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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9. ‘그대들 덕분입니다’

기자명 최원형

밥짓는 일은 얼마나 많은 조력으로 가능한가?

한참을 가물다가 결국 기다리던 비님이 내리기 시작했다. 기다리던 시간의 길이만큼이나 반가웠다. 밤이면 우렁차게 울어대는 개구리 소릴 들으며 녀석들도 비를 몹시 기다렸겠구나 싶었다. 흩뿌리던 비는 빗방울을 키우더니 자연의 위력을 뽐내기라도 하듯 퍼부어댔다. 며칠 동안 쉼 없이 내린 비로 온통 눅눅해진 공기는 둔탁하고 무겁게 느껴졌다. 며칠 만에 비가 멈추고 구름 사이로 언뜻 해가 비치던 날 낮은 담장에서 능소화를 만났다. 어느새 능소화가 한창인 한여름이다. 주홍 꽃과 초록 잎이 어우러지니 참 아름답다. 요 며칠 쏟아진 비로 나무들은 짙푸른 청록을 한껏 드리운다. 숲은 더욱 우거질 것이다. 이렇듯 화려한 색깔, 압도적인 크기에 밀려 그다지 우리들 눈에 띄지 않는 잔잔한 생명들도 있다. 그 가운데 하나가 ‘이끼’다.

작지만 부드럽고 적극적인 이끼 삶
강한 생명력, 환경오염의 바로미터
밥하는 귀함  하찮게 여긴 발언 잘못
무수한 인연 덕분임을 잊지 말아야

어디에선가 이끼를 ‘작고 부드러운 식물’이라 표현한 글을 읽은 적이 있다. 모자라지도 넘치지도 않게 이끼를 잘 표현한 말 같다. 숲 우거진 산사의 낮은 돌담에서, 돌담 위에 올라와 앉은 기와에서, 느티나무 허리춤에서, 무슨 연유에선지 더 이상 자라지 못하고 꺾여버린 나뭇가지 둘레에서 이끼를 발견한다. 볕이 좀 덜 들고, 습한 기운이 있다면 십중팔구 이끼를 만날 수 있다. 여린 봄꽃에서 겨울 눈꽃에 이르기까지 계절 따라 변화무쌍한 풍경 속에서 이끼는 마치 배경처럼 느껴진다. 지구 위에 생명체가 하나씩 등장하던 흐름 가운데 식물이 등장한다. 당시 식물은 물속에서 살았다. 그러다 땅 위로 올라오게 되는데 가장 먼저 땅 위로 올라온 식물이 바로 ‘이끼’라고 한다. 물속에 살던 녹색말이 진화하여 땅 위에 사는 식물로 바뀐 것이다. 그렇지만 땅 위 식물로 온전히 진화하지는 못해 실제 생김새나 사는 방법이 여타 식물들과 많이 다르다. 이끼는 그 생김새가 작고 눈에 잘 띄지 않아 그냥 지나치듯 보면 다 비슷비슷해 보이지만, 좀 더 애정을 갖고 들여다보면 이끼마다 생김새가 모두 다르다는 걸 알 수 있다. 돌담을 살펴보면 돌과 돌 사이 이음새에서도 이끼가 자란다. 초록빛깔의 폭신한 융단 같다. 한참 가물 동안에는 누렇게 바싹 말라버려 살아있을까 싶던 이끼들이 며칠 비에 파릇파릇 생기가 돈다. 이끼를 정면으로 내려다보지 말고 곁에 눕듯이 비껴서 본다면 이끼의 홀씨가 담긴 삭의 모습을 볼 수 있다. 삭이란 홀씨를 담고 있는 주머니(capsule)란 뜻이다. 고깔을 쓰고 있는 듯 보이는 무수한 삭들이 솟아오른 그 모습은 경이롭다. 마치 숲 속에 난쟁이들이 나와 행진을 하는 모습이 연상되기도 한다. 그 삭이 익어 홀씨가 다 만들어지면 고깔을 벗어버린다. 바람이 불거나 누군가가 건드려 삭이 흔들릴 때 말이다. 이끼는 홀씨로 종족을 퍼뜨린다. 육안으로는 관찰하기 힘들지만 삭의 고깔이 떨어지면서 홀씨가 사방으로 퍼져나간다. 그 힘으로 이끼는 제 영역을 유지하고 조금씩 넓혀가는 것 같다. 나무아래 축축한 곳에서 이끼의 앙증맞은 모습에 마음을 빼앗기다보면 이끼 위로 산책 나온 개미나 쥐며느리, 공벌레 등 작은 생물들을 덤으로 만나기도 한다. 운 좋으면 멋진 거미줄을 발견하는 보너스도 얻을 수도 있다. 눈에 잘 띄지 않지만 많은 생명들이 작고 오밀조밀한 공간 속에서도 서로가 경쟁하지 않고 평화를 이루며 살고 있구나 하는 걸 느끼는, 그런 시간을 경험할 수 있다.

많은 식물들은 계절마다 잎이 나고 꽃이 피고 지고 열매를 맺는 역동적인 모습을 보여준다. 그러나 이끼는 이렇다 할 꽃도 피우지 못하고 열매는 더욱이나 꿈도 꿀 수 없는 처지이지만 언제나 한결같은 모습으로 자리를 지키고 있다. 이끼의 삶이 그렇다고 마냥 소극적인 것은 아니다. 자기 몸의 몇 십 배나 되는 수분을 저장할 수 있고, 추운 극지방에서부터 우주 공간까지 살지 못하는 곳이 없을 만큼 강인한 생명력을 가지고 있다. 최근에는 환경오염의 바로미터 역할도 한다. 수분이나 오염 정도를 이끼의 생태로 알 수 있다. 이끼 덕에 흙을 붙잡아둘 수 있으니 씨앗들이 숲을 이루는 대 장정이 가능하기도 하다. 최근 밥하는 노동자들을 아주 하찮게 여기는 말이 세상을 분노케 했다. 밥을 먹지 않고 살 수 있는 사람은 단 한 명도 없는데도 어쩌다 밥하는 일이 이리 바닥에 동댕이쳐졌을까? 너무 당연한 일이어서 그 귀함을 잊고 산 때문은 아닐까? 밥을 짓는 쌀은 또 얼마나 많은 생명들의 조력으로 가능한가? 저 하늘의 뜨거운 태양부터 물속생물까지, 물 아래 흙까지, 그리고 부지런한 농부의 발걸음까지, 손길까지. 눈에 띄지 않아 미처 그 존재를 인식하지 못하고 지나친 무수한 인연들, 그들의 ‘덕분’을 새삼 떠올려본다.

최원형 불교생태콘텐츠연구소장 eaglet777@naver.com

[1400호 / 2017년 7월 19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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