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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란 무엇일까?

기자명 광전 스님

얼마 전 문재인 대통령이 세월호 참사로 희생된 기간제 교사 2명의 순직 인정 절차를 진행하라고 지시했다. 공무를 수행하다 숨진 공직자는 앞으로 정규직이나 비정규직 여부에 상관없이 순직 처리하는 방안을 검토하라는 지시다. 덕분에 세월호 사고 당시 마지막까지 학생들을 구조하다 사망한 두 교사는, 3년 3개월이 지난 7월6일 드디어 순직을 인정받을 수 있었다.

공무원연금법상 공무원을 ‘상시 공무에 종사하는 자로 한정’하는데 인사혁신처가 국가인권위원회의 순직인정에 대한 권고에도 불구하고, 정규직 공무원에게만 적용되는 것으로 법을 좁게 해석했기 때문에 벌어진 일이다.

그리스 신화에 등장하는 ‘정의의 여신’ 디케(Dike)는 두 눈을 가린 채 저울을 들고 있다. 법과 정의를 세우려면 심판 대상의 지위고하를 가리지 말고 엄정하게 판단해야 한다는 이유에서다. 혈연이나 재력, 권력에 정의가 굴절되는 일이 없도록 하기 위함이다.

1930년경 미국에서 어느 노인이 빵을 훔쳐 먹다가 재판을 받게 되었다. 판사가 노인을 향해 “늙어서 염치없이 빵이나 훔쳐 먹고 싶습니까?”라고 물었다. 노인이 그 말을 듣고 눈물을 글썽이며 “사흘을 굶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그 때부터는 아무 것도 보이지를 않았습니다”라고 대답했다. 판사는 이 말을 듣고 한참을 고민하더니, 노인에게 “빵을 훔친 절도죄로 벌금 10달러에 처합니다”라는 판결을 내렸다. 방청석에서는 인간적으로 사정이 정말로 딱해 판사가 용서해 줄줄 알았는데, 해도 너무한다고 여기저기서 술렁대기 시작하였다.

그런데 판사는 판결 후 자기 지갑에서 10달러 지폐를 꺼내고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그 벌금은 내가 내겠습니다. 내가 이 벌금을 내는 이유는 그 동안 내가 좋은 음식을 많이 먹은 죄에 대한 벌금입니다. 나는 그 동안 좋은 음식을 너무 많이 먹었습니다. 오늘 이 노인 앞에서 참회하고 그 벌금을 대신 내드리겠습니다.” 이어서 판사는 “이 노인은 재판장을 나가면 또 다시 빵을 훔치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니 여기 모여 방청한 여러분들도 그 동안 좋은 음식을 먹은 대가로 이 모자에 조금씩이라도 돈을 기부해 주시기 바랍니다”라고 했다. 그러자 그 자리에 모인 방청객들도 호응해 십시일반 호주머니를 털었고, 그 모금액은 그 당시로는 적지 않은 47달러 50센트나 되었다. 이 재판으로 그 판사는 유명해져서 나중에 뉴욕시장을 역임하게 되었는데 그의 이름은 라괴디아 판사이다. 안타깝게도 그는 뉴욕시장으로 재직 중에 비행기 사고로 순직했는데 뉴욕시는 시내에서 가까운 허드슨 강변에 라과디아 공항(La Guardia Airport)을 지어 이분의 이름을 기리고 있다.

라과디아 판사의 선고처럼 빵을 훔친 죄는 빈부귀천을 떠나 공평하게 판결해야 한다. 그러나 그 판결을 해석하고 집행하는 것은 그 대상의 형편을 고려해 사회적 약자에 유리하게 해석하고 집행해야 한다. 이것이 정의일 것이다.

법의 해석과 집행을 상대적으로 사회적 약자에게 유리하도록 해야 하는 이유가 또 하나 있다. 법은 국회에서 국회의원들이, 우리 종단 같은 경우는 종회에서 종회의원들이 제정한다. 국회의원이 법을 입법할 때 다양한 계층과 단체들의 목소리를 반영해 법을 제정하게 되는데 아무래도 힘 있고 목소리 큰 단체나 계층의 의견을 많이 반영하게 마련이다. 그러므로 법을 해석하고 집행할 때만이라도 힘없고 목소리 작은 사회적 약자에 유리하게 해석하고 집행하는 것이 더 합당하지 않을까?

얼마 전 우리나라의 촛불혁명에서 보았듯이 세상을 바꾸는 것은 힘 있고 잘난 사람들이 아니다. 힘 있고 잘난 사람들은 고려해야할 이익과 관계가 너무 많기 때문에 쉽게 변화에 앞장설 수 없다. 작고 왜소한 소시민들이 분노와 슬픔을 딛고 연대의 힘으로 공정한 사회를 만들어 나가는 것이다.

광전 스님 조계종 중앙종회의원 chungkwang@yahoo.com
 


[1399호 / 2017년 7월 12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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