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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 철확처·혈하표처

기자명 김성순

인신공양 등 외도 위해 마련된 지옥

초열지옥의 다섯 번째 별처지옥은 철확처(鐵?處)이다. 이 초열지옥의 근본지옥과 그에 딸린 16별처지옥들은 ‘외도’들을 위해 마련된 지옥이라고 할 수 있다. 이교도들에 대해 지옥행까지 경고하는 것은 현대의 다종교·다문화주의적 사고에서는 이해하기 힘들겠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불교에서는 불타의 정법을 비방하고, 교단의 활동을 방해했던 이교도의 행위보다는 그들의 교의와 의례방식에 대해 집중적으로 비판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다시 말해, 불교의 지옥교의에서는 불살생의 교의와 충돌했던 이교도의 인신(人身)공양이나, 동물희생 등의 의례에 관해 주로 비판하고 있는 것이다.

자해·고행, 수행으로 포장한
외도들 위한 전용지옥 등장
미신행위로 살행 자행하는
잘못된 의례에 따끔한 일침

신에게 제사를 지낼 때에 인신공양의 희생물이 된 사람은 반드시 천상에 태어나게 되며, 의례 집행자인 자신의 사후에 그 희생자가 이 공양 의례를 증명해 주리라는 것이 당시 외도들의 주장이었다. 불교의 입장에서는 당연히 그러한 의례행위와 교의를 수용할 수가 없었고, 현실적으로도 교단 간에 대립했던 상황이 이러한 외도 전용 지옥의 교의가 등장하는 배경이 되었으리라 생각된다.

이 철확처는 ‘쇠솥’이라는 이름처럼 지옥 안에 크기가 10요순이나 되는 거대한 쇠솥이 여섯 개나 있다. 첫 번째 쇠솥인 ‘평등수고무력무구(平等受苦無力無救)’는 죄인들을 한꺼번에 그 안에 쏟아 부어서 밀가루반죽처럼 흐물흐물한 하나의 덩어리로 만들어버리는 솥이다. 모두가 똑같이 형태도 없이 치즈처럼 녹을 때까지 누구도 구해주지 않고, 스스로 빠져나갈 힘도 없어지기에 ‘평등수고무력무구’라는 이름이 붙은 것이다. 이는 외도들이 주장하는 교의가 결코 인간을 구제할 수 없는 것임을 의미하는 것으로 보인다.

다음 두 번째 쇠솥은 ‘화상열비(火常熱沸)’로서 항상 뜨거운 구리물이 끓고 있으며, 죄인들이 그 안에 들어가면 이내 삶겨진 채로 죽었다 다시 살아나기를 반복하는 전형적인 지옥의 쇠솥이라고 할 수 있다.

다음 세 번째 ‘거엽수생(鋸葉水生)’이라는 쇠솥은 죄인이 들어가면 그 안의 구리물이 마치 톱날처럼 죄인의 몸을 켜는 고통을 주기 때문에 ‘거엽(鋸葉)’ 즉, ‘톱날 잎사귀’라는 이름이 붙은 것이다. 그리고 네 번째, ‘극리도만(極利刀?)’은 쇠솥 안에 날카로운 칼꽃 목걸이가 있어서 그 안에 들어온 죄인을 베고, 할퀴고, 자른다.

다섯 번째, ‘극렬비수(極烈沸水)’와 여섯 번째 ‘다요악사(多饒惡蛇)’는 거품이 반 요순이나 끓어오를 만큼의 뜨거운 물과, 닿기만 해도 온몸이 불타고, 칼로 베이는 듯한 고통을 주는 큰 뱀이 들어있는 쇠솥이다.

이 철확처의 죄인들은 기나긴 시간 동안 고통을 겪다가 죄업이 소멸되는 어느 시점에 요행히 지옥을 벗어나기도 하지만, 전생의 업력으로 인해 300생 동안 냄새의 기운으로 살아가는 아귀로 태어나고, 그 다음 300생은 축생도에 태어나며, 그 다음엔 인간으로 태어나기는 하지만 늘 마음에 중심이 없이 욕망에 결박되어 고통을 받는 삶을 살게 된다고 한다. 다음 초열지옥의 여섯 번째 별처지옥인 혈하표처(血河漂處)는 “고행을 통해 죄를 소멸하고 천상에 태어나는 복을 받게 된다”고 주장하던 당시의 외도들을 겨냥한 지옥이라고 할 수 있다. 이들이 실천했던 고행들을 보면 “다리를 나무에 매달아 머리를 밑으로 두고, 칼로 코를 베며, 스스로 이마를 깨서 피를 내고, 그 피를 태우면서 하늘에 나기를 기도”하는 등의 방식이다. 이렇게 자해를 하면서까지 고행을 하다가 과다출혈 등으로 사망에까지 이르게 되면 천상에 나는 것이 아니라, 지옥에 떨어지게 된다고 보는 것이 불교의 시각이었다.

일단 이 혈하표처에 떨어진 죄인은 더 이상 스스로의 몸에 상처를 낼 필요가 없이 옥졸들에 의해 온몸이 쪼개지고, 갈라지는 고통을 당하게 되며,  피가 강처럼 흐르는 혈하(血河)에 떠다니면서 긴 시간 동안 자신의 죄업이 소멸되기를 기다려야 한다. 요행히 그 지옥을 벗어난 죄인들은 이후 500생 동안 연기를 먹고사는 아귀로, 다음 400생은 머리가 붉은 바닷새로 태어나게 되는데, 이는 당시 외도들이 머리를 짓찧는 고행을 하면서 늘 이마가 붉게 피로 물들어 있던 모습을 그런 이미지로 반영한 것이리라 생각해 본다.

김성순 서울대 종교문제연구소 연구원 shui1@naver.com
 

[1405호 / 2017년 8월 30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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