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영역

본문영역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32. 선화공주의 설화와 진실

서동과의 로맨스에 깃든 사실과 진실 분별해야

▲ 그림=근호

삼국 시대에 한국인에게는 소리글자가 없었다. 그래서 소리글자의 필요성을 느낀 사람이 있었는데, 그가 원효대사와 요석공주의 아들이자 신라의 저명한 유학자였던 설총이다.

선화공주 설화, 자연과학에 의해
사실 드러나며 문화 아우라 상실
경전 보며 진실·사실 구별하면
진실 아는 인간으로 한단계 성숙

설총은 소리글자 자체를 만들지는 않았다. 그는 한자를 읽은 새로운 독법(讀法)을 창안하여 소리글자로서의 기능을 하도록 했을 뿐이다. 다만 이두(吏讀)라 불리는 그 방법으로는 우리말의 모든 음가(音價)를 나타내기에는 한계가 있었다. 이에 대한 완전한 해결은 세종대왕이 훈민정음을 창제할 때까지 기다려져야 했다.

설총이 창안한 이두는 한문을 읽는 토(吐)로써 활용되었다. “선화공주님은”이라는 어구가 있을 때 이중 ‘선화공주’는 한자로 쓸 수 있지만 ‘님은’은 한자로 쓸 수 없는 순우리말이다. 그래서 이두는 ‘님은’을 ‘주은(主隱)’이라고 적는다. 주(主)는 ‘님(임)금군’ 자이고, 은(隱)은 ‘숨을은’ 자인데, 님금군 자에서는 ‘님’을 취하고, 숨을은 자에서는 ‘은’을 취해서 읽는 방법이 이두인 것이다.

위에 인용한 선화공주 이야기를 모르는 한국인은 없을 것이다. 백제의 한 마을에 남편을 잃고 혼자 살아가는 여인이 있었다. 그녀의 집 앞에는 연못이 있었는데 어느 날 밤 그녀는 연못에서 나온 용과 잠자리를 가졌다. 그녀에게서 태어난 아이는 그녀와 함께 마를 팔며 생계를 이어갔다. 마를 팔았기 때문에 그는 사람들에게 서동(이두로 읽으면 맛동)이라 불렸다.

당시 신라 진평왕의 셋째 딸인 선화공주의 미모는 신라를 넘어 백제에까지 알려질 정도로 유명했다. 선화공주에 대한 소문을 듣자마자 서동은 곧바로 백제를 떠나 신라로 갔다. 신라의 서울인 계림에 도착한 그는 노래를 지어 퍼뜨렸다. 선화공주가 서동과 연애를 하고 있다는 내용의 노래였다. 그 노래가 퍼짐으로써 곤란한 처지에 놓인 진평왕은 선화공주를 궁에서 내보냈다.

궁을 나온 선화공주에게 서동이 다가갔다. 그는 공주에게 사랑을 고백하여  허락을 받았다. 부부가 된 뒤, 공주는 궁을 나올 때 어머니로부터 받은 황금을 꺼내며 이건 우리가 백 년 동안 살 수 있는 재산이라고 말했다. 그러자 서동은 껄껄 웃으며 그것이라면 자신에게 진흙처럼 많다고 했다. 자신이 어렸을 때 금오산에서 이걸 발견하여 잔뜩 모아 두었다는 것이었다.

서동은 그 황금을 금오산 미륵사 앞에 언덕처럼 쌓은 다음 지명법사의 신통력을 빌려 황금을 신라에 보냈고, 크게 놀란 진평왕은 백제에 감사의 편지를 보내며 서동을 사위로 인정했다. 이 일을 계기로 서동은 백제 사람들로부터 큰 명성을 얻어 백제의 임금이 되었다. 그가 백제의 서른 번째 왕인 무왕이다.

이것이 ‘삼국유사’가 전하는 내용인데, 2009년 1월 14일, 미륵사지 해체 과정에서 이 내용을 뒤집는 사건이 일어났다. 당시 문화재청 관계자들은 1400년의 세월을 견디지 못하고 기울어가는 석탑을 보존하기 위해 탑을 해체한 다음 다시 쌓기로 했었다. 그 과정에서 레이저 물리탐사를 통해 석탑 내부에 빈 공간이 있는 것이 발견되었다. 문화재 관계자들은 그 동공이 사리공(舍利孔)인지 아닌지 알고 싶었다.

오후 3시, 육중한 심주(心柱)가 들리자 빛이 번쩍 났다. 아랫돌 한가운데 네모난 사리공이 있었고, 거기에 금빛 유물들이 있었던 것이다. 사리를 비롯한 찬란한 유물 못지않게 중요한 것은 사리를 모신 인연을 적은 봉영기(奉迎記)였다.

그런데 봉영기의 내용이 그때까지 한국인이 알고 있었던 서동­선화공주 이야기와 달랐다. 봉영기 앞면에는 “우리 백제의 왕후는 좌평 사택적덕의 따님”이며, “재물을 희사하여 가람을 세우셨다”고 적혀 있었고, 뒷면에는 “대왕폐하”라고 적혀 있었는데, 대왕은 사후 추존되어 무왕이라 불린 백제왕의 생존 시 이름이었던 것이다.

미륵사지는 백제문화를 대표하는 문화재 중 하나이고, 미륵사 오층석탑은 백제의 문화재 가운데 가장 웅장한 건축물이다. 더하여 미륵사지와 오층석탑에는 서동­선화공주의 로맨스 때문에 멋진 아우라를 풍겨내고 있던 참이었다. 그런데 역사적 사실이 밝혀짐으로써 모든 멋진 아우라가 일시에 사라지게 되었다.

서동과 선화공주, 그리고 그녀의 두 언니인 선덕여왕과 진덕여왕은 그동안 여러 차례 시, 소설, 영화, TV 드라마의 주인공이 되어 한국인의 사랑을 받아 왔다. 서동이 태어난 곳이자 그가 황금을 쌓아 놓았었다는 미륵사지 또한 한국인의 문화적 자랑거리였다.

이에 힘입어 미륵사지의 고장인 익산시는 서동이 태어난 곳으로 추정되는 자리에 공원을 만들어 서동공원으로 명명하고, 쌀에는 서동미, 선화미라고 명명하여 고유 브랜드로 홍보했다. 또한 주요 도로명을 서동로, 선화로로 이름짓고, 해마다 서동축제를 열었다. 그런데 이 모든 자랑과 노력이 한순간에 환상에 기초된 허랑한 것이 되어버린 것이다.

사실을 밝히는 자연과학은 중요하다. 그런데 인간에게는 사실만으로는 밝힐 수 없는 부분이 있다. 생명 없는 물리체로서의 우주를 밝히기 위해서는 사실을 추구하면 된다. 그러나 생명체로써 사물을 인식·이해하며, 감정과 직관이 있는 인간이라는 또 다른 우주를 밝히기 위해서는 사실 이상의 무언가가 필요하다.

인간은 물리체인 한편 정신체이다. 물리체로서의 인간에게 정신체로서의 요소가 더해지면 사실은 진실로 승화된다. 문제는 서동­선화공주 설화에서처럼 때때로 진실이 사실과 배치된다는 점이다. 유물 발굴자들에 의해 서동과 선화공주의 로맨스가 허구라는 게 밝혀진 것처럼 말이다.

그러나 정신체로서 우리는 그 로맨스가 거품처럼 꺼져버리는 것을 안타깝게 여기며, 그것은 레이저 탐사로는 밝혀낼 수 없는 인간의 한 면이다. 우리의 마음에는 사실을 사실로써 인정하는 부분과 함께 그것을 진실로 바꿔 승화하고자 하는 기제가  있는 것이다.

사실과 진실은 팔만대장경 안에서도 수시로 교차된다. 부처님의 전생담 중에는 물리적 사실이라고 보기는 어려운 내용들이 많다. 하지만 그 전생담들이 적중하고자 한 목표점이 사실 너머의 진실이라는 점에서 그것은 거짓이 아니다. 온몸을 난도질당하고도 분노하지 않은 수행자 이야기는 그것이 사실이냐의 문제가 아니라 분노를 참아내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가의 문제인 것이다.

경전을 읽을 때 우리는 진실 부분과 사실 부분을 잘 분별해야 한다. 진실 부분을 읽으며 그것이 사실일 거라고 믿는 사람은 지성인이 아니다. 또한, 사실 부분에만 국집하여 진실을 읽어내지 못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물리체 이상으로서의 인간으로 성숙하기 위해 한 걸음 더 앞으로 나가야만 할 것이다.

김정빈 소설가·목포과학대교수 jeongbin22@hanmail.net
 

[1405호 / 2017년 8월 30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 이 기사를 응원해주세요 : 후원 ARS 060-707-1080, 한 통에 5000원

저작권자 © 불교언론 법보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광고문의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

하단영역

매체정보

  • 서울특별시 종로구 종로 19 르메이에르 종로타운 A동 1501호
  • 대표전화 : 02-725-7010
  • 팩스 : 02-725-7017
  • 법인명 : ㈜법보신문사
  • 제호 : 불교언론 법보신문
  • 등록번호 : 서울 다 07229
  • 등록일 : 2005-11-29
  • 발행일 : 2005-11-29
  • 발행인 : 이재형
  • 편집인 : 남수연
  • 청소년보호책임자 : 이재형
불교언론 법보신문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는 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