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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 저것이 아무것도 아니라면

기자명 김용규

흙 한 자밤에도 노란 생명은 피어난다

들판의 민들레가 아무 것도 아닌 존재라고 여겼던 부끄러운 시절이 내게 있었습니다. 10여 년도 더 지난 서울살이 그 시절, 내 영혼이 참으로 가난했던 시절의 이야기입니다. 아직 청년의 시간이었던 그때, 나는 욕망하는 것들을 향해 달려 나가고 그것을 성취하며 물질이나 지위의 실적을 채워가는 그것이 삶의 가장 중요한 과정이라고 여겼던 것 같습니다. 그런 관점은 나 아닌 타자를 이롭거나 해롭거나, 혹은 의미 있는 존재이거나 별 의미 없는 존재로 간주하는 처신으로 연결되었습니다.

민들레 보려 옹벽에 멈추던 순간
분명한 의미로 다가와 삶 변화해

펼쳐나가던 욕망이 하나 둘 벽에 부딪히는 날이 당연히 생겼고 날을 세운 마음의 긴장이 몸으로 스미다가 몸 어느 구석에 깊게 머물며 통증으로 찾아오고 말았습니다. 나는 다행이 몸이 건네는 절박한 말을 깊게 들었습니다. 하릴없이 산책을 하는 시간을 평일의 일상에 배치하기 시작했고 주말마다 등산을 하며 숲을 배회하는 시간을 갖게 되었습니다. 카메라 하나 어깨에 걸고 산책을 하던 어느 날 내게는 아무 것도 아닌 존재로 여겼던 민들레 한 포기를 완전히 새롭게 만났습니다.

깎아지른 옹벽 중턱에 흙 한 줌 없는, 다만 주변의 돌보다 약간 튀어나온 돌 위에 우연히 쌓인 먼지에 가까운 흙 한 자밤에 겨우 의탁해 가녀리게 피어난 노란색 민들레 한 송이를 보게 된 것입니다. 느리게 걷던 걸음이 저절로 멈춰졌습니다. 경탄이 절로 튀어나왔습니다. ‘놀랍구나! 민들레야.’ 미친 사람 뜻 없이 중얼거리듯 그 민들레에게 입 밖으로 소리를 내어 물었습니다. ‘어쩌다가 이런 자리에 날아와 싹이 텄더냐? 어떻게 이 가난을 딛고 네 꽃을 피웠더냐?’

되돌아보면 옹벽 아래에서 걸음을 멈추던 이 순간이 내 삶에는 극적인 전환점이 되었습니다. 내게 단 한 번도 어떤 의미이지 못했던 민들레가 이제 내게 분명한 의미가 되어 다가온 순간이 바로 그 순간이었습니다. 그때 나는 보잘것없다고만 여겼던 풀 한 포기에게 삶에 대해 묻고 있었던 것입니다. ‘너는 왜 태어났느냐? 하필 왜 이 가난한 땅에서 태어났느냐? 그리고 어떻게 이 가난을 넘어서 네 꽃을 피웠느냐?’ 이제와 생각하면 그 질문은 기실 내게 던졌던 질문이었던 것임을 알게 됩니다. ‘너는 왜 태어났느냐? 왜 하필 결핍을 가득한 집안에서 태어났느냐? 너는 너의 꽃을 피울 수는 있는 것이냐? 아니 진짜 너의 꽃을 피우려는 것이냐, 세상 사람들이 아름답다 말하는 그저 더 화려하기 만한 꽃을 피우고 싶어 안달했던 것이냐?’

이후 나는 민들레만이 아니라 더 많은 생명들에게 혼자 질문을 던지는 버릇이 생겼고, 더 자주 숲으로 찾아드는 시간을 갖게 되었습니다. 높다란 벽을 넘고 있는 담쟁이덩굴 앞에서 긴 시간을 멈추기도 했고, 수락산 정상 어느 부근 거대한 화강암 덩어리 한 구석을 뚫고 살아가고 있는 키 작은 소나무 한 그루를 매주 찾아가 말을 건네기도 했습니다. 그 시절 나는 내가 만난 아주 많은 나무와 풀들에게서 내가 당면한 삶의 욕망과 좌절, 그리고 절박함 같은 것을 보았습니다. 그리고 그들이 어떻게 그 불완전한 삶의 여건을 극복하고 오로지 자신으로 살며 타자의 것을 흉내 내어 피운 것이 아닌 오직 자기 자신의 꽃과 열매를 피우고 맺으며 살아가고 있는지를 알아채게 되었습니다. 하찮거나 의미 없게 마주했던 아무 것도 아니던 존재가 이제 내게 너도 나처럼 살아보라는 가르침을 주는 스승으로 찾아오기 시작한 때가 바로 그 시절이었습니다. 그리고 생명들이 부르는 삶의 노래를 들으며 살자고 결심하여 숲으로 삶을  옮기게 되었습니다.

그로부터 10여년, 불완전하기는 하지만 나는 이제 나무와 풀만이 아닌 들짐승과 날짐승, 그리고 더 많은 생명에게 질문하고 답을 듣는 사람으로 변화하게 되었습니다. 그 시간 동안 듣게 된 가장 큰 가르침을 오늘 공개합니다. 바로 이것입니다. ‘저것이 아무 것도 아니라면, 나도 아무 것도 아니겠구나.’ 언젠가 당신도 저 풀이 아무 것도 아니라면 나도 아무 것도 아님을 알아채는 날 있으시기를. 하여 저 이의 슬픔이 나의 슬픔처럼 녹아들어서 함께 울어주는 이로 살 수 있기를. 우리가 그렇게 붓다의 자비를 흉내로라도 행하며 살 수 있기를.

김용규 숲철학자 happyforest@empas.com
 


[1397호 / 2017년 6월 28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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