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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공간이라는 관념

기자명 원빈 스님
  • 세심청심
  • 입력 2017.09.05 15:57
  • 수정 2017.09.05 15:58
  • 댓글 1

심리적 거리 기준해 강의 수락
부처님 유행설법 공부하며 극복
한계넘으면 무한법계 경험 가능

몇 년 전 강원도에 살고 있는 도반의 말이 기억납니다.

"스님, 강원도에서 차타고 30분 거리는 그냥 마실 가는 거예요."

당시 전 30분 이상의 거리면 먼 곳이라고 생각하던 시기였기에 그 말이 참 이상하게 들렸죠. 제가 어렸을 적 가장 멀리 이동하는 곳 중 한 곳은 고양시에서 천안이었습니다. 천안에 큰 집이 있었기에 고양시에서 버스를 타고 서울역까지 1시간, 그리고 서울역에서 천안역까지 기차를 타고 1시간 정도의 거리였죠. 그리고 그곳 천안은 제게 너무나 먼 거리였습니다.

이런 성향은 출가해서도 마찬가지였기에 조금만 멀어도 가고 싶지 않아했고, 절에 가만히 있는 것을 가장 좋아했던 것 같습니다. 가까운 것이 좋다는 관념을 가지고 살았던 것이죠. 어느 날 청주 용화사의 충북불교대학에서 강의 요청이 왔습니다. 그렇게 고양시에서 청주까지 2시간 30분 거리 왕복이 시작되었죠. 일 년에 10주 정도의 기간이지만 이 기간만큼은 2시간이 넘는 시간을 차를 타고 이동해야만 했던 것이죠. 기본적으로 차타는 것을 힘들어하기에 2년간 무척이나 어려운 시간을 보냈습니다.

그러던 중 <법구경 이야기>를 강의하는 시기에 부처님의 유행설법을 공부하며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부처님이 45년간 유행하신 것에 비하면 2시간 30분은 먼 거리가 아니구나!'

그리고 그 날부터 제게 청주는 멀지 않은 곳이 되었습니다. 생각이 바뀐 것과 더불어 장거리 운행에 몸까지 익숙해지니 청주까지는 가볍게 다녀올 수 있는 거리가 된 것이죠. 그렇게 몇 년간 제게 가까운 곳의 제한거리는 차를 타고 2시간 30분이 되었습니다. 이 기준을 가지고 있는 동안 강의요청이 올 때 이 심리적 한계거리를 기준으로 강의 요청을 승낙하는 현상이 나타나기 시작했습니다. 예를 들어 부산에서 강의 요청이 오면 너무 멀어서 거절하고, 수원에서 강의 요청이 오면 승낙하는 것이죠. 이유는 멀고 가깝다는 것 때문이었습니다.

작년 겨울 미얀마 명상센터에서 시간을 보내던 중 문득 이런 앎이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움직인다는 것은 착각이다.'

그리고 공부 점검을 위해 한국행 비행기를 타고, 장거리 운전을 하고, 다시 또 비행기를 타는 등 계속되는 이동을 하면서 이 앎은 명확한 지각으로 바뀌기 시작했죠.

'움직임은 실제가 아닌 경험일 뿐이다.'

이전에는 이곳에서 저곳으로 이동하는 것이 실제로 인식되었다면 이런 경험이 있은 후에는 모든 경계가 다가오는 것으로 인식되기 시작한 것이죠. 부동(不動), 즉 움직임이 없다는 것에 대한 감을 잡기 시작한 후 다시 한 번 제 인식상의 가까운 곳은 변화가 일어났습니다.

▲ 원빈 스님

 

 

가까운 곳과 먼 곳이라는 객관적으로 정해진 기준은 없습니다. 사람마다 그 거리를 해석해 받아들이는 방식이 모두 다르니까요. 누군가는 심리적 한계거리가 짧고, 누군가는 긴 것인데 이것은 스스로의 경험과 현재의 선택에 의해 결정되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이 한계거리는 그 사람의 세계관의 넓이와도 연결됩니다.

매일매일 사시불공 시간에 보례진언을 염불했지만 무한한 법계는커녕 2시간의 한계에 갇혀 있던 제 심리적 한계선을 본다면 제게 무한한 법계는 2시간 거리의 그곳 아니었을까요? 방 구석만한 심리적 한계를 가지고 있는 사람과 온 법계를 심리적 한계로 가지고 있는 사람, 과연 누가 더 자유로울까요? 한계에 가로막혀 안 되는 것들이 참 많았던 과거를 버리고 보례진언에 어울리는 세계관을 가질 수 있도록 모든 한계라는 상을 뛰어넘기를 발원해봅니다.

원빈 스님 행복명상 지도법사 cckensin@hanmail.net
 

[1406호 / 2017년 9월 6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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