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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 우팔리와 계율-상

기자명 이제열

“두 비구 죄를 더 무겁게 하지 마십시오”

“부처님께서 우팔리에게 이르셨다. ‘그대가 유마힐의 병문안을 가라.’ 우팔리가 부처님께 사뢰었다. ‘세존이시여 저 역시 그의 병을 위문할 수 없습니다. 그 까닭은 어느 때 두 비구가 계율을 범하고는 저에게 찾아와 부끄러워하며 우리의 의혹과 뉘우침을 풀어 허물을 면하게 해달라고 하였습니다. 제가 그들의 요구대로 법을 설하고 있었는데 유마힐이 나타나 이렇게 말했습니다.’ ‘우팔리님, 두 사람의 죄를 더욱 무겁게 하지 마시오. 죄의 본성이란 안에도 밖에도 중간에도 있는 것이 아닙니다. 마음이 더러우면 중생이 더럽고 마음이 깨끗하면 중생도 깨끗하니 마음 역시 안에도 밖에도 중간에도 있는 것이 아닙니다. 죄도 또한 그러하고 나아가 일체법도 또한 그러하여 진여의 바탕을 떠나지 않았습니다.’”

두 신참 비구가 우팔리 찾아와
계율 어겼다며 부끄러운 고백
우바리 ‘과보 있다’ 했겠지만
유마거사가 죄의 공함 일깨워

우팔리존자는 지계제일(持戒第一)의 제자이다. 천민 출신으로 부처님이 고향 카필라를 방문했을 때에 부처님을 뵙고 출가하였다. 부처님께서 열반에 드신 후 경전 결집이 이루어질 당시 율을 암송한 인물이기도 하다. 그는 부처님이 제정하신 계와 율을 모두 기억하고 철저히 수호하였기 때문에 신참비구들의 생활에도 큰 역할을 하였다.

이런 그에게 어느 날 갓 출가한 신참비구들이 찾아왔다. 그들은 우팔리존자에게 자신들은 어젯밤 부처님이 금하신 계율을 깨뜨렸다고 말하였다. 그 계율 내용은 살생계(殺生戒)와 음계(淫戒)였다고 한다. 살생계와 음계는 비구가 지켜야 할 계율 가운데에도 매우 중요한 계로 이를 범하면 승단으로부터 추방당하여 비구생활을 포기해야 한다. 두 신참비구는 이러한 중한 죄를 범하고 스스로 괴로워한 나머지 이를 해결하고자 우팔리존자를 찾아온 것이다. 그런데 우팔리존자는 이렇게 양심의 가책을 느끼며 찾아온 그들에게 살생과 음행의 엄중함과 함께 그 계를 범했을 때에 받게 되는 과보를 설명하였다.

필자는 우팔리존자가 틀림없이 두 신참비구들에게 출가 생활의 포기를 종용했을 거라고 생각된다. 소승불교의 특징은 인간이 죄를 지었을 때에 죄를 면할 수 있는 길이 없다. 아라한이나 부처가 되기 전까지는 누구라도 자신이 지은 죄는 다 받아야만 한다. 이와 같은 교리에 비추어 본다면 우팔리존자가 두 비구들에게 해줄 수 있는 말은 결코 희망적이지 않다. 따라서 두 비구는 우팔리존자의 답변을 듣고 마음이 더욱 무거워졌을 것이다. 범계의 죄를 해결할 수 있는 방도는 없고, 오로지 범계에 의한 인과만 기다리고 있다는 얘기를 들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때 유마거사라는 구원자가 나타났다. 유마거사는 먼저 두 비구들이 들을 수 있도록 우팔리존자를 향해 말한다. 죄는 본래 실체가 없는 공한 존재이니 사람이 죄에 묶이지 않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다. 만약 사람이 죄를 지어 그 죄가 어디엔가 머무르고 있다면 그 죄를 찾아 볼 수 있어야 하고 있는 장소를 알 수 있어야 한다. 죄는 어디 있는가? 안에 속하는 육근(六根)에 있는가? 밖에 속하는 육경(六境)에 있는가? 아니면 중간에 속하는 육식(六識)에 있는가? 그도 저도 아니면 허공에 있는가? 죄는 찾아보면 마땅히 머무는 장소가 없다. 죄는 근원과 방소가 없으므로 끝내 얻지 못하며 드러내지 못한다.

다만 죄가 있다면 그 죄를 지었다고 지금 뉘우치고 있는 두 비구들의 마음에 존재한다. 죄는 마음을 따라 일어나고 마음에 남아 있으며 마음에 의해 괴로워한다. 그러나 죄의 주체라 할 수 있는 마음 또한 실체화시켜서는 안 된다.

마음이라는 것도 죄처럼 그 본성이 공하여 실체가 없기 때문이다. 만약 마음이 실체가 없는 공성을 깨닫게 되면 죄도 또한 실체가 없는 공성임을 알게 되어 죄로부터 벗어나 자유를 얻는다. 부처님은 죄와 그 과보를 설하셨으나 필경 죄와 과보가 공하다고 가르치셨던 것이다. 두 비구가 이미 죄를 죄로 알고 참회를 했다면 그 죄의 본성이 공하여 이제는 그 어디에도 죄가 남아있지 않다고 가르쳐야 한다. 죄와 그에 따르는 과보를 설하면서도 이들의 본성이 공함을 드러내는 유마거사의 설법은 사람이 죄로부터 자유로워질 수 있는 분명한 길을 제시하고 있다.

이제열 불교경전연구원장 yoomalee@hanmail.net
 

[1406호 / 2017년 9월 6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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