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영역

본문영역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월남 혹은 베트남이 던지는 숙제

기자명 이중남

“이름에 무엇이 들었는가? 장미는 다른 어떤 이름으로 불러도 똑같이 향기롭지 않은가.” 셰익스피어 희곡 ‘로미오와 줄리엣’에 나오는 명대사다. 그렇다. 로미오와 줄리엣은 서로를 어떻게 부르든 죽고 못 사는 연인이라는 점에 차이가 날 리가 없다. 그런데 그런 논리가 동남아에 있는 ‘월남’ 혹은 ‘베트남’이라는 나라에는 잘 적용이 되지 않는다. 월남과 베트남은 같은가, 다른가?

중국 최초의 통일제국 진나라가 멸망한 직후 100여년간 현재의 중국 남부 일대와 베트남 북부에 걸치는 영역을 지배한 왕국이 있었는데, 그 국호는 한자어로 남월(南越), 현지 발음으로 남비엣(=남베트, Nam Viet)이었다. 나중에 베트남에 들어선 독립 왕조들은 남쪽이라는 한정사를 삭제하고 스스로를 그냥 월 혹은 대월(大越)로 칭했다. 월남(越南, Viet Nam)이라는 현재의 국호가 정착된 것은 19세기의 일이다. 이렇듯 월남과 베트남은 표기법만 다를 뿐 동일한 대상을 지칭한다.

베트남사회주의공화국과 대한민국이 수교한 때는 1992년이다. 그 후 양국간 이루어진 물적·인적 교류는 실로 괄목할 만하다. 요즘 해외에서 베트남으로 유입되는 직접투자 규모에서 한국 자본은 늘 1, 2위를 다투고 있고, 한국의 대외 수출 가운데 베트남은 5위 안팎의 비중을 차지한다. 국내에 거주하는 베트남 출신 이주민은 15만명으로 동남아, 중앙아시아, 남아시아 등을 통틀어 최대 규모고, 결혼이주여성은 6만에 이른다(2015년 말 기준).

‘사돈의 나라’라는 각별한 관계에 있는 베트남과 우리의 관계는 그러나 반세기 전에는 사뭇 달랐다. 냉전이 맹위를 떨치던 그 시절 30만이 넘는 우리 군인들이 자유를 지킨다는 명분으로 ‘월남’에 파병되었다. 그리고 지워지지 않을 상처를 입고 또 입혔다. 그러니 악연도 일종의 인연이라고 해야 할까.

월남의 현대사는 30년 전란으로 시작했다. 처음은 식민 지배를 재개하러 온 프랑스를 상대로, 그 다음은 남북 분열과 내전으로, 나중에는 공산화 도미노를 막으러 온 미국을 상대로 연달아 전화(戰禍)를 겪었다. “총소리를 누르기 위해서는 더 큰 노래를 불러야한다”는 속담이 있다니, 그들이 치렀던 희생이 어떠했을지 짐작이 간다.

월남은 종전 후 10년이 지나면서 ‘도이머이’ 정책을 도입해 개혁·개방에 나섰고, 과거의 전쟁 상대국들과도 적극적으로 교류하며 오늘에 이르고 있다. 과거를 가지고 현재와 미래를 어그러뜨릴 필요가 없다는 실용주의적 고려도 있지만, 지나간 원한을 되갚으려 하지 않는 관대한 문화적 특성도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우리는 언제부턴가 ‘월남’을 ‘베트남’으로 부르는 데 훨씬 익숙해져 있다.

그런데 지난 현충일 추념사에서 대통령이 “베트남 참전용사의 헌신과 희생을 바탕으로 조국 경제가 살아났다”고 한 것에 대해서 베트남 각 부문에서 전례 없이 격렬한 비판들이 쏟아져 나왔다. 한국군의 월남전 파병 이유가 돈 때문이었음을 인정하느냐, 그렇다면 그 참전은 결국 ‘청부 살인’ 아니냐는 통렬한 지적도 있었다. 이를 무마하느라 “과거를 덮고 미래를 지향하자”는 식으로 대응하는 우리 외교부를 보자니, 어쩐지 미래지향적 관계를 위해 이쯤에서 위안부 문제를 덮자는 일본이 겹쳐졌다. 인지부조화다.

월남전은 현재까지도 생존해 있는 수많은 참전 당사자들과 피해자들의 이익과 입장이 크게 갈리는 금기의 사건임을 물론 인정한다. 흔히 하는 말로 그 평가는 역사에 맡길 수밖에 없다. 그렇지만 지난 20년 동안 월남전 당시 한국군이 자행했던 반인륜적 범죄, 즉 민간인 학살에 관한 보고서와 조사·연구는 상당한 정도로 진척되어 왔다. 우리 정부는 한사코 외면하지만, 이처럼 각별한 관계에 있는 양국의 ‘더욱’ 미래지향적 관계를 위해서, 아니면 최소한 학살 피해자들의 해원(解寃)을 위해서 만이라도 이제 그것에 대한 정부 차원의 진상조사를 논의할 때가 되지 않았나.

이중남 마하이주민지원단체협의회 운영위원 dogak@daum.net

 

[1400호 / 2017년 7월 19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 이 기사를 응원해주세요 : 후원 ARS 060-707-1080, 한 통에 5000원

저작권자 © 불교언론 법보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광고문의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

하단영역

매체정보

  • 서울특별시 종로구 종로 19 르메이에르 종로타운 A동 1501호
  • 대표전화 : 02-725-7010
  • 팩스 : 02-725-7017
  • 법인명 : ㈜법보신문사
  • 제호 : 불교언론 법보신문
  • 등록번호 : 서울 다 07229
  • 등록일 : 2005-11-29
  • 발행일 : 2005-11-29
  • 발행인 : 이재형
  • 편집인 : 남수연
  • 청소년보호책임자 : 이재형
불교언론 법보신문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는 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