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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 정말 알아야 할 것

기자명 김용규

그 똑똑한 아이들이 어쩌다 괴물이 되었을까?

여기저기 다니다 보면 지역에 이런 현수막이 이따금 걸려 있는 것을 보게 됩니다. ‘경축, 아무개의 자 또는 여 누구, ○○대학교 ○○학과 입학’ ‘경축, 아무개의 자 또는 여 누구, ○○고시 합격.’ 혹은 ‘아무개 장군 진급’, ‘아무개 무슨 박사학위 취득’…. 사회적으로 특별한 성취라고 여겨지는 것을 축하하는 이웃의 마음이 그렇게 내걸리곤 합니다. 한편 학원들은 그 학원 등록 학생이 학교에서 이룬 성적의 성취를 현수막으로 내걸어 자랑합니다. 지역 사회만이 아니라 학원과 학교에서도 성적의 향상과 그 특별한 성취를 현수막으로 내걸어 자랑하는 아주 독특한 현상을 목격하는 것은 우리 주변에서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세상 혼란으로 이끈 고위 공직자
느끼지 못한다면 고귀함도  잃어

지나간 겨울부터 지금까지 세상을 혼란으로 이끈 다양한 인사들의 행태를 뉴스로 만날 때마다 나는 여기저기 가끔씩 내걸리는 그 현수막의 풍경들과 그들의 얼굴이 오버랩 되었습니다. 문화계의 블랙리스트를 만들어 특정한 문화 인사들을 탄압했다는 율사 출신의 노회한 인물이나, 대학교수 출신 장관의 뉴스가 그랬고, 방산비리로 국방을 유린한 인물들의 뉴스 때도 그랬습니다. 고위 검사가 바바리맨으로 등장했다는 뉴스가 그랬고, 정권 실세의 자리에서 비열하게 권력을 휘둘렀다는 검찰 출신 인사가 피의자로 재판에 출두하며 여론으로 자신을 재단하지 말고 법리로 자신을 판단하라 요구하는 모습에서도 그랬습니다.

우리 사회의 일반적 모습으로 보면 아마도 그들이 살았던 지역이나 그들이 나온 어떤 모교에서는 어느 순간 그들을 자랑하는 현수막을 걸었을 것입니다. 그들이 입신(立身)하여 양명(揚名)하던 순간에 그가 바로 우리 학교 출신이고, 그 똑똑했던 아이가 우리 지역에서 태어난 사람이라고!

지난 반년 동안 내가 뉴스에서 접했던 그 똑똑했던 아이들 대부분은 나의 시선으로 볼 때 괴물이 되어 있었습니다. 그들에게 지금 다시 도덕(道德)시험 문제를 낸다면 그들은 어떻게 답을 할까요? 예컨대 ‘다음 중 공직자나 사회지도층 인사로서 바르지 못한 행동은?’ 혹은 ‘올바른 행동은?’이라는 시험 문제를 내면서 그들이 벌인 행동과 처신을 사례의 보기로 낸다면 그들은 무엇이라 답할까요? 추정해 보건대, 그들은 틀림없이 도덕 교과서가 요구하는 정답을 골라낼 것입니다. 그들 대부분은 시험 하나만은 기가 막히게 잘 보아온 인물들일 테니 말입니다.

그 똑똑했던 아이들은 어쩌다 괴물이 되었을까요?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나는 그 가장 중요한 원인을 ‘느끼지 못하는 삶’을 살았기 때문일 것이라는 데서 찾습니다. 시험 대부분이 측정하는 능력은 그가 얼마나 더 많이 암기하고 있는지, 혹은 잘 해석하고 유추하며 분석하는 능력을 갖췄는지를 판단하는 것입니다. 입신과 양명을 위한 도구 수준으로 전락한 시험 대부분은 오로지 머리에 집중합니다. 가슴이나 몸에 중점을 두는 시험이 거의 없습니다. 시험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그 똑똑한 아이들은 결과적으로 느끼는 것, 행동하는 것을 유보하거나 거세 받습니다. ‘여론이 아닌 법리로만 따져달라!’는 어느 검사출신 권력 실세의 요구는 아마도 그런 현상의 절정이 아닐까 싶습니다.

괴물이 된 그 똑똑한 아이들도 한때는 감탄사로 가득했던 존재들이었습니다. 유치원의 아이들을 유심히 보세요. 하루하루 감탄이 넘칩니다. ‘와 나비다!’ ‘벌이다!’ ‘솜사탕 닮은 구름이다!’ ‘별이다!’ ‘밥이다!’ ‘비다!’ ‘눈이다!’ 심지어 ‘와 아빠다! 엄마다!’ 매일 보는 엄마나 아빠의 퇴근에도 감탄하는 존재가 바로 아이들입니다. 친구가 울면 어느 순간 따라서 함께 우는 존재들이 바로 아이들입니다. 그런데 공부를 하면 할수록 우리가 된 그 아이들은 어떻게 되던가요? 곤충은 징그럽거나 무서운 벌레가 되고, 구름과 별과 해와 달이 오가는 하늘은 올려볼 생각도 못하는 그저 허공이 됩니다. 비와 눈은 피해야 할 대상이 되고 밥과 가족은 더 이상 감탄의 대상일 수 없습니다.

느끼지 못하는 사람에게는 감탄할 것이 없습니다. 나아가 느끼지 못하는 인간은 인간의 그 고귀한 실존적 지위를 잃고 점점 괴물이 되어갑니다. 그러니 이제 숲과 자연의 생명들, 그 이름을 기억하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아시겠지요?  

김용규 숲철학자 happyforest@empas.com
 


[1399호 / 2017년 7월 12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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