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영역

본문영역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25. 살리에리의 열등감과 질투

“그는 아마도 전생에 큰 공덕을 지었을거야”

▲ 그림=근호

주변 사람들에게 열등감이나 질투심을 느끼는 심리 상태를 ‘살리에리 증후군’이라 하는데, 증후군(신드롬)은 일관된 증세를 보이지만 병명을 붙이기에게는 인과 관계가 확실하지 않은 경우에 붙인다. 살리에리(Antonio Salieri, 1750~1825)는 모차르트와 경쟁 관계에 있었던 실재 인물이다.

열등감 병증인 살리에르 증후군
천재 모차르트 질투한 살리에르
불교에서 재능은 공덕의 결과물
인과법으로 ‘질투와 오만’ 극복 
 

1984년에 발표된 영화 ‘아마데우스’는 피터 셰퍼가 쓴 동명의 소설을 스크린으로 옮긴 것이다. 소설과 영화에서 살리에리는 모차르트를 질투한 나머지 살해하는 것으로 묘사된다. 그러나 이는 사실이 아니다. 살리에리가 모차르트를 질투했는지 여부는 알 수 없지만 그가 모차르트를 살해했다는 어떤 증거도 남아 있지 않다. 다만 모차르트가 죽었을 때 그가 모차르트를 살해했다는 소문이 떠돈 적은 있다고 한다. 영화에서 음악 역사상 최고의 천재로 꼽히는 모차르트는 살리에리에게 도저히 따라잡을 수 없는 적수로 등장한다. 모차르트가 살리에리 앞에 나타나던 때 살리에리는 오스트리아의 궁정 악장이자 전속 작곡가였던 데 비해 모차르트는 신출내기 후배 음악가에 불과했다. 문제는 살리에리가 ‘인간의 아들’이었던 데 비해 모차르트는 ‘신의 키스를 받고 태어난 사람’이었다는 데 있었다.

살리에리는 1788년부터 36년 동안 궁정 악장으로 일하면서 43편의 오페라를 작곡했는데, 그에 의해 작곡된 오페라들은 18세기 말 전유럽에서 갈채를 받았다. 그의 오페라는 빈 사람들에게 모차르트의 오페라 ‘돈 조반니’보다 높은 인기를 끌었다고 한다.

살리에리는 하이든과 친교를 맺었고, 베토벤에게는 대위법을 가르쳤다. 살리에리와 베토벤은 한편으로는 스승과 제자, 다른 한편으로는 존경하는 음악 동료로서의 관계를 맺었다. 슈만과 리스트 또한 살리에리를 스승으로 모시고 배운 적이 있다. 오늘 날로 치면 그는 한 베를린 오케스트라의 단장 정도의 지위에 있었다. 얼마나 훌륭한가. 문제는 그의 옆에 모차르트라는 역사상 최고의 천재가 있었다는 사실이었다. “하늘은 왜 나를 낳고 공명을 낳았단 말인가!”라고 탄식한 것은 ‘삼국지’의 주유였지만, 주유 옆에 공명이 있었던 것처럼 살리에리 옆에는 모차르트가 있었던 것이다.

실제에 있어서는, 살리에리는 모차르트를 자신의 라이벌로 여기지 않았다. 살아 있을 당시 모차르트는 후대에 이름을 떨친 것에 비하면 비교적 큰 존중을 받지는 못하는 음악가였고, 따라서 모차르트에 비해 훨씬 지위가 높고 부유했던 그가 모차르트를 질투할 이유가 없었던 것이다.

그러나 영화는 그런 사실을 바탕으로 전개되지 않는다. 영화에 따르면 살리에리는 모차르트를 따라잡을 수 없는 자신의 능력 때문에 고민에 고민을 거듭한다. 그는 묻는다. 신은 대체 왜 이런 불평등한 운명을 나에게 준단 말인가. 저 모차르트는 내가 사흘간 땀 흘려 작곡한 작품을 즉석에서 변주하여 더 좋은 것으로 만들어버리는 천재를 주셨다. 그런 그에 비해 나는 신에게 어떤 존재란 말인가.

모차르트는 천재의 대명사처럼 여겨지는 사람이다. 이런 일반적 인식을 바탕삼아 필자는 다음과 같은 일화를 창작한 적이 있다.

어느 때 한 젊은 음악가가 대가가 되어 있는 모차르트를 찾아와 당신 같은 위대한 작곡가가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물었다. 그러자 모차르트는 안 된다고 대답했다. 청년이 물었다.

“왜 안 됩니까?”
“물어 보았으니까.”
“예?”
“나는 음악에 대해 남에게 물어본 적이 없다네. 자네의 질문에 대한 내 대답은 이거야. ‘그냥 흘러나오는 대로 쓰게.’ 음악은 내 안에서 끊임없이 넘쳐 흘러나오지. 내 안에는 음악 그 자체가 있는데 그건 배워서 생긴 게 아니야. 난 남에게 음악에 대해 묻질 알아. 그런데 자네는 내게 묻고 있지 않나?”

하늘이 낸 사람, 재능을 하늘에서 부여받은 사람, 천재는 이런 사람이다. 그렇지만 역사를 빛낸 천재 가운데에는 재능에 있어서는 천재이지만 인성에 있어서는 배울 점이 전혀 없는 사람도 많다. 영화는 모차르트를 그런 사람으로 묘사한다. 영화에서 모차르트는 살리에리의 약혼녀를 범하고 오만방탕한 생활을 계속한다(이 또한 사실이 아니다).

살리에리는 더이상 모차르트에게 천재를 부여한 신의 불공평한 처사를 참을 수 없었다. 그 즈음 빈곤과 병마에 시달리던 모차르트가 아버지의 죽음과 관련하여 자책감에 시달리게 되고, 살리에리는 이것을 이용하기로 결심한다.

살리에리는 얼굴을 가린 검은 옷을 입고 모차르트를 찾아가 진혼곡을 작곡해줄 것을 주문한다. 그럼으로써 모차르트가 심리적 압박을 받기를 원했던 것이다. 결국 모차르트는 살리에리의 교묘한 유도에 따라 죽음을 맞고, 살리에리는 그 나름의 대가를 치른다.

재능은 어디서 받는 것일까. 흔히 ‘하늘에서 받는다’고 하지만 이때의 하늘이 무엇인가는 생각하기 나름이다. 하늘을 신으로 해석할 수도 있고, 우연으로 해석할 수도 있다는 뜻이다.

불교는 그것을 신이나 우연에 의해 받는다고 말하지 않는다. 불교는 모든 사건에는 원인이 있다고 본다. 그렇다면 나의 출생과 그때 내가 갖고 태어나는 재능 또한 원인이 있을 것이다. 이런 식으로 따져 올라가다보면 전생이 설정되고, 내가 이번 생에 갖고 태어난 재능의 수준을 결정하는 것은 전생에 내가 지은 공덕의 있고없음이 된다.

불교는 윤회를 말하고, 윤회는 전생­·금생­·내생으로 이어지면서 공덕에 대해서는 보상하고 악덕에 대해서는 징벌한다. 만일 이를 받아들인다면 살리에리는 모차르트의 천재에 대해 ‘신의 불평등한 처사’라며 불만을 터뜨리는 대신 ‘그는 아마도 전생에 큰 공덕을 지었을 거야’라고 말하며 질투심으로 끌어오르는 자신의 마음을 잘 다스릴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거꾸로, 모차르트의 입장에서는 ‘나의 천재성은 전적으로 전생에 내가 큰 공덕을 지었기 때문이다’라고 믿음으로써 오만해질 여지도 있다. 불교는 인과를 말하는 한편 이 점을 경계한다. 살리에리의 ‘질투’ 또한 마음의 질병이라고, 모차르트의 ‘오만’ 또한 큰 악업이라고 ‘법구경’은 말하고 있는 것이다.

나보다 뛰어난 경쟁자의 재능이 나를 불행하게 하는가, 감탄하게 하는가. 그를 이기기 위해 모든 능력을 다 쏟아 부은 다음의 패배를 흔연하게 받아들일 수 있는가, 없는가. 이는 불제자와 함께 세상의 모든 살리에리들에게 던져진 인과의, 신의, 하늘의 엄중한 질문이다.

김정빈 소설가·목포과학대교수 jeongbin22@hanmail.net
 


[1398호 / 2017년 7월 5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 이 기사를 응원해주세요 : 후원 ARS 060-707-1080, 한 통에 5000원

저작권자 © 불교언론 법보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광고문의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

하단영역

매체정보

  • 서울특별시 종로구 종로 19 르메이에르 종로타운 A동 1501호
  • 대표전화 : 02-725-7010
  • 팩스 : 02-725-7017
  • 법인명 : ㈜법보신문사
  • 제호 : 불교언론 법보신문
  • 등록번호 : 서울 다 07229
  • 등록일 : 2005-11-29
  • 발행일 : 2005-11-29
  • 발행인 : 이재형
  • 편집인 : 남수연
  • 청소년보호책임자 : 이재형
불교언론 법보신문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는 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