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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자장율사가 빚어낸 진주, 진신사리

기자명 주수완

문수보살 향한 애틋한 마음, 신라 땅 알알이 사리로 맺히다

▲ 우리나라 5대 적멸보궁 중 첫 번째이자 불보사찰인 통도사의 금강계단. 자장율사가 중국 오대산에서 문수보살로부터 받아온 석가모니의 진신사리를 봉안한 곳으로서 절대적 귄위를 자랑하는 성소이다.

우리나라에서 삼보, 즉 불·법·승을 대표하는 사찰이라고 하면 불보사찰 통도사, 법보사찰 해인사, 승보사찰 송광사를 말한다. 그중에서 불보사찰, 즉, 부처님을 상징하는 사찰이 통도사인 이유는 석가모니의 진신사리를 모신 금강계단이 있기 때문이다. 유독 이곳의 사리가 진정한 석가모니의 사리로 인정받고 있는 이유는 삼국시대가 끝나갈 무렵 자장율사께서 중국 당나라에 유학 가셨다가 문수보살로부터 직접 이 사리를 받아오셨기 때문이다. 문수보살께서 직접 전해주신 사리이니 틀림없이 석가모니의 사리가 아니겠는가?

삼보사찰 중 불보인 통도사
석가모니 진신사리 봉안돼

당나라 유학 갔던 자장율사
문수보살로부터 전해 받아

부처님 가사와 사리도 받아
진정한 법맥의 전수자 의미

꿈에서 문수보살 친견했으나
제대로 된 만남 끝내 못 이뤄

신라 땅 곳곳 적멸보궁마다
자장율사의 숨결들이 가득 

그러나 자장율사께서 정말로 문수보살을 만나셨다고 하기에는 다소 애매한 부분이 있다. 자장께서 문수보살을 친견했다는 ‘삼국유사’의 기록을 면밀히 살펴보면 문수보살은 직접 문수보살의 모습으로 자장 앞에 나타나셨던 것은 아니다. ‘자장정율’조에 의하면 문수보살과의 첫 만남은 꿈속에서 이루어졌다. 자장율사는 문수보살을 뵙기 위해 문수보살이 머무신다는 중국 산서성 오대산으로 갔는데 그곳에는 제석천이 만들었다고 하는 흙으로 만든 문수보살상이 있었다. 자장율사는 이 상 앞에서 명상에 들었다가 문수보살이 자신에게 인도말로 되어 있는 게를 내리는 꿈을 꾸었다고 한다.

▲ 중국 오대산 수상사의 사자를 탄 문수보살상. 자장율사가 찾아가 꿈속에 게송을 받았다는 오대산 문수보살상도 이러한 모습이었을 것이다.

비록 문수보살을 뵙긴 했지만 이렇게 꿈속에 뵌 것이었다. 한편 같은 ‘삼국유사’의 ‘대산오만진신’조에는 오대산 북대 태화지 인근의 문수보살 석상 앞에서 이 꿈을 꾸었다고 하여 장소가 더욱 구체적인 반면 불상의 재료는 돌과 흙으로 차이가 있다. 여하간 인도말로 되어있는 이 게를 자장율사는 이해할 수 없었는데, 마침 신비로운 승려가 지나다 자장율사에게 이 게송의 뜻을 풀어주고 가사와 함께 바로 그 진신사리를 전해주고 사라졌다. 그런데 이 신비로운 승려가 사실은 문수보살의 변신이었던 것이다.

이 게는 원래 ‘80권본 화엄경’에 나오는 ‘수미정상게찬품’인데 이 내용을 자장율사가 못 알아들었던 이유는 당시까지는 아직 ‘80권본 화엄경’이 번역되지 않았기 때문이기도 하고, 또한 인도말로 받은 게송이었기 때문에 몰랐을 수도 있다. 여하간 이때 나타난 문수보살은 꿈이 아닌 실제이긴 했지만 승려의 모습으로 나타난 것이었다. 그렇게 치면 원효대사도 낙산사의 관음보살은 만나지 못했지만 시험하기 위해 변신한 관음보살은 만난 셈이므로, 마찬가지로 자장율사 역시 문수보살을 친견했다고는 말할 수 없다. 물론 차이는 있다. 원효대사는 불합격 판정을 받은데 반해, 자장율사는 문수보살 친견의 허락이 보류된 상태였던 것이다. 그리고 가사와 사리까지 받아왔으니 완전한 실패는 아닌 셈이다. 또한 꿈에서이긴 했지만 문수보살로부터 게를 받았으니 의미 있는 오대산행이었다고 하겠다.

“대산오만진신”조에는 이때 받은 유품에 대해 조금 더 구체적인 이야기가 전한다. 붉은 비단에 금점이 찍힌 가사 한벌, 석가모니의 발우, 그리고 석가모니의 두골, 즉 머리뼈 한 점이었다고 기록하고 있다. 이들 유품들 중의 가사와 발우는 석가모니께서 마하가섭에게 다음에 올 미륵불에게 전해주길 부탁하신 것과 같고, 선종의 5조 홍인이 6조 혜능에게 부촉하는 과정에서 가사와 발우를 전수한 것과도 흡사하다. 아마도 “대산오만진신”의 구체적인 품목들은 자장율사를 석가모니로부터 시작하여 가섭, 용수, 무착, 세친 등으로 이어지는 법맥의 진정한 계승자로서 부각시키려는 의도가 다분하다. 그러나 이런 신성한 부촉의식임에도 불구하고 끝내 문수보살이 실제 보살의 모습으로 현현하지 않고 신분을 숨긴 채 부촉한 사실은 다소 의외일 수 밖에 없다. 혹 문수보살께서는 마치 홍인이 혜능에게 부촉하면서 신수의 눈치를 보아야 했던 것처럼 당나라 사람들의 눈치를 보면서 신분을 숨긴 채 굳이 몰래 신라인 자장율사에게 부촉하고 싶으셨던 것일까? 그도 그럴 것이 자장율사는 이 사실을 당나라 사람들에게는 숨겼기 때문에 당나라의 ‘승전(즉 속고승전)’에는 기록되지 않았다는 일연스님의 주석이 예사롭지 않게 들린다.

▲ 중국 오대산 북대의 태화지. 자장율사가 꿈속에 문수보살을 친견하고, 승려로 변신한 문수보살을 만나고, 용을 만나 황룡사탑을 세우라는 조언을 들은 곳으로 전해지는 곳이다.

또 하나 주목되는 것은 이때 받은 사리가 부처님 ‘두골 한 점’이라는 것이다. 자장율사는 신라로 돌아와 오대산에서 얻은 사리를 세 곳에 봉안했는데, 황룡사, 통도사, 그리고 태화사이다.

만약 사리가 한 점이라면 이렇게 세 곳에 나눠 봉안하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한 점의 두골을 세 쪽으로 쪼개어 봉안했을리는 만무하다. 혹 두골사리가 분신하여 세 점으로 나누어졌다면 가능했겠지만 그러한 이야기는 없으니 아마 이때 얻은 사리가 두골 사리 한 점에 그치지는 않았을 것이다. 흥미롭게도 자장율사가 모셔온 것이라고 하는 오대산 중대 적멸보궁에 봉안된 또 다른 사리가 “불뇌사리”라고 전해지는데, 아마도 이 ‘불두골사리’가 와전된 것으로 보인다. 아마도 자장율사의 진신사리 설화계보는 통도사 계열 외에 이렇게 오대산 계열도 있었으며, 일연스님의 기록은 이에 대한 흔적일 것으로 추측해볼 수 있다.

한편 게송을 해석해준 승려는 자장율사에게 신라에 돌아가면 명주 지역에도 오대산이 있고 그곳에도 문수보살이 머물고 계시니 가서 찾아뵈라는 조언도 곁들였다. 자신이 문수보살이니 결국은 다음 만날 장소를 알려주신 셈이다. 이 이야기만 들으면 문수보살은 이제 온라인 채팅을 끝내고 오프라인에서 만나주시겠다고 암시를 주신 것처럼 들린다.

▲ 5대 적멸보궁 중 하나인 정암사의 수마노탑. 자장율사가 문수보살을 기다린 마지막 장소이자 입적한 곳이다.

희망에 차서 오대산 순례를 마친 자장율사는 다시금 태화지에서 용을 만났다. 이 설화는 “대산오만진신”에도 언급되어 있으나 ‘탑상’편의 “황룡사구층탑” 기사에 보다 자세히 전한다. 이에 의하면 용은 자장율사에게 황룡사에 구층탑을 세울 것을 조언했다. 황룡사의 호법룡이 자신의 맏아들이니 구층탑을 세워주면 신라가 더욱 강성해질 것이며, 더불어 경주 남쪽에는 자신을 위해 절을 지어주면 자신도 신라를 힘껏 돕겠다는 것이었다. 이렇게 세워진 것이 황룡사 구층목탑과 울산 태화사였다. 이렇듯 자장이 진신사리를 봉안한 세 곳 중의 두 곳은 태화지 용의 조언에 의한 것이었다.

이렇게 용과의 약속을 지킨 자장은 자신의 원래 숙원이던 문수보살 친견을 위해 강원도 평창 오대산으로 향했다. 그리고 수다사라는 절을 세워 머물렀는데, 그때 다시금 중국 오대산 북대 태화지에서 만난 신비한 승려가 꿈에 나타나 “대송정에서 그대를 만나고자한다”는 말을 남겼다. 자장은 드디어 문수보살을 만난다는 기대에 부풀어 아침 일찍 대송정으로 갔는데, 과연 문수보살이 그곳에 오긴 오셨다. 이전에 비하면 두 분의 관계는 분명 장족의 발전을 이뤘다. 그러나 문수보살은 어렵게 모습을 보여주셨음에도 불구하고 뭔가 설법을 기대한 자장에게 다시금 “태백산 갈반지에서 기다리라”는 메시지만 남기고 자리를 떴다. 자장율사는 아쉬웠지만 다시금 희망을 가지고 태백산 갈반지를 찾아 석남원이란 암자를 짓고 문수보살을 기다렸으니, 이곳이 우리나라에서 진신사리를 봉안한 대표적인 다섯 사찰, 즉 5대적멸보궁의 하나인 정암사의 전신이다.

그러나 기다리던 문수보살은 오지 않고 죽은 강아지를 삼태기에 담은 걸인이 나타나 문간에서 “자장 좀 보자”며 고함치고 행패를 부리는 것이었다. 제자가 나가 “감히 스승의 이름을 함부로 부르느냐”고 언성을 높였으나 말을 듣지 않자 자장은 그저 “정신이 나간 사람인가 보다”고만 생각했다. 그러나 알고 보니 이 걸인이야말로 문수보살이었고 죽은 개는 문수보살이 타고다니는 사자였던 것이다. 문수의 모습으로 돌아온 보살은 “상(相)에 집착하는 자가 어찌 나를 만나겠는가” 하고는 사자를 타고 하늘로 날아가 버렸다. 자장율사는 아차 하며 뒤쫓았지만 결국 놓치고 절벽에 몸을 던져 생을 마쳤다는 것이 ‘삼국유사’가 전하는 자장율사의 최후이다. 자장율사는 비록 잠깐잠깐 문수보살을 친견했다고는 하나 결코 제대로 된 만남은 아니었다. 관음보살이 원효스님께 했던 생리대 세탁물 마시기 테스트도 공정하지 못했지만, 고함치는 노숙자 참아주기 테스트도 좀 심하다. 그런데도 자장율사를 실패자로 보아야할 것인가?

▲ 5대 적멸보궁 중 한 곳인 오대산 중대의 적멸보궁. 이곳을 중국의 오대산에 버금가는 불국토로 만든 것은 자장율사였다.

우선 일차적인 책임은 문수보살에게 있다. 문수보살이 이렇게 사람을 시험하면서 만나주지 않는 성격은 중국에서는 유명했던 것 같다. 무착 문희선사도 훗날 자장율사처럼 오대산에 문수보살을 뵈러 갔으나 노승으로 변한 문수로부터 그 유명한 “성 안내는 얼굴이 참다운 공양구요, 부드러운 말 한마디 미묘한 향이로다”로 시작하는 시만 듣고 내려와야 했다. 그렇다. 문수보살은 어머니의 자비로움을 지닌 관음보살처럼 친절하지 않았다. 자신에게 집착하면 집착할수록 그런 집착이 무의미한 것임을 강하게 알려주고 싶으셨나보다. 그리고 그렇게 문수라는 상과 이름을 버리는 과정을 통해 스스로 깨달음에 이르게 하려고 했던 것이 아닐까?

실제 무착선사는 나중에 깨달음을 얻고 나서 팥죽을 쑤는데 솥에서 문수보살이 나타나자 주걱으로 뺨을 때렸다고 한다. 기껏 진신을 보여주었는데 따귀를 때린 무착의 행동에 문수보살이 어이없어 하자, 무착은 “문수는 문수고, 무착은 무착이요”라며 태연했다고 한다. 아마 실은 문수보살은 어이없어 한 것이 아니라, 그것이 진정 바라셨던 바이리라. 어쩌면 큰 애정을 가지고 자장율사께서 자신의 뺨을 때려줄 날을 기다리셨던 것은 아니었을까. 찬하여 말한다.

문수를 향한 마음 열매는 맺지 못했으나/ 애틋함은 진주처럼 알알이 사리로 맺혔네.
보살님 부디 우리 율사 너무 힘들게 마시라/ 그러다 무착에게 주걱으로 맞으신게 아니오.

주수완 문화재전문위원 indijoo@hanmail.net
 

[1400호 / 2017년 7월 19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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