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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 편백나무숲의 김씨, 손씨, 무명씨

기자명 조정육

기억은 값비싼 비석이 아닌 행적으로 남는다

▲ 김동유, ‘Skul’, 2012, Oil on Canvas, 60x60cm : 우리 모두는 죽는다. 아무리 잘난 사람도 영원히 살 수는 없다. 똑같이 흙 속에 묻혀 지수화풍으로 분해될 것이다. 육신은 죽어서 사라지지만 살았을 때의 행적은 남겨진 자들의 기억으로 남는다. 높은 무덤을 썼다 하여 오래 기억되지는 않는다. 값비싼 비석을 썼다 하여 존경받지도 않는다. 오로지 그가 한 행적으로만 기억된다. 우리는 어떤 모습으로 기억될 것인가.

언니 집에서 지낸 열흘 중 가장 행복한 시간은 산책할 때였다. 언니 집 옆에는 낮은 산이 있었는데 나처럼 등산 싫어하는 사람도 새벽마다 발걸음을 할 정도로 만만했다. 산이라고 이름 붙이기에도 민망할 정도로 낮은 야산이었다. 산자락에는 곳곳에 나무 계단이 설치되어 있어 어디서든 쉽게 산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계단은 마치, 산이라고 부담 갖지 말고 들어와도 된다고 말하는 것 같았다. 나는 새벽마다 산으로 향했다. 비 오는 날에도 갔고 비가 오지 않는 날에도 갔다. 늦잠 자는 날에도 갔고 저녁밥을 먹은 후에도 갔다. 35도가 넘는 더위에 등산을 하려면 새벽녘과 저녁이 가장 적당하다. 산을 몇 바퀴 돌고 나서 언니 집에 돌아오면 산이 아니라 바다에 다녀온 사람처럼 땀으로 뒤범벅이 되었지만 에어컨 때문에 생긴 냉기가 단박에 사라지는 것 같아 좋았다.

언니집 근처의 편백나무숲 산책
비석들 놓인 묘지 눈에 들어와
상념 잠겨있다 떠오른 외할머니
어차피 사라질 재물 베풀었다면
기억 속에서 아름답게 남았을 것

산에 갈 때마다 항상 잊지 않고 들르는 장소가 있었다. 편백나무숲이었다. 편백나무숲은 내가 올라가는 산의 반대 측면에 있었다. 편백나무숲에 가기 위해서는 산꼭대기까지 설치된 나무계단을 걸어 올라간 후 고개를 넘어야 한다. 아무리 낮은 산이라도 산은 산이라 고개를 넘으려면 숨이 헉헉거렸는데 힘들어도 포기하지 않고 고개를 넘을 수 있었던 이유는 고개 너머에 편백나무숲이 있었기 때문이다. 편백나무숲은 산의 한쪽 면을 전부 차지하고 있었다. 다른 나무는 일체 보이지 않았고 오로지 편백나무만 심어져 있었다. 처음 편백나무를 심을 때 줄을 맞춰 심은 듯 나무 사이의 간격이 일정했다. 나무 사이에는 경사진 비탈길을 따라 사람들이 오르내릴 수 있도록 길이 나 있었다. 구불구불한 길을 따라 올라갔다 내려오기를 반복하다 보면 숲에 가득한 편백나무향이 온몸에 젖어 드는 것 같았다. 길 옆 움푹 파인 골짜기에는 간벌을 한 듯 잘려진 나무들이 놓여 있었다. 잘린 나무들은 축축한 습기에 젖어 더욱 짙은 향내를 풍겼다. 나무 사이를 오르내리며 한참을 걷다 보면 이제 막 떠오르기 시작한 아침햇살이 비스듬하게 내리쬐었다. 숲은 나무 사이를 파고드는 햇살 때문에 빛과 그늘이 뒤섞이면서 신비스러운 분위기가 연출되었다. 그 어떤 영상으로도 만들 수 없는 신비로움이었다.

처음에는 그저 편백나무향에 취해 주변 상황에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산책 사흘째 되는 날 비석이 눈에 들어왔다. 처음에는 돌덩어리인 줄 알았다. 그러나 단순히 자연에 놓인 돌로 보기에는 돌의 모양이 왠지 반듯반듯해 사람의 손길이 가 닿았음을 알 수 있었다. 비석은 세워진 것이 아니라 하늘을 향해 누워 있었고 비석 위로 낙엽과 나뭇가지가 뒤덮여 있어 자세히 보지 않으면 비석인 줄 알기 힘들었다. 누구 비석인지 궁금해 가까이 다가가보니 ‘孺人密陽孫○○氏之墓’라고 적혀 있었다. 여기에 밀양 손씨의 무덤이 있었던 모양이다. 그러고 보니 곳곳에 놓인 비석이 눈에 들어왔다. 어떤 비석은 땅에 묻혀 절반만 몸을 드러낸 것도 있었고 어떤 것은 윗부분이 깨져 끝부분만 바닥에 뒹구는 것도 있었다. 함녕김씨(咸寧金氏), 광산김씨(光山金氏) 등 글자가 또렷하게 보이는 비석도 있었지만 이름을 알 수 없는 파편이 대부분이었다. 여기가 공동묘지였을까. 여러 성씨의 비석이 뒤섞여 있는 것으로 봐서 한 문중의 묘지는 아니었던 것 같다. 모르긴 해도 이곳에 공원을 조성하면서 묘지는 이장을 하고 비석은 버리고 갔을 것이다. 무덤의 주인은 떠나가고 없는데 주인 없는 자리에서 주인의 흔적을 증명하고 있는 김씨, 손씨, 무명씨(無名氏)의 비석들. 비석의 주인들은 어떤 사람들이었을까. 어떤 삶을 살다 비석에 이름을 남기고 사라진 것일까. 그들은 이곳에 편백나무를 심은 사람들처럼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는 인생을 살았을까. 생각이 여기에 미치자 며칠 전에 찾아 간 외할머니 집이 떠올랐다.

광천동 우리 집을 확인한 후 외할머니 집을 찾아보기로 했다. 거의 기대는 하지 않았지만 이렇게 고색창연한 동네라면 어쩌면 외할머니 집도 그대로 있을 것 같았다. 더구나 외할머니 집은 그 동네에서도 유명한 대궐 같은 집이었다. 쉽게 허물 수 있는 집이 아니었다. 외할머니 집은 광천동 우리 집과 같은 동네에 있었다. 외갓집이 아니라 굳이 외할머니 집이라고 한 이유는 외할아버지가 일찍 돌아가셔서 어렸을 때부터 외할머니만 봤기 때문이다. 광주로 이사 오기 전, 산골 오지에 살던 내가 어쩌다 외할머니 집에 올 때면 집안에서 길을 잃어버릴 정도로 집이 넓고 으리으리했다. 대문을 들어서면 일하는 사람들이 살던 행랑채가 있었고 본채는 높은 기단석 위로 위용을 자랑하듯 늠름하게 세워져 있었다. 처음 본 사람이라면 단박에 기가 죽을 정도로 위압적인 건물이었다. 무엇보다 내 눈을 사로잡은 것은 마당의 화단이었다. 갖가지 꽃이 흐드러지게 핀 화단에는 벽돌로 만든 굴뚝이 높이 솟아 있었는데 굴뚝을 따라 주황색 꽃이 주렁주렁 열려 있었다. 그 꽃이 능소화라는 사실은 훨씬 나중에야 알았다. 그때부터 능소화는 외할머니 집의 꽃으로 기억되었고 부잣집에만 심는 꽃인 줄 알았다.

옛 기억을 더듬어 외할머니 집을 찾아가다가 이쯤 외할머니 집이 있었던 것 같아 고개를 두리번거리는데 낡은 기와집이 보였다. 낡았지만 당당한 풍채를 간직한 모습이 외할머니 집이었다. 아직도 그대로 있었다. 대문을 밀어보았다. 문이 열렸다. 역시 빈집이었다. 넓은 앞마당은 절반만 남아 있었고 능소화가 피었던 굴뚝은 보이지 않았다. 대신 길 쪽으로 2층 건물이 세워져 있었다. 안방에 들어가 봤다. 반질반질 윤이 나던 마루 위를 신발을 신고 올라가자니 기분이 묘했다. 빈집이라 어쩔 수 없이 신발을 신고 들어갔지만 한복을 입은 채 아랫목에 꼿꼿하게 앉아계시던 외할머니가 생각나 마음이 편치 않았다. 외할머니는 생전에 이 집을 지키지 못하고 광주에서도 한참 떨어진 시골집에서 생을 마감하셨다.

외할머니는 생전에 과자 하나를 내 손에 쥐여주지 않을 만큼 인색하셨다. 오로지 움켜쥐려고만 하고 풀어놓는 법이 없었다. 심지어는 내가 들고 간 요구르트조차도 나눠 주지 않고 혼자 드셨다. 대궐 같은 집을 지키지 못하고 궁벽한 시골집에서 돌아가신 외할머니를 떠올릴 때마다 항상 그런 생각을 했었다. 어차피 사라질 재물인데 다른 사람들에게 베풀고 사셨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그랬더라면 설령 무명씨로 세상을 떠났더라도 누군가의 기억 속에서는 아름답게 살아 있을 것이다. 이름조차 모르지만 이곳에 편백나무를 심은 사람들에게 고마움을 느끼는 것처럼 말이다. 김씨, 손씨, 무명씨의 비석들 사이를 걷는 동안 외할머니 생각이 떠나지를 않았다. 언젠가는 무명씨로 사라질 나 또한 잘 살아야겠다는 생각도 함께 들었다.

조정육 미술평론가 sixgardn@hanmail.net
 

[1405호 / 2017년 8월 30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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