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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 한 법도 없거늘 무슨 전할 법이 있으랴

기자명 정운 스님

성인과 범부 나누는 분별심은 망념

원문: 배휴가 물었다.

어떤 법도 얻을 것 없기에
최상의 깨달음이라 일컬어
이심전심 이어지는 전법
얻었다 관념 없어야 가능

“망념이 자심(自心)을 가로막습니다. 잘 모르겠습니다. 어떻게 해야 망념을 없앨 수 있을까요?”
“망념을 일으키고 망념을 없애려는 것 또한 망념이다. 망념은 본래 근본이 없다. 분별해서 실제로 있다고 하는 것이다. 그대는 범부와 성인이라는 두 가지 경계를 염두하고 있는데, 이 두 경계의 알음알이가 없다면 자연스럽게 망념이 없어질 터인데 어찌하여 다시 헤아려 그것을 없애려고 하는가? 모두 털끝만큼이라도 의존해 집착하지 않아야 한다. 이것을 말해서 ‘내가 두 팔을 모두 버렸으니 반드시 부처를 이루리라’라는 것과 같은 것이다.” 
“이미 의지하고 집착할 것이 없다면, 마땅히 어떻게 서로 전합니까?”
“마음으로서 마음에 전한다.”
“만약 마음으로 서로 전한다면 어찌하여 마음이라는 것 또한 없다고 합니까?”
“일법도 얻을 것이 없다. 이것을 전심傳心이라고 한다. 만약 마음을 요달한다면, 곧 이 무심이 무법이다.”
“만약 무심이 무법이라고 한다면, 어떻게 전한다고 할 수 있습니까?”
선사가 답했다. “그대는 도를 마음에서 마음으로 전한다는 말을 듣고, 무언가 얻는 것이 있다고 생각하고 있다. 그러므로 조사가 말했다. ‘심성을 깨달았을 때, 부사의하다라고 하리라. 분명하고 분명해서 얻을 것도 없으니, 얻은 때라고 할지라도 알았다고 말할 수 없다.’ 이 진리를 그대에게 알게 할지라도 어찌 감당할 수 있겠는가?!”

해설: 원문에서 망념이라는 말은 수행에 방해되는 모든 생각을 지칭한다. 선에서는 수많은 생각들을 번뇌망상이나 객진이라고 표현한다. 원문에서는 성인과 범부를 나눠서 생각하는 이분법적 사고, 분별심을 망념이라고 보고 있다. 원문의 이심전심에 대해 보자. 석가모니 부처님부터 현대 선사에 이르기까지 이심전심(以心傳心)으로 법이 전해지고 있다. 그렇다면 의발(衣鉢)은 어떤 의미인가?! 선종에서는 가사와 발우는 상징적인 의미로 부처님에서 33조인 혜능까지 전해졌다고 한다. 그런데 법이 전해지는 의발의 징표가 전법게로 변하였다. 801년 ‘보림전’의 성립과 더불어 조사선[마조선]의 교단을 정립ㆍ확립하였다. 이심전심ㆍ교외별전이라고 하는 정법안장의 조사선 계보가 확립되었는데, 스승과 제자 간의 전법게(傳法偈)가 첨가되었다. 이후 스승에서 제자로 법이 전해지는데, 다툼의 분쟁이 될 것을 염려해 의발에서 전법게로 변천된 것이다. 

원문에서 ‘일법도 얻을 것도 없다. 이것을 말해서 전심(傳心)이라고 한다’는 부분을 보자. 이 내용은 ‘금강경’의 구절과 유사한 내용으로, 단적으로 조사선의 사상이다. 이 어록에서 줄곧 언급하는 내용이기도 하다. 어떤 작은 법도 얻을 것이 없음을 말한다. ‘금강경’ 22품에 ‘조그마한 법조차도 얻을 만한 것이 없으므로 최상의 깨달음[無有少法可得 是名阿?多羅三?三菩提]’이라고 하였다. 또한 ‘금강경’ 17품에 ‘실로 법이 없는 것을 말해서 최상의 깨달음[實無有法 得阿?多羅三?三菩提]’이라고 하였다. 이와 같이 얻을 것조차 없으며, 얻었다는 관념조차 없기 때문에 무법(無法)을 무심이라고 하는 것이다. ‘금강경’에서 청정한 무심의 상태, 곧 청정심이 무주심(無住心)이다. 이 무심이 바로 번뇌를 항복받은 상태인 무주상(無住相)이다.

2017년 8월 5일 강원도 신흥사에서 여름 하안거 해제법문이 있었다. 신흥사 조실 무산 스님이 상당에 올랐다. “나는 대중 여러분 한번 바라보고, 대중 여러분들은 나 한번 바라보면, 나는 내가 할 말을 다했고 여러분들은 오늘 들을 말을 다 들은 겁니다. 날씨도 덥고 하니 서로 한번 마주보고 그랬으면, 할 말 다하고 들을 말은 다 들은 겁니다. 오늘 법문은 이게 끝입니다.”

서로 보았으니, 법사는 설법을 다했고, 청중은 다 들은 것이다. 그런데 ‘유마경’에 의하면, 문수보살이 유마거사에게 불이법문을 물었을 때 유마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이에 비하면 무산 스님은 너무 법문을 길게 말씀하시어 청중을 당황케 한 것은 아닌가?!

결제기간 포살 법회 때, 10여년 만에 한 도반을 만났다. 스쳐 지나면서 이런 말을 하였다.

“잘 살고 있어 고마워요.”
“네.”

정운 스님 saribull@hanmail.net
 

[1405호 / 2017년 8월 30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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