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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 어머니 마음으로 가슴 열기

기자명 재마 스님

고통 맞서는 분노 대신 연민으로 유대 맺으라

투명한 빛살과 파랗고 높은 하늘에 흩어지는 새털구름들의 무늬는 영락없이 가을인사를 전하는 것 같습니다. 청안하신지요? 지난 한 주 혹시 화가 났을 때 나무토막처럼 가만히 있으면서 분노의 노예에서 벗어나신 경험을 하셨는지요. 하셨다면 어떠셨는지요? ‘가만히 있기’란, 특히나 아무 생각 없이 가만히 있기란 쉽지 않은 일이지요. 저는 지난 주간에 어느 단체에서 운영하는 수련프로그램에 다녀왔는데요, 그곳은 바쁘게 살아가면서 몸과 마음이 생기를 잃어가고 있는 현대인들에게 필요한 정화식단과 명상프로그램으로 진행하고 있었습니다.

평화롭고 행복하길 기대하고
건강과 고통서 벗어남 바라나
원인을 심지 않아 현실은 반대
연민 가질 때 지혜·자비 발현

그곳에서 저는 명상시간 뿐 아니라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내내 가만히 있기를 실험해보았습니다. 그곳에서는 화가 날 일이 없을 것 같았지만 서로 모르는 여러 사람이 한 방을 쓰고, 낯선 곳에서 단체생활을 한다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기 때문에 작은 감정이라도 일어나는지 지켜보고 수행으로 삼고 싶었습니다. 싫어하는 마음이 일어날 때 반응을 하지 않고 가만히 있어보기, 이 상황을 알아차리지 못해 화로 발전한 것을 알았을 때 가만히 있어보기를 시도해보기로 했습니다. 그와 함께 무엇인가를 바라고 원하는 마음이 일어나거나, 그것을 알아차리지 못해 집착으로 이어지고, 미움으로 커졌을 때도 직접 행동을 취하지 않고 가만히 있어보는 것을 며칠간 실험해보기로 했습니다.

그곳에 스님은 저 혼자였고, 종교도 다양한 이들이 모였는데, 같은 방을 쓰는 한 분과 산책을 하면서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습니다. 그분은 노장사상과 장자를 공부한 분으로 처음엔 제 건강에 대해 가벼운 이야기를 하다가 점점 스님들과 불교를 강도 높게 비판하는 것이었습니다. 이야기의 요지는 불교는 시대의 변화와 요구에 대응하지 못하고 너무나 구태의연하며, 당신이 만났던 스님들 대부분은 사람들의 인식변화를 모르고 권위적인 분들이 너무 많았다는 것이었습니다.

평소에 저도 우리 절집 안에서 변화되기를 바라고 있던 것을 일반인에게서 듣는 것이 다소 불편하기 시작했습니다. 무엇보다 그분의 말씀하시는 태도가 제가 옆에 있다는 것을 잊어버린 듯, 격렬하게 학생을 다그치듯 하는 것 같아 못마땅해 지기 시작했습니다.

그 순간 저는 침묵하면서, 더 이상 그분의 말에 어떠한 대응이나 반응을 하지 않으면서 ‘가만히 있기’를 했습니다. 한동안 신랄하게 비판을 하던 그분은 제풀에 꺾여 점점 비판의 말을 거두고 걸었습니다. 그분이 말을 그친 이후 저는 이분과의 만남의 책임이 100% 내게 있다고 여기고, ‘미안합니다, 용서하세요, 고맙습니다, 사랑합니다.’ 만트라를 계속했습니다. 산책을 마칠 즈음 저는 조용히 그분께 “저희가 그렇게 밖에 살지 못해 죄송합니다.”라고 사과를 드렸습니다.

그리고 계속 그분을 불편해하려는 제 감정의 반응이 일어나려는 순간순간 ‘가만히 있기’를 계속 시도하면서, 그분도 행복을 원하고 고통을 싫어하는 평등한 존재임을 계속 떠올렸습니다. ‘그분이 고통에서 벗어나 행복하기를! 그분이 평화롭게 살고, 무언가에 지나치게 집착하거나 무언가를 지나치게 싫어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이 계속되었습니다.

그렇게 저녁이 지나 다음 날 아침, 그분은 제게 어제의 그 똑똑하고 분명한 목소리가 아닌 낮고 풀이 죽은 목소리로 “어제 너무 심한 말을 한 것 같아 죄송합니다.”하고 참회를 했습니다. 그분의 표정과 몸짓과 말을 들은 저는 온 국민의 뜨거운 마음이 촛불로 일어나 부정한 정권을 바꾼 승리가 떠올랐습니다. 끝없는 권력욕으로 치닫는 성냄과 어리석음이 ‘가만히 있기’가 된다면 그대로 지혜와 자비가 드러나겠지요.

우리는 늘 평화롭고 행복하기를 기대하고, 건강하고 고통에서 벗어나기를 바라지만 그런 원인을 심어 놓지 않은 탓에 현실은 그렇지 못합니다. 이럴 때 우리는 고통에 맞서는 분노를 일으키지 않고 연민(karuna-compassion)으로 유대를 맺을 수 있습니다. 모든 이가 고통에서 벗어나기를 바라는 어머니의 마음으로 우리의 가슴을 열면 어떨까요? 고맙습니다.

재마 스님 jeama3@naver.com
 

[1406호 / 2017년 9월 6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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