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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 이윤주

기자명 김영욱

연지(蓮池)에서 다시 태어나다

▲ ‘작은 연못’, 비단에 채색, 25×38cm, 2017.

‘바람 자니 해맑게 물결도 없어/ 눈에 뵈는 형상들 빼곡도 하다./ 어이 굳이 많은 말 기다리리오./ 그저 봐도 뜻이 이미 넉넉한 것을.’ ‘우리 선시 삼백수’ 중에서.

연꽃 향 가득한 7월의 연못
작품 속에 시 한 구절 투영
공존하는 생명 그리며 관조

선시(禪詩) 한 수가 이야깃거리가 되었다. 무의혜심(無衣慧諶, 1178~1234)이 지은 ‘소지(小池·작은 못)’라는 시다. 나지막이 읊조린 선시의 여운이 가지 않은 채 작가는 말을 이어나갔다. 맑은 물에 비추는 형상은 무엇이던가. 한 그루의 버드나무인가, 푸른 하늘을 날고 있는 새인가, 아니면 물을 바라보며 번뇌하는 나의 모습인가.

시선은 늘 연못에 머물렀다. 늘 연못을 그리기 때문이다. 그림을 그리다보면 잔잔한 수면을 바라보게 된다. 문득 물 안에서 날아가는 한 마리의 새가 눈에 들어왔다. 바로 하늘을 올려다봤다. 그러자 물 안의 새가 날아가고 있었다. 회상에 잠긴 작가는 “한 순간 멍한 것이었다”며 함박웃음을 지었다. 하지만 앞서 읊조린 선시를 들었기에 그것이 관조였음을 알았다.

작가는 관조한다. 저 멀리 서 있는 나무를, 물 위로 날아가는 새를, 연못에 가득한 연꽃과 연잎을 그리면서 관조한다. 문득 자신을 자연에 동화시켰다. 나무도, 새도, 연꽃도, 연잎도. 화면 안에 담는 자연이 곧 자신이라고 말한다.

연꽃 향기 가득한 7월은 작가의 이상향이다. 그는 연꽃을 사랑한다. 연못을 그려온 시간동안 찾은 진정한 아름다움, 그 자체이다. 연꽃이 피면 자신의 자아도 함께 피어난다. 불가에서 연화화생(蓮花化生)이라 하지 않던가. 소멸된 생은 연꽃 속에서 다시 태어난다. 속세의 먼지로 뒤덮인 더러운 자신을 버리고 피어난 하얀 영혼을 가진 생명이다. 그 생명을 화면에 하나하나 담아온다. 바삐 움직이는 손길 하나하나에 행복과 즐거움이 서려있다.

당나라 시인 백거이(白居易)는 “어여쁜 소녀가 작은 배를 저어나가 하얀 연꽃을 따 훔쳐 돌아오다(小娃撑小艇 偸菜白蓮回)”라 하였다.

시 한 구절에 산수화 한 폭이 그려졌고, 작가의 산수화에 시 한 구절이 투영되었다. 화면에는 어떠한 선도 없다. 물통과 접시를 오간 붓으로부터 연잎의 향연이 벌여졌고, 드문드문 거친 붓놀림에 붉은 연꽃은 더욱 생기 머금고 아름다워졌다. 그리고 찰나의 흔적에서 자잘한 갈대가 자라났다.

‘바람 자니 해맑게 물결도 없어 눈에 뵈는 형상들 빼곡도 하다. 어이 굳이 많은 말 기다리리오. 그저 봐도 뜻이 이미 넉넉한 것을….’

무의혜심의 선시가 화면에 담겼다. 작가는 화면이 마르기를 기다리며 다시 연못을 바라본다. 그리고 관조하였다. 그 순간 나도 멍했다. 나도 관조한 것인가. 몇 분 뒤, 무더운 공기에 화면의 연잎과 연꽃의 물기가 증발했다. 작업을 마친 작가와 어둑해지는 풍경을 뒤로 하고 잠시 카페에 앉아 연못을 보았다. 그림 속 연꽃에서 ‘일촌단심(一寸丹心)’을 순간이나마 찾은 것 같았다.

좋은 그림을 보여주고, 좋은 이야기를 들려주고, 좋은 선시가 담긴 책을 선물해준 이윤주 작가에게 고마운 인사 전하며 글을 맺는다.

김영욱 한국전통문화대 강사 zodiacknight@hanmail.net
 

[1405호 / 2017년 8월 30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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