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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 분소의에 담긴 정신

기자명 최원형

다른 존재 희생 위에 도래한 소비·탐심 시대

삼복더위 가운데 초복과 중복이 지났다. 어느 덧 여름이 중반을 넘어서고 있다. 연일 쏟아지다 멈추기를 반복하는 날씨 탓에 습도가 높아 무덥다. 푹푹 찌는 더위에 몸은 자꾸 쳐지고 의욕도 떨어지는 이때다. 오랜 비가 그치고 나면 남은 여름 동안은 불볕더위로 한껏 달궈질 것을 안다. 더우니 여름이지만 열대야로 밤잠을 설치는 날이면 어서 여름이 지나갔으면 하는 바람이 절로 든다. 그러나 충분한 볕은 단연코 필요하다. 볕이 내리 쬐어야 곡식이 영글고 과일은 단맛이 풍부해질 테니까. 여름을 나야 비로소 결실을 맺는다. 그래서 여름인 것이다. 여름이 열매의 옛말이기도 한 건 바로 이런 뜻을 내포하고 있기 때문이다. 어디 열매가 쉬이 맺힐 수 있을까. 열매가 맺히는 시간 동안 우리는 충분히 땀을 흘려야 한다.

빠르게 생산·소비되는 패스트패션
노동력 착취로 이어지는 의류산업
산업용수·화학물질 등 환경 오염도
물건과 연결된 숱한 인연 성찰해야

저녁이면 더위에 지친데다 끈적이는 땀으로 불쾌지수가 한껏 올라간다. 게다가 땀을 많이 흘리니 옷은 이틀을 입을 도리가 없다. 날마다 갈아입는데다 연일 내리는 비로 미처 빨래가 마르지 않으니 난감한 시기가 요즘이다. 급기야 작은 아이가 아침에 입고 나갈 반바지가 모두 건조대에 널려있는 상황이 벌어지고 말았다. 옷장을 다 뒤져서 유행이 지난 옷을 겨우 하나 찾았다. 사실 유행이 지났다고 하지만 내 눈에는 뭐가 유행이 지난 것인지 알 수가 없었다. 바지통이 넓은 걸 요새 누가 입느냐며 투덜거리고 나간 얘를 보고 있자니 안 되겠다 싶어 주말에 여벌로 입을 바지를 사러 갔다.

패스트푸드처럼 빨리 생산되고 빨리 소비되는 패스트패션이 자리 잡으면서 유행은 보름을 주기로 바뀐다고 한다. 아이가 입고 있던 옷도 이미 유행에서 한참 전에 밀려난 디자인이었다. 바지를 사니 아이는 그와 어울리는 셔츠도 사고 싶어 해서 뜻하지 않게 서너 벌을 장만했다. 옷장이며 서랍장은 이미 옷들로 빼곡해 더 이상 들어갈 공간이 없었다. 안 입는 옷들을 정리하더니 한 아름 꺼내놓는데 어느 하나 떨어지거나 헤진 옷이 없었다. 두고두고 오래 입으려 제법 값을 치르고 샀는데 단지 유행이 지나서 더 이상 입을 수 없다니 어이가 없었다.

헌 의류를 수집해가는 곳이 있으니 어딘가로 가서 잘 활용이 되겠거니 애써 위로하며 정말 멀쩡한 옷을 한 보따리 내놓았다. 버려진 옷들 가운데 재활용 가능한 의류 추정치가 99%에 이른다니 거의 대부분의 옷들이 재활용 가능하다고 보면 된다. 그럼에도 대부분은 재활용이 되기보다는 결국 매립지에 가 쌓이거나 소각된다. 매립지에서 옷감이 썩으며 나오는 온실가스며 유해물질들은 어디로 갈까? 그 옷들을 만들기 위해 쓰인 물의 양은 얼마며 옷감을 짜기 위해 면화를 기르며 들어간 물의 양은 또 얼마일까를 헤아려봤다.

전 세계 매립지에 옷과 섬유가 차지하는 비율이 대략 4%쯤 된다고 한다. 옷 한 벌 만드는데 물 2650리터가 필요하다는 통계치를 접하고 나니 옷이 그냥 옷 한 벌이 아니었다. 전 세계 살충제의 25%가 목화를 기르는데 쓰인다고 한다. 좀 더 많은 목화를 얻기 위해 무차별적으로 살충제가 뿌려지는 것이다. 섬유를 염색하고 처리하느라 산업용수의 17~20%가 오염되고 있다고도 한다. 패스트패션이 주로 생산되는 방글라데시 의류 염색공장 인근의 강물 색을 보면 올해 유행색을 알 수 있을 정도라는 말은 결코 과장이 아니다. 의류를 생산하느라 8000여가지의 화학물질이 쓰인다. 어디 그뿐인가? 전 세계 대략 2100만 명의 여성과 어린이가 의류산업에 헐값의 노동력을 착취당하고 있다. 2013년 4월 24일 방글라데시 수도 다카에 있던 라나플라자 의류공장 붕괴사고는 우리나라 삼풍백화점 붕괴와 매우 흡사한 사고였다. 그런데 사망자수는 삼풍백화점 붕괴사고와는 비교할 수 없이 많았다. 패스트패션을 생산하느라 좁은 공간에 빼곡히 모여 옷을 만들던 대부분의 여성 노동자들이 붕괴되는 건물더미에 깔려 목숨을 잃었다. 저렴한 값에 갖고 싶은 옷을 마음껏 구입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그들의 희생이 있었다.

소비의 시대를 살면서 물건과 연결된 숱한 인연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누군가의 희생, 확장하면 지구의 희생까지 포함된 지속 불가능한 희생을 치르고 이루어진 소비를 이제는 돌아봐야할 시절이다. 스님들이 분소의를 걸치던 뜻은 결국 마음 안에 싹트는 탐심을 경계하고자 함이었다. 그 뜻이 절실한 시대다.

최원형 불교생태콘텐츠연구소장 eaglet777@naver.com
 

[1401호 / 2017년 7월 26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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