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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흡 한 번, 삶과 죽음의 인연

기자명 금해 스님
  • 세심청심
  • 입력 2017.08.21 13:10
  • 수정 2017.08.21 13:11
  • 댓글 0

백중 기도 중 죽음 맞은 두 보살
억겁인연 작은 부분만 판단가능
모든 삶·죽음 내 것으로 관해야

영가를 위한 백중 우란분절 기도가 있는 용맹정진 기간, 하안거입니다. 여름은 또 어린이, 청소년 등 여러 템플스테이가 진행되는, 삶의 에너지가 넘쳐나는 계절이기도 합니다. 그래서인지 이맘때면 삶과 죽음에 대한 생각이 더욱 깊어집니다.

오랜 인연 중에 백중 기도 기간에 돌아가신 보살님 두 분이 생각납니다. 두 분은 젊은 시절부터 함께 신행생활을 한 도반이었고, 우리절에서 불교 공부를 시작했습니다. 불교 공부를 너무 늦게 시작했다며 안타까워했지만, 그만큼 열렬히 공부했습니다.

첫 수업에 3명이 입학했는데 그 중 한 분이 바로 이 보살님이었습니다. 보살님은 말없이, 어머니처럼 절 살림을 구석구석 도맡아서 해 주었습니다. 신도는 없는데, 어린이법회부터 매일 끊임없이 법회를 보는 스님이 안타까워 발을 돌리지 못할 정도로 자비심이 많았습니다. 그런 보살님에게 시아버님이 계셨는데, 성격이 별나서 가족도 견디기 힘든 어른이었습니다. 특히 며느리에게 더 심했습니다. 그런데도 보살님은 시아버님을 끝까지 모시며 마음 상하지 않도록 손과 발이 되어주었습니다.

어느 날, 보살님은 잘 낫지 않는 감기로 병원에 들렀다가 암 말기 진단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짧은 간병 기간 후 눈을 감았습니다. 많은 이들이 시아버님을 탓했습니다. 평생의 원수였다고 누군가는 말했습니다. 그런데 불과 6개월 뒤, 연세 많았지만 건강했던 그 시아버님이 돌아가셨습니다. 정작 마음 아파 뜨거운 눈물 흘렸던 우리들은 모두 남았는데 말입니다.

인연이란 것은 얼마나 많은 의미를 갖고 있는가 생각합니다. 지금 보고 있는 것, 느끼는 인연들을 우리는 얼마나 이해할 수 있을까요?

도반인 다른 한 보살님 역시 불교공부로 인연을 맺었습니다. 경전 배우는 것이 이렇게 좋은 줄 몰랐다며, 때 늦은 불교 공부를 특히나 즐거워했습니다. 몸이 약해 어지러움이 많았는데도 삼천배나 철야기도 등에 빠지지 않았습니다. 나중에는 무문관 수행을 한달 동안이나 다녀 오기도 했습니다.

보살님은 어려운 일을 여러 번 겪었는데, 평생 모은 재산을 은행 부도로 잃기도 했습니다. 한동안 연락이 없다가, 암에 걸렸다며 전화가 왔습니다. 몸이 약해서 항암치료를 받지 못했고, 그 사실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였습니다. 아무도 만나지 않는데 오직 스님이 생각난다며, 보고 싶다고 얘기했습니다.

보살님은 삶의 모든 장애를 이겨내고, 이 순간 편안한 마음으로 있는 것은 오직 부처님 덕분이라 말했습니다. 그리고 자식들보다는 곁에 말없이 서 있는 남편을 걱정 했습니다. 평생 일한 적이 없고, 사람들과 교류한 적 없이 혼자 참선하거나 불교 수행만 했던 남편이었습니다. 모든 이들이 무능력하다며 남편을 미워하는데, 자기가 없어지면 어떻게 살지 걱정했지요.

그런데, 놀랍게도 남편인 거사님이 집 거실, 평소 참선하는 의자에서 먼저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그리고 몇 시간 뒤, 기다린 듯 보살님이 임종했습니다. 부부는 그렇게 하루 밤 사이를 두고 함께 떠났습니다.

▲ 금해 스님
억 겁으로 이어져오는 인연에 대해, 지금 우리가 판단할 수 있는 것은 아주 작은 부분일 뿐입니다. 양극단에 있는 듯한 삶과 죽음이 사실 호흡 하나로 달라지는 가장 가까운 것입니다. 일상에서 보는 모든 삶과 죽음은 나의 삶과 죽음으로 관해야 합니다. 그것이 깨어있는 수행자의 삶일 것입니다.

오늘, 백중 기도 중에 밖에서 뛰어 놀던 아이들이 들어와, 영단에 잔을 올립니다. 이렇듯 한 호흡 사이를 뛰어넘어 삶과 죽음이 하나가 되는 찬란한 우란분절이길 발원합니다.

금해 스님 서울 관음선원 주지 okbuddha@daum.net
 

 

[1404호 / 2017년 8월 23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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