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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 세 자매의 열흘

기자명 조정육

가족이라는 인연이 주는 아주 특별한 공감

▲ 이선복, ‘만물상 정토’, 소나무 판에 아크릴, 48×28cm, 개인, 2013년. 우리 모두는 잠시 동안 이 세상을 살다 간다. 짧게 살다 갈 인생인데 우리는 무슨 목적으로 이 세상에 온 것일까. 영적인 성장을 위해서 왔다. 영적인 성장을 위해서는 성장통을 겪어야 한다. 성장통을 겪을 때 형제자매는 큰 힘이 되고 의지가 된다. 우리 모두가 정토에 이를 때까지 손에 손잡고 함께 가야 할 도반이고 스승이다.

세 자매가 만났다. 전화통화도 자주 하고 일이 있을 때마다 만나지만 세 자매가 한 장소에서 열흘을 보낸 것은 결혼 이후 처음이다. 각자 사는 곳이 다르고 가정이 있다 보니 시간 맞추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우리 자매는 모두 여섯이다. 그 중 둘째 언니는 오래 전에 세상을 떠났고 지금은 다섯 자매만 남았다. 이번 모임에는 셋째언니와 넷째언니 그리고 막내인 내가 참석했다. 광주에 있는 셋째언니 집으로 넷째언니와 내가 갔다. 넷째언니는 천안에서, 나는 용인에서 출발했다. 오랜만에 피붙이를 만나니 그저 좋다. 형제자매는 어린 시절에 같은 시간과 공간을 공유했다는 사실만으로 만나면 무조건 무장해제 된다. 거두절미하고 맥락 없는 스토리를 얘기해도 통할 수 있는 사이가 피붙이다. 언니 집에 간 첫날밤에 세 자매가 누워있자니 자연스럽게 과거 얘기가 나온다. 셋째언니가 먼저 얘기를 시작한다.

어린시절 늘 함께한 형제자매는
맥락 없는 이야기도 통하는 관계
그럼에도 열흘 함께 하긴 어려워
서로 강요하다 보면 마음도 상해
곧바로 어울릴 수 있기에 ‘가족’

“우리 어렸을 때는 먹을 것이 없었잖아. 밥 먹고 살기도 힘들었는데 간식이 뭐가 있었겠어. 기껏해야 고구마 쪄 먹는 것이 전부였지. 열 살 때였던가? 한번은 아버지가 담배를 사오라고 돈을 주셨어. 그 당시에는 가게에서 담배를 팔지 않고 일주일에 한 번씩 정해진 날짜에 담배장수가 왔어. 그러면 담배 살 사람이 미리 버스 정류장에 가서 대기하고 있다가 담배를 사오면 되는 거지. 그런데 그날따라 담배장수가 늦게 오는 거야. 길 건너편에는 점방이 있었어. 주먹만한 눈깔사탕을 계속 보고 있자니 침이 꼴깍꼴깍 넘어가는 거야. 어린 마음에 눈깔사탕이 얼마나 먹고 싶었겠냐. 그렇다고 아버지가 돈을 더 준 것도 아니고 눈깔사탕은 먹고 싶고, 그때 마침 옆에 앉아있던 방충안댁이 계란을 놓고 잠깐 어디로 가는 거야. 그 당시에는 담뱃값으로 돈 대신 계란을 받기도 했거든. 그래서 어떻게 했겠니? 방충안댁이 놓고 간 계란꾸러미에서 계란 세 개를 몰래 빼다가 눈깔사탕하고 바꿔 먹어버렸지. 계란 세 개를 가져가면 눈깔사탕 하나를 줬거든.”

셋째언니가 오 십 년도 더 지난 추억을 들먹이자 넷째 언니가 곧바로 대답한다.

“어구구 그런 일이 있었어? 짠해라. 내가 사탕 많이 가져왔으니까 실컷 먹어.”

그러면서 넷째언니가 흰 사탕 여러 개를 까서 셋째언니 입에 강제로 넣어준다. 이제는 사탕 먹을 나이도 한참 지난 셋째언니가 사탕을 오물거리며 다음 말을 이어간다.

“그게 전부가 아니야. 잠시 후에 방충안댁이 돌아왔어. 당연히 내가 범인이란 사실을 알았겠지. 그곳에 우리 둘 밖에 없었으니까. 계란은 없어졌는데 나는 눈깔사탕을 오물오물하고 있으니 안 봐도 비디오잖아. 방충안댁이 나한테 물어보더라. 계란 가져갔느냐고. 나는 당연히 아니라고 했지. 내가 계속 거짓말을 하자 방충안댁은 아버지한테 일러버렸어. 아버지 성격 알지? 아버지는 불같이 화를 내시더니 나를 앞세우고 동네 한 바퀴를 돌게 하면서 이렇게 외치라고 했어. ‘나는 방충안댁 계란을 훔쳐서 눈깔사탕을 사먹었습니다.’ 완전히 쪽팔렸지. 그래도 어떻게 해? 결국 집집마다 돌아가면서 아버지가 시키는 대로 했어.”

“하여간 아버지는 독해. 당신 담배는 사오라고 시키면서 어떻게 딸내미 눈깔사탕은 사줄 생각은 안 하시냐? 그 어린 것이 얼마나 먹고 싶었겠어.”

사탕을 입에 넣어 준 넷째언니가 어린 시절의 셋째언니를 위로하기라도 하듯 아버지를 성토한다.

“그런 수모를 당하고도 가출할 생각 안 했어? 나 같으면 당장에 집 나오고 말았겠다.”

내가 언니 편을 들어주자 언니의 다음 말이 걸작이다.

“당연히 집을 나오고 싶었지. 그런데 집 나와서 내가 갈 데가 어디 있냐? 그래도 아버지 밑에 있어야 밥이라도 얻어먹겠다 싶더라고. 어린 나이에도 그런 계산이 되더라니까.”

밤이 깊어질 때까지 세 자매의 얘기는 계속된다. 늦게 잠든 까닭에 다음 날에는 느지막이 일어나 아침밥을 먹는다. 밥 먹을 때도 자매들의 수다는 끊이지 않는다. 나는 왜 이렇게 밥이 맛있는지 몰라. 숟가락이 입에 들어가면 언제 씹었는지도 모르게 삼켜져버린단 말이야. 언니도 그래? 나도 그래. 나도 나도. 누가 무슨 말을 해도 나머지 두 사람은 기다렸다는 듯이 무조건 맞장구를 친다. 언니도 그래? 나도 그래. 나도 나도. 

밥을 먹은 다음에는 세 자매가 한의원으로 향한다. 이번에 셋째언니 집에 모인 이유도 한의원 때문이었다. 셋째언니 집 앞에 있는 한의원이 침을 아주 잘 놓으니 이번 기회에 함께 치료받자고 했다. 우리 세 자매 모두 치료가 필요한 사람들이었다. 셋째언니는 얼마 전에 무지외반증 수술을 했다. 넷째언니는 몇 달 후에 무지외반증 수술을 할 예정이다. 무지외반증은 발가락뼈가 돌출되거나 휘어지는 질병으로 걸을 때마다 심한 통증을 동반한다. 수술을 한 셋째언니와 수술을 앞둔 넷째언니가 절뚝거리며 걷는다. 두 언니는 엄마가 앓던 무지외반증을 이어받았다. 다행히 나는 아직 무지외반증 증세가 나타나지 않지만 나이가 더 들면 어쩔지 모르겠다. 대신 나는 목과 어깨가 아파서 치료를 받기로 했다.

두 언니를 뒤따라가면서 앞서 가는 모습을 지켜보고 있자니 오십 여년의 세월이 압축되어 지나간다. 팔딱거리며 함께 줄넘기를 하던 어린 소녀들이 순식간에 노인이 되어 내 앞에 있다. 어느 때의 언니가 나의 언니일까. 다리를 절뚝거리는 지금의 언니가 나의 언니일까 아니면 줄넘기를 하던 어린 시절의 언니가 나의 언니일까. 올 봄에 핀 매화꽃이 떨어지면 내년에도 같은 나무에서 매화꽃이 핀다. 그렇다면 올 해 핀 꽃과 내년에 핀 꽃은 같은 꽃일까 다른 꽃일까. 한의원에 가서 아픈 부위에 부항을 뜨고 뜸을 뜨고 침을 맞는다. 많은 세월을 부려먹었으니 이제는 수리도 해가면서 살살 써먹어야 돼. 셋째언니의 잔소리가 이어진다. 그래도 좋다. 부모님이 모두 세상을 떠난 지금 잔소리를 할 수 있는 언니가 있다는 것만으로도 감사하다.

세 자매가 함께 있는 시간이 항상 즐겁고 행복한 것만은 아니다. 비록 자매라고는 하나 삼십 년이 넘는 세월을 서로 다른 공간에서 살던 사람들이 열흘 동안 같은 공간을 공유하기는 쉽지 않다. 서로가 서로의 삶의 방식을 강요하다보면 설전 끝에 마음 상한 일이 발생한다. 그러나 잠시 후면 언제 다투었냐는 듯 마음이 풀어져 어린아이처럼 함께 어울린다. 가족이라는 인연이 주는 특별한 공감이다.

조정육 미술평론가 sixgardn@hanmail.net
 

[1403호 / 2017년 8월 16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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