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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 스승을 찾아서

기자명 조정육

“사람과 만남은 그 자체가 법문이요 가르침”

▲ 김무호, ‘봄봄봄’, 70x85cm, 한지에 채색, 2017 : 세상의 정원에는 수많은 꽃이 피었다 진다. 그 꽃을 보며 수많은 화가들이 붓을 든다. 아무리 예쁜 꽃이 핀다 한들 쳐다보지 않으면 그만이다. 인생의 스승님은 세상 곳곳에 꽃처럼 피어 있다. 다만 내가 눈을 감고 있을 뿐이다. 오늘도 나는 스승님의 법문을 듣기 위해 세상 속으로 들어간다. 마트에서 지하철에서 때론 웃으며 때론 화를 내며 나에게 법문을 펼치는 스승님들.

사람과 사람과의 만남은 그 자체가 법문이고 가르침이다. 특히 한 분야에 일가를 이룬 작가와의 만남은 더욱 그렇다. 특별히 나를 위해 법문을 해 달라고 부탁한 적도 없는데 그분들은 마치 나의 심중을 꿰뚫는 듯 그때그때 나에게 꼭 필요한 법문을 들려준다. 어떤 작가는 그림으로, 어떤 작가는 인생이야기로, 어떤 무명의 작가는 숲속의 비석으로 누워 법문을 펼쳐준다. 굳이 법문이란 형식도 취하지 않으면서 진짜 법문을 들려주었으니 고수들이 따로 없다. 이런 고수들을 만날 수 있는 나는 진짜 운이 좋은 사람이다.

유난히 글쓰기 힘들어진 최근
타고난 재능 부족함만 탓하다
전통자수 작가 만나 대화 나눠
재능 부족이 아닌 관점이 문제
어떤 곳서도 스승 찾을 수 있어

얼마 전에 한국 전통자수 작가를 만났다. 자수는 실을 매개로 작업하는 예술로 우아한 색채와 장식적인 문양이 간결하면서도 세련된 구도 위에 펼쳐지는 세계다. 자수의 질감은 실의 꼬임과 굵기에 따라 결정된다. 숙련된 장인이 색색의 실을 꿰어 바느질한 옷에는 입체감과 원근감이 살아 있어 평면 회화에서는 느낄 수 없는 독특한 아름다움이 들어있다. 단아한 구도와 색감이 빚어낸 한국 전통자수는 동양자수의 백미라는 극찬까지 받는다. ‘천의무봉(天衣無縫)’이라는 표현도 자수에서 유래되었다. 선녀의 옷에는 바느질한 자리가 없다는 뜻이니 시나 문장이 꾸밈없이 자연스럽고 완벽할 때 칭찬하는 말이다. 바느질은 했는데 바느질한 흔적이 보이지 않는 옷이라면 이백(李白)이나 두보(杜甫) 혹은 왕유(王維)나 유종원(柳宗元)의 시 같은 옷이 천의무봉일 것이다. 그들 모두 글을 짓는 바느질 솜씨가 출중하여 천의무봉의 시를 쓴 사람들이다. 결국 타고난 재주가 모든 것을 결정한다.

나이 탓일까. 체력 탓일까. 올해 들어 유난히 글쓰기가 힘들었다. 도서관에서 책을 읽어도 글을 쓰고 싶다는 의욕은 일어나지 않았다. 한때는 머릿속에 떠오르는 생각을 손가락이 따라가지 못할 정도로 문장이 쏟아지던 때가 있었다. 그런데 최근에는 번쩍이는 영감은커녕 희미한 불빛조차 찾을 수가 없었다. 글을 쓴다는 예술가의 자긍심은 이미 바닥에 떨어진 지 오래되었고 마지못해 억지로 쥐어짜는 글을 쓰고 있다는 자괴감이 수시로 몰려왔다. 때로는 내가 글이라는 덫에 걸려 꼼짝달싹하지 못하고 있는 것 같아 측은한 생각까지 들었다. 이 나이가 되어서도 여전히 글쓰기가 힘들고 고통스럽다면 재능이 없는 것이다. 나의 길이 아니니 더 늙기 전에 결판을 내야겠다.

드디어 내가 하산할 때가 되었다고 생각하며 글쓰기 노동자의 한계를 절감하고 있을 때 그녀를 만났다. 언니처럼 마음을 털어놓아도 좋은 사이라 오늘은 내 신세한탄이나 실컷 늘어놔야겠다고 생각하고 만났다. 이런 내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그녀는 비가 쏟아지는 날씨에도 불구하고 굳이 만남의 장소에서 멀리 떨어진 맛집을 향해 차를 몰았다. 그곳에 도착해서도 아무 식당에나 들어가면 되는데 또 굳이 줄을 서서 기다렸다가 기어이 점찍어둔 식당으로 들어갔다. 그렇게 그녀가 내게 사 주고 싶다는 음식이 미역국이었다. 나는 그녀가 사 준 미역국을 맛있게 먹었다. 산후조리하듯 맛있게 먹었다. 순한 미역국이 목을 타고 넘어가자 에어컨 바람 때문에 움츠러들었던 몸이 순식간에 풀어졌다.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맺혀있던 긴장감도 동시에 풀어지는 듯했다. 작가는 태생적으로 직감력이 뛰어난 사람들이다. 그녀는 내가 한 번도 얘기한 적이 없는 나의 과거를 다 알고 있는 것 같았다. 나는 두 아들을 모두 여름에 낳았다. 온몸에 땀띠가 뒤덮일 정도로 더운 삼복더위에 출산을 했으니 몸조리를 제대로 했을 리 만무하다. 몸이 회복되기도 전에 반팔에 반바지를 입고 맨발로 걸어 다니며 여름을 보냈다. 평생 후회하지 말고 귀찮더라도 몸조리 잘하라는 어른들의 말을 귓전으로 흘려들었다. 어른들의 말을 무시한 댓가는 아주 컸다. 그날 이후 나는 지금까지 한여름에도 긴팔에 긴 바지만 입고 산다. 역시 인생의 무게가 실린 어른들의 말은 잘 들어야 한다.

미역국에 밥을 말아먹으면서 젊은 시절 어른들 말을 듣지 않고 평생 고생하고 있는 얘기를 반성 겸해서 털어놨는데 그녀가 느닷없이 자수 얘기를 꺼냈다. 앞뒤 정황으로 봐서는 그 시점에 꼭 자수 얘기를 해야 할 상황이 아니었는데 맥락 없이 갑자기 자수 얘기가 튀어나왔다. 이것이 예술가가 직감력이 뛰어나다고 생각한 이유다.

“자수를 놓는 사람들에게 똑같은 색의 실을 주고 똑같은 도안에 수를 놓으라고 해도 전부 다른 작품이 나와요. 어떤 작품은 아주 곱고 어떤 작품은 아주 거친 느낌이 들어요. 어떤 작품은 처음에 볼 때 감탄사가 저절로 나올 만큼 멋있었는데 보면 볼수록 싫증이 나는 경우가 있어요. 반대로 처음에 볼 때는 촌스럽고 밋밋하던 작품이 시간이 지날수록 마음을 끄는 경우도 있어요. 똑같은 재료인데 어쩌면 그렇게 다른 작품이 나오는지 꼭 사람을 보는 것 같다니까요. 정말 신기해요. 그것을 보면서 내린 결론은, 작품이란 작가가 살아오면서 생각하고 느끼고 고민한 인생 자체가 녹아 있는 것이지 결코 재주로 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어요.”

나는 미역국을 먹다 맥락 없이 튀어나온 그녀의 자수 이야기를 듣고 웃었다. 아하, 저것은 나를 위한 불보살님의 법문이구나. 책을 통해서 가르쳐도 반응이 신통찮으니까 사람의 몸을 빌려 직접 법문을 들려주시는구나. 내가 글을 쓰지 못하겠다고 생각한 것은 재주의 문제가 아니라 인생에 대한 고민이 진지하지 못해서 나온 결론이 아닌가. 이백이나 두보가 바느질한 천의무봉의 솜씨도 좋지만 촌스럽더라도 내 몸에 맞는 편안한 옷을 지어 입는 것도 좋다는 법문을 펼쳐주시는 거였다. 위장뿐만 아니라 마음까지 채워주는 법문을 들으니 행복했다. 감사하고 고마운 일이다.

한때는 나도 혜가가 달마를 만났듯 나의 인생을 송두리째 뒤흔들어놓을 범상치 않은 스승과의 만남을 동경했다. 그런데 지나놓고 보니 인생의 굽이굽이마다 항상 필요한 곳에는 스승님이 앉아계셨다. 다만 내가 눈이 어두워 스승의 존재를 알아보지 못했을 뿐이다. ‘세 사람이 길을 가면 반드시 나의 스승이 있다’고 했던 공자(孔子)의 가르침을 이제야 비로소 실감하고 있다. 사람과의 만남은 많은 여운을 남긴다. 헤어져 돌아설 때 충만한 만남도 있고 공허하다 못해 쓸쓸한 만남도 있다. 어느 경우든 내게 가르침을 주기 위한 만남이라 여긴다면 그 또한 나를 위해 나투신 불보살님을 친견하는 자리가 될 것이다.

조정육 미술평론가 sixgardn@hanmail.net
 

[1406호 / 2017년 9월 6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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