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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 수행자는 안팎의 반연된 일을 쉬는 무사인이 되어라

기자명 정운 스님

구함이 없는 것이 곧 도를 실천하는 길

원문 : 선사가 법상에 올라 법을 설하였다. 

해탈 추구하는 그 마음까지
내려놓는 무심이 바로 무구
마음이 장벽처럼 견고해야
수행의 길 끝까지 갈수 있어

“수많은 알음알이는 ‘구함이 없는 것’만 못하다. 도인이란 바로 무사인이다. 실로 여러가지로 잡다한 일에 마음이 반연되는 것이 없다. 더 이상 설할 것이 없으니, 무사히 돌아가라.”

해설 : 원문에서 “수많은 알음알이는 ‘구함이 없는 것’만 못하다”는 곧 알음알이나 지해로서 법을 구하지 말라는 의미이다. 그렇다면, ‘구함이 없는 것[無求]’이란 무엇을 뜻하는 것일까? 초조 달마 선사의 사상 중에서 무구에 대해 잘 설명해놓은 내용이 있다. ‘이입사행론’에 4행(四行)을 제시했는데, 4행은 대승에 뜻을 두고 도에 들어가기 위한 요문(要門)이다. 곧 보원행ㆍ수연행ㆍ무소구행ㆍ칭법행인데, 수행원리보다는 삶의 진실을 드러내고 있어 개인적으로 필자가 좋아한다. 이 가운데 세 번째가 무소구행(無所求行)이다.  

“세상 사람들이 처처(處處)에 욕심 부리는 것을 구(求)라고 한다. 지혜로운 사람은 참됨을 깨닫고, 진리로서 세속적인 것을 멀리하고, 마음을 무위(無爲)에 두며, 몸을 흐름에 맡긴다. 만유(萬有)는 공(空)이니, 구하는 것이 없는 것이 낙(樂)이다. … 그러니 모든 것에 생각을 쉬고 구하지 말라. 경전에 ‘구함이 있으면 고통이요, 구함이 없으면 낙이다.’라고 하였다. 구함이 없는 것이 바로 도를 실천하는 길임을 분명히 알지니라.” -‘경덕전등록’ 황벽보다 300여년 앞서 살다간 달마의 설법이 ‘전심법요’보다 논리적으로 명쾌하게 느껴진다. 황벽이나 달마가 말하는 ‘구함’이라는 것은 바로 과도한 집착심ㆍ분별심, 평상심에 머물러 있지 못한 인위적인 마음이다. 곧 무구는 공사상, 반야사상이 담겨 있는 대승심을 의미한다. 무구(無求)란 본위 그대로인 청정심 자체로 남아 있는 상태이다. 필자가 몇 번 거듭하지만 ‘금강경’에서 말하는 무주상(無住相), 무심이다. 

구심훨즉무사(求心歇卽無事)라고, 구하려는 마음을 쉬는 것이 곧 일이 없는 것이다. 구하려고 하면 할수록 점점 더 멀어지는 법이다. 그러니 번뇌를 배척하고 반드시 깨달아야 한다는 집착도 갖지 말 것이며, 해탈을 추구하려는 욕심도 내려놓아야 하는 무심(無心)이 무구이다.   

‘유마경’에서 ‘법(法)을 구하는 사람은 일체법에 무언가 구하지 말라’고 하였고, 마조 선사도 ‘무릇 법을 구하는 자는 구하는 바가 있어서는 안된다. 마음 밖에 법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며, 부처를 떠나 따로 마음이 있는 것도 아니다”라고 했으며, 임제 선사는 ‘구하는 마음이 없는 것이 무사(無事)이다’라고 하였다. 그래서 임제는 아무것도 구하지 않는 사람을 ‘무사인(無事人)’ ‘무사시귀인(無事是貴人)’이라고 명명했다. 무사인을 임제 선사는 또 무위진인(無位眞人)이라고 하였다. 무위진인이란 어떤 계위에도 속하지 않으며 분별심이나 차별의 위상(位相)이 없는 참사람으로 인간 누구에게나 본래부터 내재되어 있는 절대 주체인 것이다.

원문에서 ‘실로 여러 가지로 잡다한 일에 마음이 반연되는 것이 없다’는 부분을 보자. 여기서는 평상무사인으로 어떤 망상분별심이 없는 경지를 말한다. 하지만 필자는 이 부분을 보면서 좀 더 현실적인 내용이 뇌리에 스친다. 

2조 혜가가 달마 선사에게 물었다.

“스님, 어떻게 공부해야 도를 얻을 수 있습니까?”
“밖으로 모든 인연을 쉬고, 안으로 헐떡거리는 마음이 없으며(外息諸緣 內心無喘)
마음이 장벽과 같아야만 도에 들어갈 수 있다(心如?壁 可以入道).”-‘속고승전’

달마는 ‘수행자는 자고로 마음 안팎으로 장벽과 같아야 한다’는 것이다. 스님들이 너무 많은 인연이나 일을 만들면 공부이든 수행이든 부작용이 생기기 마련이다. 근자에 불자가 300만 명이 감소했다. 더불어 출가자도 점점 감소하고 있는 상황이다. 이런데도 승려들 중 일부는 수행 길보다는 다른 반연된 일에 얽혀있는 것 같다. 이런 때 일수록 수행자는 수행자의 본분에서 어리석을 정도로 우직하게 한 길로 나아가는 직심(直心)이 필요하다고 본다.

정운 스님 saribull@hanmail.net
 

[1406호 / 2017년 9월 6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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