뿐인데 이것을 어떻게 30번이나 해’ ‘이게 효과가 뭐가 있다고’ ‘더 힘든 건 도저히 칭찬한 내용이 없다’고 투정하면서 포기하려고 했지만 숙제니까 강제적이라도 해야 한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그러면서 아이들은 부모님의 말과 행동, 표정 등 세세한 것까지 관찰을 하게 됩니다. 그리고 엄마, 아빠의 상황에 맞는 적당한 칭찬꺼리를 찾게 됩니다. 관찰이 조금씩 관심이 되는 지점입니다. 관찰이 관심이 되기까지는 사실 오랜 시간이 걸립니다. 엄마, 아빠라는 이름에 가려서 보지 못했던 모습을 인간적인 사람으로 보게 되는 겁니다. 이런 과정을 거치면서 아이들은 스스로 변화를 체험합니다. 30번 칭찬일기를 마치고 내린 결론은 두려워하지 않고, 겁내지 않고, 부모님을 칭찬한 자신을 대견해 하면서 스스로 ‘나도 참 괜찮은 사람 같다’고 말합니다. 아이들은 스스로 알아차린 것입니다. 칭찬을 하고 관심을 갖다 보니, 남을 칭찬했는데 내가 행복해 진 것을 알게 된 것이지요.

저는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에 대해 고민을 많이 했습니다. 그러다가 ‘페이스북’에 올라온 한 영상을 보고 많은 생각을 하게 됐습니다.

브라질에서 3년 동안 입에 가방을 물고 다니는 개가 있어서 화제가 되었다고 합니다. 이 개의 이름은 ‘리리카’라고 불렸고, 암컷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개가 물고 다니는 그 가방은 누군가 강제로 맡긴 것이 아니었습니다. 리리카 스스로 물고 다니는 것이었습니다. 리리카는 가방을 물고 왕복 6.5km의 길을 부지런히 다니고 있었습니다. 사람들은 ‘리리카 가방에는 무엇이 들어있을까?’ ‘왜 가방을 물고 다니는 것일까?’ 하며 궁금해 했겠지요.

사연을 알아보니 그 개는 브라질 상카를로스의 한 폐품 하치장에서 살고 있었는데, 5년 전 누군가에게 버림을 받고 이후 계속해서 그 곳에 살고 있었답니다. 그러다가 3년 전부터 루시아 헬레나드 수자 씨의 집 근처를 어슬렁어슬렁 거렸다고 합니다. 수자씨는 동물애호가로 그 집에는 주인 잃은 13마리의 개와 30마리의 고양기가 함께 살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수자씨가 자신의 집 앞을 기웃거리고 있는 리리카를 발견한 것입니다. 수자씨는 리리카에게 먹이를 먹으라고 줬습니다. 처음에는 음식을 맛있게 먹던 리리카가 어느 순간부터 음식을 먹지 않고 그냥 보고만 있더라는 겁니다. 개가 자신의 본능을 거스르는 행동을 한 것이지요. 이를 이상하게 여긴 수자씨가 남은 음식을 가방에 넣어서 리리카의 입에 물려줬답니다. 그랬더니 리리카는 가방을 물고 어디론가 가더랍니다. 이런 일이 반복이 됐지요. 그래서 수자씨가 리리카의 뒤를 따라 가봤답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리리카는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여러 동물 친구들에게 음식을 나눠주고 있었답니다. 동물 친구들을 위해 리리카는 음식을 남겨서 가져갔던 것입니다.

이후 수자씨가 음식을 주고 리리카는 그 음식을 운반했고, 이것이 둘만의 일상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더 놀라웠던 것은 리리카가 자신의 동족인 개뿐만이 아니라 고양이, 닭 등 여러 동물들에게 음식을 똑같이 나눠줬다고 합니다. 교통량이 많은 길을 가는 것이 좀 걱정이 됐지만 수자씨는 리리카에게 늘 같은 시간에 음식을 주었다고 합니다. 수자씨는 리리카를 자신의 집에서 돌보고 싶었지만, 동물친구들을 위한 리리카 마음을 생각해 그만 두었다고 합니다. 수자씨의 집에서 편하게 살 수도 있었지만, 리리카는 자신보다는 이웃을 먼저 생각한 것입니다.

나만 좋으면 주변을 의식하지 않고 살아가는 사람들도 많은데 리리카는 무한한 사랑을 실천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어떻게 개가 이런 사유를 하고 행동할 수 있을까’ 많이 부끄럽기도 했습니다.

이 영상을 보면서 리리카가 저보다 낫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리고 제 자신을 돌아보고 질문을 했습니다. ‘나는 과연 무한한 사랑을 실천하고 있는가?’ ‘사랑이라는 것을 알기는 한 것일까?’ 이런 생각이  이웃을 위한 사랑이 참 사랑이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여러분들도 여기에서 공부하신 것을 갖고 무한한 사랑의 완성을 하셔서, 세상에 사랑과 자비의 씨앗을 심으셨으면 좋겠습니다. 그것이 보살도의 길이 아닐까 싶습니다.

지금도 티베트에서는 경전의 글귀를 써서 바람에 날린다고 합니다. 그런데 정말 날리겠습니까. 그것은 바로 불법의 의미를 날리는 것이겠지요. 우리도 눈에 보이지 않는 사랑과 자비의 마음을 자꾸 흘려보내고 세상에 윤회를 시켜야 불씨가 꺼지지 않습니다. 저도 아직 그렇게 살고 있지는 못합니다만 ‘어라의 라이프카툰’을 통해 노력해 나가고 있습니다. 여러분도 여러분의 삶 속에서 사랑과 자비의 씨앗을 널리 퍼트렸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감사합니다.

정리=권오영 기자 oyemc@beopbo.com


이 법문은 지난 5월26일 부산 대광명사에서 봉행된 ‘음력 5월 초하루 법회’에서 불교 카투니스트 지찬 스님이 설한 특별 법문을 요약한 내용이다. 


[1397호 / 2017년 6월 28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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