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촛불법회와 키치

보고 싶은 것만 보면 키치
조계종 현 상황이 ‘키치적’
‘사실’보다 ‘진실’ 우선돼야

법보신문사는 매월 한 차례 전 직원이 모여 책을 읽고 토론하는 독서모임을 10여년째 이어오고 있다. 이번 달은 광고인 박웅현씨가 2011년 쓴 ‘책은 도끼다’(북하우스)였다. 인문학으로 광고한다는 저자가 자신만의 독법으로 창의력과 감성을 깨운 책들에 대한 얘기를 엮어낸 책이다. 이날 독서모임에서 발제자 중 한 명이 주목한 것이 저자의 키치론이었다.

키치(Kitsch)는 흔히 저속한 작품이나 천박함을 일컫는다. 그런데 저자는 키치를 편집으로 정의했다. 자기가 해석하고 싶은 대로, 보고 싶은 대로 잘라서 편집하는 게 바로 ‘키치적’이라는 것이다. 이러한 키치는 삶의 전반에 나타나지만 이데올로기, 투쟁, 슬로건에서 유독 두드러진다고 말한다. 특히 시위 선동자들이 “~하지 않으면 인류가 망한다”, “해야만 한다”고 말하는 것도 일종의 키치로 분석한다. 독서모임 발제자는 저자의 의도를 ‘사람들은 키치적인 것을 좋아한다. 그러나 그것은 거짓된, 최소한 의도적으로 편집되고 취사된 진실의 편린일 뿐이다’라고 정리했다.

이날 발제자도 그렇겠지만 유독 ‘키치’라는 단어에 눈길이 닿은 것은 요즘 불교계 상황과 무관하지 않다. 보여주고 싶은 것만 보여주고, 보고 싶은 것만 보려는 키치적 현상이 넘쳐나기 때문이다. 조계종에서 징계를 받은 명진 스님이 “적폐 청산”을 외치며 무기한 단식에 들어가자 인연이 있었던 노동계, 학계, 종교계 인사들까지 덩달아 조계종 적폐 청산을 외치고 있다. 하지만 명진 스님 징계 이유 및 과정은 물론 ‘조계종’과 ‘조계사’조차 구분 못하고, 친분 때문에 기자회견에 참여했다는 이들도 있다고 하니 현 상황에 문제가 있음은 분명해 보인다.

지난 8월31일 서울 보신각에서 열린 촛불법회에서도 심각한 인권 침해가 벌어졌다. 주최 측이 쌍둥이 자식이 있다는 교구본사 주지스님의 얼굴과 함께 스님의 가족이라는 두 청년과 중년 여인의 얼굴을 모자이크 처리도 않은 채 버젓이 내걸었다. 뿐만 아니라 ‘종단적폐 5인’ ‘적폐부역 5인’으로 지목한 스님들과 재가불자의 맨 얼굴을 플래카드로 걸어놔 마치 구한말 을사오적을 떠올리도록 유도했다. 이들이 왜 종단적폐인지, 왜 적폐부역인지에 대한 설명은 찾아볼 수 없었다. 이러한 방식이 참가자들의 증오와 적개심을 불러일으키는 데 효과적일 수는 있다. 그렇지만 분명한 것은 인권침해와 명예훼손의 ‘불법(不法)’이 될 수 있을지언정 부처님의 가르침인 ‘불법(佛法)’과는 거리가 멀다는 사실이다.

▲ 이재형 국장

 

 

폐단은 지적되고 개선돼야 한다. 불교계라도 예외가 될 수 없다. 하지만 불교적 방식과 가치까지 묵살돼서는 안 된다. 자신과 견해가 다르면 “빨갱이” “종북” 등 용어를 내세워 상대를 낙인찍고 무력화시켰던 단체들이 옳지 못하다면, 누군가를 “적폐”로 규정해 모든 긍정성을 걷어내려는 것도 잘못은 마찬가지다. 불교인이라면 특정인 자체를 “적폐”라고 말하기보다 누군가의 어떤 행위가 “적폐”임을 명시하려 애써야 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열반경’의 장님 코끼리 만지기 비유에서 나오듯 장님들이 각각 만지고 있는 부위에 따라 코끼리가 기둥 같고, 부채 같고, 벽 같을 수는 있다. 그렇다고 코끼리를 기둥, 부채, 벽이라고 고집하는 순간 실상과는 멀어진다. 따라서 이해관계가 얽힌 당사자가 아니라면 몇몇 ‘사실’에만 매이지 말고, 또 다른 ‘사실’들에도 더 귀를 기울여야한다. 그럴 때 부분들에 대한 조합으로 코끼리의 온전한 모습을 그려내듯 여러 사실들을 통해 보다 진실에 가까이 다가설 수 있을 것이다.

이재형 mitra@beopbo.com

[1406호 / 2017년 9월 6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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