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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버들가지를 든 관음보살-양류관음

기자명 정진희

나쁜 기운 물리쳐달라는 기도에 적극 응답

▲ 양류관음도, 106.8×58.9㎝, 견본채색, 북송(968년), 미국 스미스소니언 박물관.

흔히들 양류관음이니 수월관음이니 하는 그림의 명칭들은 잘 알고 있으면서 왜 관음보살이라는 이름 앞에 양류, 수월, 백의 등의 수식단어가 붙는지 아는 사람은 드물다. 이글을 쓰고 있는 필자 역시 불교미술이라는 학문을 공부하기 이전에는 독자들과 별반 차이가 없었다. 자비의 화신인 관음보살은 중생의 고통에 따라 33가지의 몸으로 변화하여 구재하는 능력을 가졌기 때문에 응신하신 모습에 따라 다양한 형태로 불교미술에 표현되는데 대부분 모습에서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지물이 버들가지와 정병이다. 버들가지를 가진 관음보살을 우리들은 양류관음이라고 부른다. 간혹 험준한 바위 위에 버들가지를 꽂은 정병이 놓여 있고 그 옆에 관음보살이 지긋한 눈길로 아래를 내려 보고 앉아 계신 모습도 양류관음이라는 표현을 쓰기도 하는데 이 모습은 물 위에 비친 달을 바라본다는 뜻의 수월관음이라는 표현도 함께 사용되고 있다.

질병에 고통받던 바이샬라국
백성들, 관세음보살 이름 부르며
버들가지·청수 바쳐 역병 끝나

인도나 중앙아시아 지역에서 버들가지를 들고 있는 관음보살의 모습은 드물기 때문에 아마도 이런 자세를 취하고 있는 관음은 중국에서 시작되었을 것으로 추측하고 있다. 양류관음의 형상과 같이 불교미술의 여러 모티프 가운데는 신앙이 전래되어 자리를 잡으면서 지역적인 특색을 반영하며 변용되어진 예가 드물지 않다.

미국 스미스소니언 박물관에는 북송(968년) 때 그린 수월관음도가 있다. 화면을 상하로 나누어 위에는 둥글게 표현된 몸에서 뻗어 나온 신광을 배경으로 오른손에 버들가지를 왼손에 정병을 쥐고 연화대좌 위에 앉아 있는 보살의 모습이 있고 그 아래는 공양보살과 공양자들이 그려져 있다. 보살의 우측 방기에 쓰인 그림의 제목은 ‘나무대비구고수월관음보살(南無大悲救苦水月觀音菩薩)’이다. 버들가지와 정병을 쥐고 있는 관음에 수월관음이라는 이름을 붙인 것을 보면 아마도 양류관음의 도상은 수월관음과 관련이 있음이 분명한가 보다.

그렇다면 혹시 물가에 앉아 버들가지가 꽂힌 정병을 곁에 두고 물에 비친 달을 보는 수월관음은 진리를 찾는 구도자의 입장에서 바라보는 관음의 모습이고, 정병에 꽂힌 버들가지를 뽑아 손에 들고 서 있는 관음은 적극적으로 대중의 고통을 구제하기 위해 말보다 행동을 몸소 보이는 형상이기에 고통에서 구제한다는 이름이 덧붙은 것일까?

▲ 양류관음도, 144×62.6㎝, 1300년대 전후, 비단채색, 일본 도쿄 센소지(淺草寺).

양류관음도 가운데 필자가 가장 좋아하는 작품은 물방울과 같은 큰 타원형의 틀 속에 관음보살이 그려진 고려불화 한 점이다. 흐릿한 도판과 함께 말로만 전해지던 이 그림은 일본 학자들도 보기 어려울 만큼 일반인에게 공개가 되지 않았던 작품이었다. 그런데 우리나라 박물관 관계자 분들이 작품의 존재 확인만을 조건으로 겨우겨우 허락을 얻어 일본의 센소지를 방문했을 때 그분들이 관음도를 향해 정성 가득한 삼배를 올리는 모습이 센소지 주지스님의 마음을 움직여 불화를 대여받아서 전시를 할 수 있었다.

이 이야기는 불화를 대할 때 심미적인 감흥도 중요하지만 그 이전에 종교적인 의미를 간과하지 말아야 한다는 교훈을 우리에게 남기고 있다. 감사하게도 그분들 덕에 이 작품은 2010년 국립 중앙박물관의 ‘고려불화대전’ 전시를 통해 일반인들에게 공개되어 필자도 감상할 기회를 가질 수 있었다.

고려시대 혜허 스님이 그리신 이 작품에는 세로로 긴 화면 가득히 떨어지는 물방울 모양의 타원형 광배를 중심에 두고 그 속에 관음보살이 서 있다. 일반적으로 고려 관음보살도라면 보타락가산 물가 바위에 앉아 있는 수월관음보살을 떠올리지만 이 그림에서는 공간적인 배경을 설명할 수 있는 도상의 구성은 과감히 모두 생략하고 그 부분을 크고 기다란 타원으로 메우고 있다. 커다란 물방울 모습과 같은 광배는 관음이 중생을 위해 사용하는 정병 속의 정화수를 나타낸 것 같기도 하고 혹은 손에 들고 있는 버들가지의 잎처럼 보이기도 한다.

간략한 선 하나로만 그려진 하나의 원은 자세한 배경이 친절히 그려진 작품보다 보는 이로 하여금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든다. 그림에서 작가의 탁월한 미의식을 볼 수 있는 부분이 바로 이 부분이다. 크지 않은 화면공간에 주제를 배치하면서 작가는 과감히 광배의 형상으로 화면을 나누고 서로 다른 공간 속에 관음보살과 선재동자를 그려 넣었다. 그 결과 타원형의 원 내부에 관음보살이 서 있는 공간은 불보살이 계시는 불국토가 되고 선재동자가 서 있는 외부의 공간은 인간들이 사는 사바세계로 구분되었다. 선재를 바라보는 관음의 눈빛은 고요하다 못해 성스럽기까지 하여 정적인 분위기가 화면에 감돈다. 하지만 버들가지를 들고 감로수를 뿌리며 서 있는 관음의 모습은 마치 선지식을 찾아 천하를 떠도는 선재의 애절한 기도에 응답하여 나서는 형상처럼 보여 활력과 운동감을 느낄 수 있다.

▲ 버들가지와 정병, 혜허의 양류관음도 세부.

사바세계에서 고통받는 대중들을 구원하기 위해 모습을 나투신 관음보살의 손에는 방편으로 사용하실 무엇인가가 들려 있는데 자세히 보면 오른손은 버들가지요 왼손은 정병이다. ‘청관음보살소복독해다라니주경(請觀世音菩薩消伏毒害陀羅尼呪經)’에 의하면 바이샬라국에 역병이 돌아 백성들이 질병의 고통 속에서 허우적대고 있었을 때 관음보살에게 ‘버들가지와 깨끗한 물(楊枝淨水)’을 바치고 관음보살의 이름을 불러 역병을 물리쳤다고 한다. 이때 의식에 모셔지는 관음은 버들가지와 병을 가진 형상으로 관음이 버들가지를 떨쳐 흔들어 병자에게 병에 든 물을 뿌리면 아픈 이들이 모두 휴식을 얻고 몸이 청량해져 모든 병이 다 낫는다는 의미를 가진다.

버들가지를 들고 있는 관음이 병을 낫게 해주는 의미를 담고 있는 까닭은 아마도 봄을 알리는 정령이면서 물을 좋아하는 버드나무가 가진 습성 때문일지도 모른다. 어둡고 추운 겨울이 지나 따뜻한 봄이 오면 만물이 소생하니 병고에 겨운 육신에 봄의 기운이 가득한 버들가지를 갖다 대면 희망의 기운으로 씻은 듯이 병이 나을 것처럼 느꼈을 것이다. 그리고 맑고 깨끗한 물을 섭취하는 것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장수의 비결이다. 실제 버들나무 잎은 고대로부터 사용되어온 의약제로 염증을 가라앉히는 탁월한 소염제인 아스피린의 주원료이다. 고대 이집트인들은 버드나무를 진통 소염제로 사용하고 있었고 의학의 아버지라 불리는 히포크라테스도 아기를 가진 여인이 통증을 느끼자 버들잎을 씹으라는 처방을 내렸다고 한다.

우리나라에서도 청명 한식에 버드나무를 깎아 불을 피워 관청에 나눠주었는데 이는 재생과 벽사의 기운을 가지고 있는 버드나무로 나쁜 기운을 없애고 새봄을 맞이한다는 뜻이었다.

혜허 스님이 그리신 고려불화에서 정병에 꽂혀 있는 버들가지를 뽑아서 관음보살님이 손에 들고 서 계신 이유는 바로 병을 낫게 해주고 나쁜 기운을 물리쳐 달라는 발원자의 기도에 적극적으로 응답하는 의미를 담아내고 있는 것이다.

정진희 문화재청 감정위원 jini5448@hanmail.net
 


[1399호 / 2017년 7월 12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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