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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6. 김초혜의 ‘안부’

기자명 김형중

다시 만날 날 기약하는 마음을 담아
어머니가 시집간 딸에 띄운 편지 시

강을 사이에 두고
꽃잎을 띄우네

잘 있으면 된다고
잘 있다고

이때가 꽃이 필 때라고
오늘도 봄은 가고 있다고

무엇이리
말하지 않은 그 말

엄마가 자식 기다리는 마음과
사랑하는 이가 배 기다리듯이
한 아닌 단아한 어머니 마음에
인욕선인의 바라밀행 깃들어

강을 사이에 두고 사랑하는 사람이 강 건너에 살고 있다 시인 고은은 ‘저 건너’란 시에서 “어찌 살고/ 너 없이”라고 표현했다. 김초혜(1943~ 현재) 시인은 여인답게 사랑하는 임에게 “꽃잎을 띄우네/ 잘 있으면 된다고/ 잘 있다고” 오늘도 꽃피는 봄은 아름답고 행복하게 잘 가고 있으니 그런 줄 알라고 노래하고 있다.

멀리 떠나 시집간 딸에게 어머니가 띄우는 편지시다. 시인은 ‘어머니’란 시에서 “한 몸이었다가/ 서로 갈려/ 다른 몸이 되었는데/ 주고 아프게/ 받고 모자라게/ 나뉘일 줄/ 어이 알았으리”라고 하였다. 남북의 긴 강을 사이에 두고 이산가족이 그리움으로 가슴이 미어져 몇 해를 울다가 꽃잎을 띄워서 안부를 묻는 시다. 서로 잘 살고 있어야 다시 만날 수 있다.

안부(安否)란 어떤 사람이 탈 없이 편안하게 지내는지 그렇지 않은지에 대한 소식이나 인사를 전하거나 묻는 일을 말한다. 이 시는 병나지 않고 서로 잘 있으면 된다고 격려하며 안부를 묻고 다시 만날 기약을 기대하는 마음이 담겨있다.

고향에 계신 부모가 집을 떠나 군대에 간 아들에게 안부를 묻는다. “잘 있으면 된다고/ 잘 있다고” 하였다. 전쟁할 때 군에 있는 아들과 부모의 마음은 오직 동백꽃 기다림뿐이다. 탈 없이 살고 있으면 천리만리 떨어져 있어도 괜찮다. 참을 만하다. 그곳에는 지금쯤 꽃이 필 때이고 이곳도 봄날은 잘 가고 있다.

사랑하는 사람이 금방 달려가서 만날 수 없는 사연이 있는 사람들이다. 서로가 할 말이 끝없는 장강수인데 안부를 다 구구절절이 물을 수 없다. 마지막 구 “무엇이리/ 말하지 않은 그 말”은 말 없는 말 속에 깊고 많은 말이 천만 언어가 함축되어 있다. 함축미는 절묘한 표현으로 시의 최고 창작기법으로 시를 절정에 이르게 한다. 이심전심이 언어문자 이전의 원초적 소통법이다.

오현 스님은 ‘사랑의 거리’란 시에서 “사랑도 사랑 나름이지/ 정녕 사랑을 한다면/ …그 물론 만나는 거리도/ 이승 저승쯤 되어야”라고 하였다. 강 건너 사이를 두고 사랑하는 청춘남녀가 사랑을 하는데 서로 만날 수가 없는 것도 애달픈 일인데, 이승과 저승을 사이에 둔다면 멀고 깊은 사랑이다.

“강을 사이에 두고 꽃잎을 띄우네” 아름다운 시구다. 나이를 초월해서 꽃잎을 보내 줄 수 있는 사람이 있다면 얼마나 아름다운 일인가? 꽃은 세상에서 가장 아름답다.

김초혜 시인은 ‘꽃은 피는데’의 시에서 “다시는 이 봄에/ 못 오실 줄 알지만/ 꽃이 피니 행여나”라고 노래했다. 시인은 “인생은 기다림이다”라고 하였다. ‘어머니’ ‘사랑굿’의 시인답게 그의 시 속에는 어머니가 자식을 기다리는 마음과 사랑하는 사람이 강을 건너려고 배를 기다리듯이 인내심을 가지고 기다리는 마음이 나타나 있다. 기다림의 한(恨)보다는 단아한 어머니의 마음인 인고(忍苦)의 기다림이 잘 나타나 있다. 인욕선인의 인욕바라밀행이 깃들어 있다.

김초혜의 남편 조정래 소설가는 ‘태백산맥’ ‘아리랑’ ‘한강’ 등으로 1980년대를 대표하는 대표 작가이다. 시아버지 조종현은 승려시인으로 한용운에게 시의 정신을 배웠다. 이태극, 이은상, 정인보와 함께 현대시조 문학을 개척한 선구자다. 부부, 부자가 동국대학교 출신으로 한국문단의 기둥이다.

김형중 동대부여중 교장·문학박사 ililsihoil1026@hanmail.net
 


[1397호 / 2017년 6월 28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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