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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 윤정원

기자명 임연숙

삶과 죽음 품은 희망의 푸른 국화

▲ ‘잃어버린 하늘’, 50×95 cm, 비단위에 채색, 2015년.

푸른색의 국화 꽃잎은 여느 꽃과는 달랐다. 그냥 꽃을 그린 것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좀 더 들여다보았다. 작가는 무엇을 표현하려고 한 것일까. 정물화에서의 흰 백자에 담긴 노란 소국이나, 문인화에서의 사군자 중 하나로 그려진 것이 아니고서는 여류화가들의 작품에선 별로 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80년대 학번, 혹은 90년대 초까지 동양화과 대학입시에 국화가 자주 등장했기에 작품의 소재로 크게 염두에 두지 않았던 기억이 있다.

하늘로 날아가 버릴 듯한 형상
불에 태워 사라짐 아쉬움 표현

문인화의 한 소재로 소박한 모습과 달리 찬 서리에 끝까지 남아서 피어나는 곧은 절개를 상징하는 국화는 언젠가부터 장례식장에 가면 헌화하는 꽃이 되었다. 이 역시 흰 국화가 상징하는 고결함의 느낌으로 망자에게 좋은 곳으로 가시라는 기원의 의미일 것이다. 장례식장에서 헌화의 꽃으로 사용한 것은 개화기 때부터라고 한다. 개화기 이후 장례를 간소화하는 의미의 하나로 국화꽃을 헌화하는 전통이 생겼다고는 하나, 어딘가 자료를 보니 청원군 두루봉 동굴에서 발견된 구석기시대 어린아이의 유골에서도 흙과 함께 국화꽃가루가 발견되었다고 하는 걸 보면 동서양을 막론하고 흰 국화꽃의 상징은 고결과 엄숙함에 있는 모양이다. 

그림 속 푸른 국화는 마치 불에 그을린 듯 하늘로 날아가 버릴 듯한 형상을 하고 있다. 작가의 예전 다른 작품들을 봤다. 작가가 처음 관심을 가졌던 것은 하늘이다. 제천의식과 제의에 대해 관심을 가졌고, 전통회화를 전공한 작가답게 오랜 전부터 우리의 관습에 남아있는 미의식에 대한 탐구를 거듭해왔다. 하늘, 새, 꽃의 모티브는 그 내용의 상징성을 듣지 않아도 대략 작가의 관심 분야를 알 듯하다. 땅에 뿌리를 내리고 하늘만 바라보는 식물에, 하늘에 제사 지내는 인간의 마음을 비쳐 감정이입을 하고 새라는 매개체가 그사이를 아름답게 연결 짓는다는 대략 이런 스토리일 것이다.

많은 작가가 다루고 있는 이러한 소재를 윤정원 작가는 비단에 전통채색화라는 완벽한 표현기법과 테크닉으로 눈길을 잡는다. 거기에 인두를 이용하여 태운 흔적은 ‘불’이라는 상징성 이전에 사람의 마음을 감각적으로 자극한다. 꽃잎이 불에 태워지는 형상은 아픔을 저절로 공감하게 함과 동시에 불로 태워 사라진 것들에 대한 아쉬움과 그 아쉬움에도 불구하고 사라져 버리는 모든 것들을 생각하게 한다. 아직 젊은 작가가 생각하는 삶에 대한 깊은 성찰에서 ‘작품은 반드시 나이와 비례하는 어떤 경험에서 나오는 것이 아닌 감각과 직관의 산물인가?’라는 생각도 해 본다.

불의 형상을 그린 것이 아닌 직접 태워 즉각적인 효과를 준 것은 생명체를 표현한 그림이지만 소멸을 떠올리게 하고, 그로 인해 새롭게 만들어지는 조형적 공간과 빛에 의해 생겨나는 그림자, 그래서 생각지 못한 새로운 효과와 전혀 다른 조형을 탄생시킨다. 꽃잎 아래로 표현된 날개는 굳이 말로 표현하자면 소지 분향할 때 하늘로 향하는 재를 연상하게 한다. 작게 인두로 지져낸 공간은 마치 작품 전체를 집어삼킬 듯한 불꽃을 상상하게 하고 태양이 질 때 장렬한 빛을 뿜어내는 감동을 주듯이 소멸 직전의 생명체가 주는 강렬한 느낌을 준다.

“나는 90즈음의 친할머니가 꽃을 들고 있는 모습을 본 적이 있다. 눈과 귀가 어두운 그녀는 굴곡 많은 삶을 살았다. 그녀는 구부정한 허리를 하고 활짝 핀 꽃다발을 들고 서 있었는데 그 모습은 왠지 낯설었다. 그날 이후 나는 할머니의 꽃들을 화병에 꽂아 그리게 되었다.”

윤정원의 작가노트를 찾아보고 역시 삶과 죽음, 생성과 소멸에 대한 이야기였음을 확인하였다. 그것은 블루였고, 그래서 희망이라고 역시 확신한다.

임연숙 세종문화회관 전시팀장 curator@sejongpac.or.kr
 

[1400호 / 2017년 7월 19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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