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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는 무엇으로 사회에 기여하나

종교는 현실 너머의 세계에 대한 비전을 제시하는 것을 본래 사명으로 삼지만, 현실을 도외시 할 수는 없다. 수많은 사람들이 종교를 가지고 있지만 이들 가운데 전자에 대한 비전 때문에 종교를 갖게 된 사람은 결코 많지 않다. 사람들이 종교를 찾는 주된 이유는 현실세계 너머에서 오는 힘으로 현실 속 자신의 삶이 원만해지기를 바라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종교가 사회 속에서 성장하려면 사람들에게 현실 너머의 세계에 대한 비전과 동시에 현실에 대한 대책도 아울러 제시해야 한다.

기독교는 한국사회의 산업화 과정과 민주화 과정에서 그러한 대책을 잘 제시하면서 급속히 성장할 수 있었던 반면에 한국불교는 그러지 못하였다. 한국불교는 시대 흐름을 읽고 대응하는 능력이 부족했다. 산업화 과정에서 도시로 유입된 사람들에게 울타리가 되어주지 못했고, 민주화 과정에서도 권리를 찾고자 하는 사람들의 후원 세력이 되어주지 못했다. 그 결과 안타깝게도 한국사회에서 중심 종교로서의 지위를 위협받게 되었다.

그런데 한국사회의 산업화 과정과 민주화 과정에서 제 역할을 하지 못한 것만큼 안타까운 것은 산업화와 민주화 이후 한국사회에서 불교의 부족한 역할 수행이다. 1990년대 이후 한국사회는 본격적으로 산업화와 민주화 이후의 사회적 과제와 마주치고 있다. 번잡함, 긴장감, 정보의 과잉, 자연으로부터 소외 등으로 대변되는 대도시 생활에서 오는 신경과민과 자연 생태적 건강함의 상실은 산업화와 민주화의 결실인 시민사회 구축으로 해결될 수 없는 문제들이다. 그런데 불교의 철학과 문화유산은 다른 어떤 종교나 철학보다 이러한 문제들의 해결에 도움을 줄 수 있다. 실제로 많은 사람들이 불교 속에서 이러한 문제를 해결할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하고 기웃거려 보고 있다. 불교인들 역시 그 기대에 부응하려고 나름대로 노력하고 있다. 하지만 그 노력은 기대한 만큼의 성과를 올리지 못하고 있는데, 거기에는 근원적인 문제가 있기 때문이다.

불교의 참선은 생사 문제를 깨치기 위한 불교 본래 수행법이고, 산중의 절은 그러한 수행을 하기에 적합한 환경 속에 만든 공간이다. 그것은 수천년 전에 개발된 방법이고 그때부터 만든 공간이다. 하지만 참선과 산속의 절이 오늘날 대도시인들에게 필요한 훈련방법과 공간이 되기 위해서는 메워야 할 간극이 있다. 불교인들이 현대인들의 요구에 부응하기 위해 노력함에도 불구하고 기대만큼의 성과를 올리지 못하고 있는 것은 그 간극을 메우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산중의 거의 모든 사찰들이 여러 가지 프로그램을 통해서 일반인들에게 참선을 가르치고 있다. 또 원한다면 누구나 숲으로 둘러싸인 산사에서 하룻밤을 지낼 수 있도록 숙박시설도 갖추고 있다. 그러나 사찰에서 현재 행해지고 있는 참선 교육이 오늘날 수많은 사람들의 정신적 문제들을 해결해 주기는 어려우며, 산사에서의 하룻밤이 현대인들에게 자연적 건강함을 가져다줄 수도 없다. 철학적으로는 종교적 깨달음에 목표를 두고서 방법론적으로는 문화체험식 접근을 하는 현재의 참선 교육으로는 생사를 초월하는 깨침을 얻게 할 수 없다. 일상생활 속에서 지속적으로 겪게 되는 정신적 문제를 해결하는 데도 그다지 도움을 줄 수도 없다. 이러한 한계와 간극에도 불구하고 불교의 철학과 문화유산은 오늘날 한국사회의 사회적 문제를 해결하는 데 큰 도움을 줄 수 있고, 또 그렇게 함으로써 불교는 한국사회의 종교적 중심이 될 수 있다. 그러려면 한국사회의 사회적 문제에 대해 좀 더 체계적으로 접근하고, 사람들이 무엇을 필요로 하는지, 그리고 그 필요가 실제로 어떤 식으로 충족될 수 있는지에 대한 구체적인 연구가 필요하다. 번잡한 생활 속에서 오는 그날그날의 정신적 긴장을 해소하고, 콘크리트 구조물로 가득 찬 반자연적 공간에서 약화된 건강을 정기적으로 자연환경 속에서 회복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만든다면, 불교는 한국사회의 중심적 종교가 될 수 있을 것이다.

김종인 경희대 객원교수 laybuddhistforum@gmail.com
 

[1404호 / 2017년 8월 23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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