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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 마가다국과 민주주의

“그들에겐 번영이 기대될 뿐 쇠망은 없을지니”

▲ 그림=근호

아자타삿투는 부처님 당시 마가다국의 왕이다. 마가다국은 당시 인도에 있었던 16개 나라 중에서 가장 영토가 큰 두 나라 가운데 하나였지만 아자타삿투는 그런 나라의 왕인 것으로 만족할 수 없었다. 자신의 옆 나라인 왓지국을 병합하고 싶었던 그는 어느 날 신하들에게 말했다.

아자타삿투왕 왓지국 토벌 희망
부처님 왓지족 7가지 덕목 설명
비구 칠불쇠법 설하며 화합 강조
지금 승단은 화합중인가 우중인가

“왓지국은 나날이 국력이 상승하고 있다. 이대로 두면 우리에게 위험하다. 나는 그들을 쳐부셔 후환을 없애고 싶다.”

그 무렵 부처님께서는 마가다국의 수도인 라자가하에서 가까운 곳에 있는 영취산에 머물고 계셨다. 아자타삿투는 왓사카라라는 이름의 브라흐만을 불러 이렇게 지시했다.

“브라흐만이여, 그대는 지금 바로 영취산으로 가서 나의 뜻을 세존께 전하라. 즉, 그곳에 도달한 다음 세존의 발 앞에 머리를 대고 예배한 다음 나의 말로써 ‘세존께서는 병환이 없으시며, 근심이 없으시며, 기력을 잃지 않고 거동이 가벼우시며, 마음 편하게 잘 지내시는지요?’라고 안부를 여쭈어라. 이렇게 인사를 끝나면 다음과 같이 사뢰도록 하라.

‘세존이시여, 마가다국왕이며 위데히 왕비의 아들인 아자타삿투는 이웃 나라인 왓지국을 토벌하고자 합니다. 그래서 그분은 세존께 어떻게 하면 왓지족을 토벌할 수 있는지, 또 그 토벌에 성공할 수 있는지를 여쭙습니다.’

브라흐만이여, 그러면 세존께서는 무슨 말씀이든지 해주실 것이다. 그대는 그 말씀을 잘 듣고나서 나에게 그 말을 전해주기 바란다.”

브라흐만 왓사카라는 부처님을 뵙기 위해 출발했다. 그는 수레가 닿는 데까지는 수레를 타고, 나머지 길은 걸어서 세존의 처소로 갔다. 그런 다음 인사를 드리고나서 아자타삿투 왕의 말을 사뢰었다.

세존께서는 그의 말을 다 들으신 다음 당신의 뒤편에서 부채질을 하고 있는 아난다 비구를 돌아보며 물으셨다.

“아난다야, 저 왓지국 사람들은 자주 모임을 연다고 한다. 너는 그런 말을 들은 적이 있느냐?”
“예, 저도 그런 말을 들은 적이 있습니다.”
“그들은 왜 모임을 자주 여는 것이냐?”
“제가 알기로 왓지국에는 왕이 없습니다. 세존께서도 잘 아시겠습니다만 왕국에서는 최종 결정을 왕이 합니다. 그렇지만 왓지국에서는 논의할 사안이 있을 때 의장이 여러 사람의 의견을 모아 결정을 내립니다.”
“아난다여, 나는 왓지국 사람들처럼 여러 사람의 의견을 취합하는 편이 더 올바른 결정을 내릴 수 있다고 생각하는데, 네 생각은 어떠하냐?” “예,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세존께서 다시 물으셨다.

“아난다여, 왓지국 사람들은 그렇게 모여서 의사를 결정하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모일 때나 헤어질 때 여러 사람이 잘 화합한다고 들었다. 또한 나는 그들이 국가의 일뿐만이 아니라 일족의 일을 결정할 때에도 그렇게 한다고 들었는데, 너는 그런 말을 들은 적이 있느냐?” “예, 저도 그런 말을 들은 적이 있습니다.”

이런 식으로 세존께서는 아난다에게 왓지국 사람들에 대해 여러 가지를 물으셨고, 그 과정에서 왓지국 사람들이 합의로써 결정된 법을 잘 지킨다는 것, 나이 많은 이들을 존경한다는 것, 여인들을 함부로 대하지 않는다는 것, 제사와 축제를 빠뜨리지 않는다는 것, 훌륭한 수행자들을 잘 보호하고 후원한다는 것 등이 밝혀졌다. 이렇게 왓지국의 일곱 가지 덕목이 밝혀질 때마다 부처님께서는 각각의 덕목에 대해 말씀하셨다.

“아난다여, 왓지국 사람들이 그렇게 행동한다면, 그들에게는 번영이 기대될 뿐 쇠망은 없을 것이니라.”

마가다국의 사신인 왓사카라 브라흐만은 부처님과 아난다 존자가 나누는 대화를 처음부터 끝까지 잘 경청했다. 능숙한 외교관으로서, 그는 부처님께서 아자타삿투 왕의 질문에 직접 대답하지 않고 왓지국의 상황에 대해서만 넌지시 말씀하시는 뜻을 짐작했다. 그는 부처님 앞에 엎드려 이렇게 사뢰었다.

“세존이시여, 틀림없이 그렇사옵니다. 그 일곱 가지 덕목 중 하나만 갖춘다고 해도 쇠망하지 않을 터인데, 하물며 일곱 가지 덕목 모두를 갖춘 경우이겠습니까? 이로써는 왓지국 사람들에게 어떤 결정적인 변화가 생기지 않는 한 마가다국이 왓지국을 멸망시키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대한민국 헌법의 제1조는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이다. 민주는 국민이 주체라는 뜻이고, 공화는 여러 사람의 의견을 취합하여 결론을 내린다는 뜻이다. 신라 또한 처음에는 화백(和白)이라 불리는 공화제로써 운영되던 나라였다. 그렇지만 주민의 성숙도와 운영의 미비 등의 이유 때문에 고대에 공화제국가로써 성공을 거둔 사례는 적다.

그래서 고대 그리스(아테네)의 사례는 감동적이다. 2400년 전 페리클레스 시대, 아테네는 민주정으로써 큰 성공을 거두었었다. 비록 여자와 노예는 참여하지 못하는 제한적인 민주정이긴 했으나, 그 점을 제한다면 페리클레스 시대의 아테네는 민주주의의 위대함을 놀라운 수준으로 증명한 시대였던 것이다.

그러나 민주주의는 자칫 우중(愚衆) 정치로 전락할 우려가 있다. 지혜로운 사람은 적고 어리석은 사람은 많게 마련이기 때문에 모든 사람의 의견을 다 수렴하다보면 ‘우선은 곳감이 달다’는 식의 결론을 내리기 쉬운 것이다. 포퓰리즘이라 불리는 그런 흐름이 나타남으로써 페리클레스 시대를 지나 고대 아테네의 민주정은 무너지고 말았다. 21세기 한국. 이제 우리국민의 수준은 우중으로 전락할 위험을 제어할 만한 힘을 상당 부분 비축하고 있다. 어리석은 다수가 지혜로운 소수에게 승리하는 때가 아주 없는 것은 아니지만 큰 흐름으로 보자면 우리의 민주주의는 나날이 성장해가고 있다고 필자는 생각한다.

마가다국의 사신이 돌아간 다음 부처님께서는 비구들을 불러 비구들에게도 칠불쇠법이 있음을 설하셨다. 비구들 또한 화합해야 하고, 결정된 사안을 잘 지켜야 한다. 부처님께서는 비구 사회가 왓지국과 같은 공화국의 성격을 가질 것을, 그럼으로써 화합중(和合衆)을 이룰 것을 희망하셨던 것이다.

지금 우리 승단은 화합중인가, 우중인가. 우리 불제자는 자신이 속한 집단에서 민주주의를 잘 구현하고 있는가, 아닌가. 민주주의는 서양의, 현대의 것만은 아니다. 부처님께서는 이미 2500년 전에 민주주의를 선양하셨다.

김정빈 소설가·목포과학대교수 jeongbin22@hanmail.net
 

[1403호 / 2017년 8월 16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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