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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 한국불교의 역사적 성격론 ④

한국불교연구, 기층민중 신행 모습에 주목해야 실체파악 가능

▲ 한국불교의 기복적 특성이 잘 드러나는 사찰기와불사. 무속과 불교가 습합된 이런 특수한 신행을 터부시하지 않고 객관적인 시각으로 파악해야 한국불교의 특성을 정확히 알 수 있다.

한국의 역사는 오랫동안 중앙집권적인 왕조체제를 경험해 왔기 때문에 불교의 수용과 발전과정에서 국가권력, 특히 국왕의 역할은 상대적으로 크지 않을 수 없었다. 또한 불교입장에서도 때로는 왕조의 정통성을 확립하고 국왕의 권력을 강화하는데 적극적으로 기여한 적이 없지 않았다. 그렇기 때문에 한국불교사의 이해에 국왕과 불교의 관계는 대단히 중요한 의미를 가지며, 국왕과 불교 양측면의 관점에서의 검토가 요구된다. 그러나 불교의 사회적인 역할은 왕권의 강화와 국가의 발전이라는 측면에서만 의미가 있는 것이 아니다. 지배체제의 운영과 불교교단의 관계, 지역과 계층 사이의 간격을 좁히는 통합이념으로서의 역할 등도 주목할 필요가 있으며, 특히 불교의 사회적 역할은 통합이념이라는 관점으로 이해를 확대할 필요가 있다.

한국불교에 대한 담론이
우수성 주장 위한 논거나
특정개념 몰아가선 안 돼

회통과 호국은 상층 불교
무불 습합된 기복 형태의
서민불교에도 주목해야

다양한 측면 함께 연구하고
다른 지역 불교와 비교해야
한국불교 특성 확인 가능

이제 종래의 ‘호국’이라는 개념의 좁은 울타리를 벗어나서 한국불교사에서의 국가와 불교의 관계, 그리고 불교의 사회적 역할을 좀 더 폭넓은 시각으로 접근하는 방법을 모색해야 한다. 특히 한국불교사에서 호국의 사례들만을 일방적으로 모아 한국불교의 특성으로 일반화시키려는 기왕의 이해방법은 재고되어야 한다. 시대와 주제별로 불교의 국왕관과 국가관, 국가발전과 사회통합에서의 불교의 역할, 지배체제와 불교교단체제의 관계, 지배세력의 교체에 따른 불교주류의 변화, 외적의 침입과 승려의 군사적 활동 등의 구체적인 사실들을 구조적으로 분석하는 작업이 추구되어야 할 것이다. 그리하여 한국 역사의 전개과정에서 불교가 담당하였던 사회적 역할과 호국불교의 실상에 좀 더 가까이 접근할 수 있는 방법을 계발해야 할 것이다.

또한 불교가 불살생·비폭력을 주지로 하는 종교라는 관점에서 불교인의 전쟁 참여와 같은 불교의 현실 참여 방법에 대한 원론적인 물음에 좀 더 깊이 고민할 필요가 있다. 그리고 다른 한편으로 중국과 일본, 나아가 동남아시아 등 다른 지역의 불교사와 비교하는 방법을 통하여 한국불교사에서 국왕과 불교의 관계, 국가와 불교의 관계, 그리고 불교의 사회적 역할을 좀 더 폭넓게 객관적으로 이해하려는 노력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

다른 한편 한국불교의 역사적 성격에 관한 논의 가운데 회통불교론과 호국불교론에 비해 기복적 불교론은 별로 주목을 받지 못하였다. 기복적이라는 용어 자체가 원래 미신적이라는 부정적 이미지를 가진 것이고, 또한 역사적으로 기복적 신앙의 주체인 일반 서민들이 역사의 전면에 머리를 내밀 수 없었고, 더욱이 자기 기록을 남겨줄 수도 없었기 때문에 학문적인 연구의 대상이 되기 어려운 주제가 될 수밖에 없었다.

반면 불교사상의 영역인 회통불교와 국가와의 관계를 설명하는 호국불교는 모두 상층의 엘리트불교로서의 성격을 가진 것이기 때문에 역사적으로 각 시대의 사회와 문화의 지배적인 이념으로서 주목받을 수 있었다. 또한 엘리트불교는 자신들의 저술이나 국가의 역사기록을 통해 문헌자료를 비교적 많이 남겨주어 연구대상이 되기가 비교적 용이하였다. 그 결과 회통불교론이나 호국불교론에 견주어 기복적 불교론은 학술적 개념으로서 자리를 잡지 못하였으며, 그에 대한 논의도 별로 이루어지지 못하였다. 그 결과 오늘날 한국불교사의 서술에서 기복적 불교신앙의 내용은 거의 다루어지지 못하는 실정이 되었다.

그러나 재앙을 물리치고 복 받기를 기원하는 기복적 신앙은 사회기층 일반 서민들의 종교적 심성이 그대로 생생하게 표출되는 것이기 때문에 실제 사회적 의미는 엘리트불교인 회통불교나 지배층 위주의 호국불교와는 다른 차원에서 중요시되지 않을 수 없는 문제이다. 한국의 불교사에서 기복적 신앙은 불교의 토착화 과정에서 무속종교와 습합한 결과의 산물이고, 특히 지배세력인 양반 유생들로부터 억압을 받았던 조선왕조 500여년간 불교의 명맥을 유지시켜준 것이 일반 서민들, 특히 성차별의 대상이었던 여성들의 기복적 신앙이었다는 사실을 주목하지 않을 수 없다. 또한 오늘날 불교교단의 유지와 운영에서도 기복적 신앙이 여전히 무시할 수 없을 정도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는 사실을 고려할 때 기복적 불교론은 중요시되지 않을 수 없다.

오늘날 학계에서 무불습합(巫佛褶合)의 관점에서 기복적인 불교에 접근한 연구성과로서 들 수 있는 것은 김택규의 ‘신라 및 일본의 신불습합(神佛褶合)에 대하여’(‘한일고대문화교섭사연구’, 1974)와 ‘신라상대의 토착신앙과 종교습합’(‘신라종교의 신연구(新硏究)’, 1991)이 유일한 것 같다. 그밖에 이희수의 ‘토착화과정에서 본 한국불교’(1971)가 주목되는 연구이다. 이희수는 역사학자로서 “출세간적인 성향과 심오한 사상을 지닌 불교가 한국의 토착적 문화풍토와 만나서 어떻게 뿌리를 내리게 되었는가?”라는 관점에서 한국불교사를 개관하였는데, 특히 한국불교의 현세구복성, 호국신앙적 성격, 토착신앙과의 습합 등의 문제를 주목하였다. 서민적인 기복신앙으로서 한국불교의 구체적인 모습을 다양한 사료를 동원하여 밝히려는 문제의식은 돋보이지만, 전반적인 불교사의 이해부족으로 만족할 만한 성과를 거두지를 못한 점이 아쉽다.

온전한 불교사의 서술을 위해서는 사회구성원의 대다수를 차지하고 있던 하층 서민들의 신앙형태이자 현실적 삶의 문제에 대한 구체적인 대응으로서의 의미를 갖는 기복적인 측면을 결코 무시할 수 없다. 이제 한국불교사는 전통적인 종파와 사상의 역사에 치중하는 연구자세를 벗어나 생활 속의 다면적이고 생명력이 넘치는 신앙생활의 모습을 그려내는 이해방법을 계발해야 한다. 한국불교사의 내용을 좀 더 풍부하게 하고, 한국역사에서 불교의 역할을 정확히 이해하고, 나아가 한국불교의 특성을 제대로 설명하기 위해서는 기복적 불교에 대한 연구도 좀 더 활성화될 것을 기대한다.

기복적 불교의 문제는 두 가지 측면에서의 접근이 요구된다. 첫째는 불교신앙의 구조적인 측면에서의 이해이다. 일반 서민의 차원에서는 원래 주술적 종교나 현세이익적 종교가 아니면 침투하기 어려운 것이다. 일반 서민들에게는 고도의 형이상학적 사유체계인 불교교학은 이해되기 어려운 것이고, 구도(求道)를 위한 치열한 수행의 현장에도 접근이 쉽게 허용되지 않았다. 또한 전근대 사회에서 일반 서민들은 왕궁이나 대사찰 중심의 불교행사에 적극적인 참여와 주체적인 역할이 주어질 리 없었다. 일반서민들의 신앙은 현장의 일상생활 속에서 구체적으로 질병을 치료하고, 자녀를 출생하며, 비를 오게 하고, 재해를 제거하여 주는 등 실제적인 삶에 구체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 종교를 요구하는 것이었다. 이러한 서민들의 요구에 응답할 수 있는 것은 수준 높은 철학적인 불교가 아니라 무속신앙과 결합하여 주술적 기능을 발휘하는 기복적 불교였다.

둘째는 불교신앙의 토착화과정의 문제로서 상층의 엘리트계층에서 이해된 고도로 추상화된 관념체계로서의 교리나 학설과는 달리 하층의 일반 서민들의 불교신앙은 전래 초기부터 무속신앙과 습합되어 현세이익적인 기복적 불교로서의 성격을 지니게 되었다. 이것은 불교가 이성적이며 합리적인 성격이 두드러진 종교이면서도 다른 한편으로 포용적인 성격으로 인해 이질적인 재래의 무속신앙을 배척하지 않고 그대로 인정하면서 불교 안으로 포섭하여 재정리한 것에 말미암은 것이다. 고대불교의 이러한 기복적인 성격은 고려시대에도 그대로 계승되었으며, 그 위에 도교신앙이나 풍수도참설과도 결부되어 이원적 구조의 교단체제의 하부구조를 이루면서 한국문화의 기층체질을 형성하였다. 조선시대에 이르러서도 상층 엘리트의 철학적 불교는 주자학으로 대체되었으나, 하층 서민의 기복적 불교는 여전히 계속 믿고 받들어지면서 주자학에서 결여된 일반 서민들의 기복적 욕구에 부응하는 신앙생활을 영위하게 하였으며, 이러한 신앙형태는 오늘에까지 면면히 이어지고 있다.

한국불교의 특성을 이해하려고 할 경우에 무속신앙과 습합된 기복적 불교는 중요한 연구대상이 되지 않을 수 없다. 그런데 기복적 불교는 그 성격상 문헌적인 자료가 부족할 수밖에 없기 때문에 그것을 보완하는 방법으로 오늘날의 불교 가운데 침전되면서 강인하게 존속되어온 기복적인 신앙형태를 주목할 필요가 있으며, 더불어 불교설화나 불교미술 등에 나타난 습속에도 관심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 또한 종교학·민속학·인류학·사회학·국문학 등 인접학문 분야의 접근방법을 적극적으로 원용하려는 노력이 요구된다.

다른 한편으로 다른 지역이나 민족에서도 불교가 각기 그 지역의 토착신앙이나 민족종교와 습합과정을 겪어 왔기 때문에 그들 지역의 불교신앙과의 비교 고찰이 필요하다. 특히 같은 대승불교권인 중국역사에서 나타난 불교와 도교(道敎) 사이의 갈등과 습합, 일본역사에서 나타난 불교와 신도(神道) 사이의 갈등과 습합의 역사에 대한 이해가 요구되며, 이를 한국역사에서의 무불습합(巫佛褶合)과 비교 고찰하는 작업이 이루어져야 한다. 이를 통하여 중국이나 일본의 불교와 구별되는 한국불교의 특성이 드러나게 될 것이다.

결론적으로 한국불교의 역사적 성격의 담론은 한국불교사의 참모습에 접근하려는 방법론으로서 의미를 가지는 것으로 받아들일 필요가 있다. 따라서 한국불교의 성격을 정의하는 학술적 개념으로 확정하여 그것을 일방적으로 증명하려는 작업으로 진행되는 것은 바람직하지 못하다. 더욱이 한국불교의 성격에 대한 담론이 한국불교의 우수한 특성을 주장하려는 방향으로 진행되어서도 안 될 것이다. 회통불교·호국불교·기복적 불교라는 역사적 성격론은 철저한 학문적 검증과정을 통하여 수정되거나 폐기될 수도 있다는 열린 자세가 요구된다.

그리고 한국불교의 역사적 성격에 대한 담론은 결과적으로 한국불교의 역사적 참모습에 접근하려는 노력으로 진행될 때만이 의미를 갖게 된다는 점을 재삼 강조하고자 한다. 다시 말하면, 회통불교론은 학파나 종파간의 교학적 논쟁과 갈등, 조화와 통합이라는 사상적인 문제로 접근할 것이고, 호국불교론은 국가와 불교의 관계, 지배세력과 불교교단의 관계를 통해 본 불교의 사회적 역할이라는 문제로 접근할 것이 요구된다. 그리고 기복적 불교론은 단순히 저급한 미신적 불교라는 선입관에서 벗어나 일반 서민들의 현실적인 삶의 문제에 직접적으로 대응하는 종교신앙의 형태로서 접근할 때 새로운 의미를 발견할 수 있게 될 것이다. 그리하여 이러한 세 영역에서의 연구 결과가 종합됨으로써 한국불교의 다면적인 참모습이 정확하게 그려질 것이다. 또한 다른 지역이나 민족의 불교와의 비교 고찰을 통해 한국불교의 특성이 올바로 설명될 수 있으며, 나아가 한국불교의 정체성도 제대로 확립될 수 있을 것이다.

최병헌 서울대 명예교수 shilrim9@snu.ac.kr
 

[1401호 / 2017년 7월 26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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