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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 수무변고처와 혈수식처

기자명 김성순

권력자가 세법 어기고 갑질하면
불나무에 거꾸로 매달리는 형벌

이번 호에는 대규환지옥의 열여섯 번째 별처지옥인 수무변고처(受無邊苦處)에 대해 알아보기로 하겠다. ‘무변(無邊)’ ‘무량(無量)’ ‘무궁(無窮)’ ‘무앙(無央)’ ‘무진(無盡)’ 등은 불교경전에서 ‘끝도, 제한도 없는 확장성’을 의미하며, 시간과 공간, 질량과 부피, 수량 등에 모두 적용되는 개념이다. 도대체 고통의 질량, 겪어야 하는 시간이 어느 정도이기에 ‘무변고(無邊苦)’라는 이름이 붙은 것일까?

지옥 다루는 경전 방향은
오계 근거해 죄 원인 밝혀
권력자가 약속 안 지키면
거짓말에 대한 과보 받아

이 대규환지옥과 그에 딸린 별처지옥으로 떨어지게 되는 주요 업인이 ‘망어’ 즉 ‘거짓말’이기 때문에 이 지옥에서 겪는 고통 중에는 혀나 입과 관련된 것들이 유난히 많이 등장한다. 바로 타인에게 거짓말을 행하는 주요 수단인 발성기관에 고통을 가하는 형태인 것이다. 이 지옥에서는 옥졸이 뜨겁게 달군 쇠집개로 죄인의 혀를 잡아 뽑는데, 한 번 뽑힌 자리에 다시 연한 새 혀가 자라나 끝없이 반복해서 뽑히는 고통을 당하게 된다. 나중에는 혀뿐만 아니라 눈알까지 뽑고, 그 와중에 단충(斷?)이라는 벌레가 죄인의 내장을 갉아먹는다.

그뿐만 아니라 이 수무변고처 지옥 안에는 거대한 물고기인 마갈어가 있어서 불타는 금강 주둥이와 불꽃이 이글대는 금강 발톱으로 죄인을 잡아서 씹어 먹는다. 이윽고 마갈어의 뱃속으로 들어간 죄인은 불꽃에 둘러싸여 무량, 무변한 시간 동안 그가 전생에 한 거짓말의 업이 사라질 때까지 한량없이 타고 그을리면서 고통을 당해야 한다.

그렇다면 이 수무변고처는 어떤 거짓말의 업을 지은 죄인이 가게 되는 것일까? 이 지옥에 대해 서술하고 있는 ‘정법념처경’을 보면 해양무역을 위해 바다로 나가는 무역선단을 안내하는 이 중에 해적과 결탁하여 상인들의 재물을 약탈하는 일들이 있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이 수무변고처는 바로 이러한 죄업을 지은 자들을 위해 준비된 지옥이라 할 수 있다. 그래서 이 지옥에서는 거짓말을 한 입과 제대로 안내자 역할을 하지 못한 눈에 형벌을 가하고, 가장 거대한 물고기인 마갈어의 뱃속에서 죄인들이 무변한 시간 동안 고통을 받게 하는 구도인 것이다.

지옥교설을 다루는 경전들의 지향은 단지 죄인들을 벌주는 것이 아니라, 오계에 근거하여 어떤 것이 지옥에 떨어지는 죄인지, 그것이 왜 죄가 되는 지를 알려주고, 중생들을 계도하려는 데에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래서 경전에서는 옥졸들의 입을 빌어 자주 중생의 죄에 대한 인식을 환기시키는 게송이 등장하는데, 아래에 그 중 한 구절을 소개한다.

‘거짓말은 모든 고통의 종자라고/ 지혜로운 이가 그렇게 말했나니/ 즐거움의 근본은 진실이 제일이라/ 그러므로 거짓말을 하지 않아야 한다.’

다음으로 대규환지옥의 열일곱 번째 별처지옥인 혈수식처(血髓食處)는 왕이나, 지역의 권력자가 정해진 세금 외에 추가로 거둬들이는 행위가 업인이 되어 떨어지게 되는 지옥이다. 왕이나 권력자가 이미 정해진 세법을 어기는 것 자체가 신민들에게 한 약속을 저버리는 거짓말을 하는 것으로 인식되고 있는 것이다.

이 혈수식처에 죄인이 들어오면 옥졸은 그를 불꽃에 타는 나무에 거꾸로 매달아 두고, 금강 발톱과 부리를 가진 새로 하여금 죄인의 발을 쪼게 한다. 결국 거꾸로 매달린 죄인은 자신의 발에서 흘러나오는 피를 받아 마시며 전생의 죄업이 소멸될 때까지 끊임없이 고통을 견뎌야 하는 것이다. 이 지옥의 죄인은 업이 다한 후에 혹여 인간 세상에 다시 나더라도 업력으로 인해 늘 구차하게 살고, 싸움판에서도 늘 지는 편에 끼게 된다고 한다. 이는 전생의 ‘갑질’ 때문에 후생에서는 평생 ‘을’의 위치에서 살게 되는 과보의 이치를 보여준다고 하겠다.

김성순 서울대 종교문제연구소 연구원 shui1@naver.com
 

[1401호 / 2017년 7월 26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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