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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 염천 아래서 동물원을 생각하다

기자명 최원형

모든 동물은 온정 느끼며 온정 받을 자격도 있어

며칠 전 광주에 다녀왔다. 송정역에 기차가 정차하고 플랫폼에 발을 내딛는 순간 숨이 턱 막히는 경험을 했다. 서울도 가마솥이었지만 광주는 조금 더 남쪽이었던 때문인지 37도에 육박하는 기온으로 숨을 제대로 쉴 수가 없었다. 냉방 중인 대합실로 들어가니 그제야 정신이 좀 맑아졌다. 여름이면 으레 30도가 넘게 마련인데도 이렇듯 숨쉬기조차 곤란한 지경에 이른 건 기온이 불과 몇 도 더 올라간 때문이다. 사실 생명활동만이 아니라 기후를 변화시키는 일도 큰 숫자까지 필요하지도 않다. 산업 혁명 이전보다 현재 지구 기온이 고작 0.85도 올랐을 뿐인데도 지구가 기후변화로 몸살을 앓는 것만 봐도 분명하다.

폭염 속 물 없는 수조에 살며
고통받는 동물원 북극곰 통키
지구기온 오르는데 인간 일조
동물도 지구 공유할 권리 있어

에버랜드에는 통키라 불리는 북극곰이 한 마리 살고 있다. 북극의 환경은 영하 40도의 기온이 일상인 곳이다. 요즘처럼 기온이 영상 40도 가까이 오르내리는 날, 도대체 이 더위에 통키는 어떻게 지낼지 궁금했다. 들리는 소식은 매우 뜻밖이었다. 통키가 사는 우리에 있는 커다란 수조에는 물이 하나도 없었다. 철저히 가려진 우리 속에서 외부와 단절된 채 통키는 폭염에 괴로워하고 있었다. 그런 환경에서 살아있다는 사실이 기적 같았다. 더위를 식히기 위해서도, 수영을 하던 습관으로도 수조에 물은 분명 필요했다. 에버랜드측은 수조 물을 다 채우려면 8시간도 넘게 걸린다고 했다. 비용의 문제였던 걸까? 2013년 서울대공원에서 사육사가 호랑이에게 물려 죽는 끔찍한 사고가 발생했다. 당시 일각에서는 이 무서운 맹수를 어서 사살해야한다고 했다. 공원측은 고민에 빠졌다. 이 호랑이는 푸틴 러시아 대통령에게 기증받은 ‘외교 호랑이’여서 외교관계를 고려해야 하기 때문에 함부로 사살을 할 수 없었던 것이다. 나는 이 사건을 지켜보면서 인간이야말로 무섭고 이기적인 동물이라는 생각을 했다. 동물원에 있지 않고 호랑이가 살던 야생에 그대로 있었다면 어땠을까. 호랑이가 동물원을 원했던 것은 더더욱 아니지 않은가. 동물원 우리 안에 넣은 것은 그 누구도 아닌 바로, 우리들이었다. 그리고 호랑이는 아마도 스스로 방어를 하려 물었을 것이다. 호랑이가 사육사를 문 행위를 옹호하려는 게 아니라 다만 동물원이란 게 얼마나 인간중심의 발상인가를 말하고 싶은 것이다. 

아이들 어릴 적 가끔 갔던 동물원의 기억은 지금 생각해도 애잔하다. 타조 우리였는데, 타조는 관람객들이 구경하는 반대쪽으로 천천히 움직이고 있었다. 그의 엉덩이 쪽 깃털이 한 움큼씩 푹푹 뽑혀 있었고 건강하지 못한 맨살이 보였다. 아이들도 나도 얼굴을 찡그리며, 타조가 아픈가보다고 했다. 타조 우리는 시멘트 바닥이었다. 넓적한 발바닥에 와 닿는 감촉이 흙이나 풀이 아닌 딱딱한 시멘트였을 때 타조는 무엇을 느꼈을까. 동물들은 무료해서 어쩔 줄 모르는 것 같았다. 동물의 왕이라는 호랑이는 어슬렁거리지도 않고 한 구석에 엎드려있었다. 펭귄을 보러 갔을 때, 마침 펭귄들 식사 시간이었다. 사육사가 아주 작은 펭귄을 한 마리씩 쓱 끌어다가 한 손으로는 입을 벌리고 다른 손으로 물고기를 펭귄 입 안으로 꾹꾹 밀어 넣고 있었다. 마치 내 목구멍에다 대고 밀어 넣는 것 같은 이물감이 느껴져 무척 불쾌했다. 그들이 스스로 먹게 할 순 없을까, 관람시간 때문에 저리 서두르는 걸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 때 이후 나는 동물 쇼는 말할 것도 없고 동물원엘 가지 않는다.

디디에 데냉크스 소설 ‘파리의 식인종’에는 1931년 파리에서 열린 식민지 박람회에 동물원에 갇혀 짐승처럼 전시되었던 남태평양 누벨칼레도니 원주민들 이야기가 나온다. 그곳에서 살아 돌아온 사람 고세네의 분노를 통해 동물원에 갇혀 지내며 그들이 느꼈던 수치심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었다. 그런 수치심은 비단 인간만이 느낄 수 있는 것은 아닐 거라 생각한다. 동물들도 이 지구를 공유하며 우리와 더불어 살 권리가 있다. 동물들도 생각하고 느낀다. 모든 동물은 온정을 느끼며 온정 받을 자격이 있다. 그런데 우리가 사는 세상은 동물에게 온정적이지가 않다. 온정은 모든 살아 있는 존재와 세상에 도움을 주는데도 말이다. 요즘은 실시간으로 세계 곳곳에 살고 있는 동물들을 들여다볼 수 있는 세상이다. 꼭 실물을 봐야겠다는 그 생각 하나를 내려놓으면 많은 생명들의 ‘평화’가 가능하다.

수많은 존재들의 연결성으로 작은 온도 상승도 도미노처럼 결국 엄청난 재앙에 이른다. 그런데 재앙의 중심에 자꾸 인간이 자리를 한다는 사실이 슬프다. 지구 기온이 오르는데 가장 큰 일조를 하는 인간의 활동이 그렇고, 인간 이외의 생명에 대한 배려가 부족한 것이 또한 그렇다.

최원형 불교생태콘텐츠연구소장 eaglet777@naver.com
 

[1403호 / 2017년 8월 16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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