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영역

본문영역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청와대 불상이 가야할 곳

문 대통령 지시에 논의 시작
당장 경주 이전은 쉽지 않아
불상 종교성 배제해선 안돼

지난 8월말, 문재인 대통령이 청와대 안에 모셔진 석조여래좌상을 보고 “경주 남산의 불상이나 그 지역 암석과 재질이 같은지, 불상 제작기법은 어떤 차이가 있는 등을 모두 조사하라”고 지시했다는 보도가 나왔다. 청와대도 조사 결과에 따라 경주에 있던 것이 맞으면 문화재청과 협의를 거쳐 원위치에 돌려놓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대체적으로 청와대 불상의 환지본처 소식을 반기는 분위기다. 이 불상에는 단순한 문화재 차원을 넘어 나라 잃은 설움이 깊이 배어있기 때문이다. 통일신라시대 만들어져 ‘미남불’이라는 호칭을 얻은 이 불상이 경주를 떠난 것은 일제강점기인 1913년 무렵이다. 데라우치 조선총독이 경주를 방문하던 중 경주금융조합 이사였던 오히라(小平)의 집에 머무를 때였다. 눈치 빠른 오히라는 데라우치가 자기 집 정원 불상에 깊은 관심을 보이는 것을 알았고, 곧바로 그 불상을 총독관저로 보냈다. 이후 이 불상은 1927년 경복궁에 새 총독관저가 신축됨에 따라 그곳으로 옮겨졌고, 지금껏 청와대 안에 자리 잡게 됐다.

청와대 불상이 관심사로 떠오른 것이 처음은 아니다. 개신교 장로였던 김영삼 대통령의 문민정부 시절에 삼풍백화점과 성수대교 붕괴, 서해 페리호 침몰, 아시아나 항공기 추락, 구포역 열차전복사건 등이 잇따르면서 괴이한 소문이 나돌았다. 청와대 숲속 침류각 뒤 샘터에 모셔진 불상이 방치되고 있으니, 나라의 우환을 막기 위해서라도 하루빨리 불상을 제자리에 돌려놔야 한다는 내용이었다. 이에 청와대가 이례적으로 불상을 언론에 공개하고, 스님들 친견도 허용했다. 이때부터 청와대 불상은 미남불이라는 수식어와 더불어 영험하다는 얘기도 함께 회자됐다.

대통령의 청와대 불상 조사 지시 소식이 전해지자 대구·경북지역 시민사회단체들은 “만시지탄이 있지만 악명 높은 데라우치 일제 총독에 의해 서울로 옮겨져 105년 동안 청와대 경내에 있던 석조여래좌상을 ‘경주로 원위치 하라’고 지시한 문 대통령의 결단을 높이 평가한다”고 환영했다.

그러나 일반 여론과는 달리 청와대 불상이 ‘경주로 원위치’하기에는 난관이 적지 않다. 문화재가 원래 있던 자리로 돌아가는 것은 당연하지만 청와대 불상의 경우 ‘원위치’가 월성군 내동면 도지리의 유덕사지인지, 경주 도동동의 이거사지인지도 명확히 밝혀지지 않았다. 설령 요즘 유력지로 주목받고 있는 이거사지가 청와대 불상의 ‘원위치’가 맞더라도 현재 이곳은 경작지이며, 석재와 탑재들이 방치된 상황이다. 이런 곳에 당장 청와대 불상을 모시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 이재형 국장

 

일각의 주장처럼 경주국립박물관으로 옮긴다는 것도 ‘원위치’와는 거리가 있다. 박물관 내부가 불상이 있던 제자리가 아닐뿐더러 그나마 소수라도 경배의 대상에서 종교성과는 동떨어진 볼거리로 전락될 수 있기 때문이다. 조계종이 청와대와 문화재청 등 관계기관에 ‘일단 청와대에 모시면서 일제 때 제자리를 떠난 석조문화재를 폭넓게 조사하고 그것을 토대로 옮길 곳을 선정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의견을 전달할 방침인 것도 이 때문이다.

어떤 문화재든 원위치에서 보존되는 것이 최선이다. 특히 불상의 경우 당시 조성했던 이들의 의도와 염원을 살리는 것이 바람직하다. 그것이 원위치의 참된 의미다. 청와대 불상의 이전을 잠시 늦추더라도 지금은 원위치에 대한 꼼꼼한 논의와 준비과정이 더 필요한 때다.
 
이재형 mitra@beopbo.com
 

[1407호 / 2017년 9월 13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 이 기사를 응원해주세요 : 후원 ARS 060-707-1080, 한 통에 5000원

저작권자 © 불교언론 법보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광고문의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

하단영역

매체정보

  • 서울특별시 종로구 종로 19 르메이에르 종로타운 A동 1501호
  • 대표전화 : 02-725-7010
  • 팩스 : 02-725-7017
  • 법인명 : ㈜법보신문사
  • 제호 : 불교언론 법보신문
  • 등록번호 : 서울 다 07229
  • 등록일 : 2005-11-29
  • 발행일 : 2005-11-29
  • 발행인 : 이재형
  • 편집인 : 남수연
  • 청소년보호책임자 : 이재형
불교언론 법보신문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는 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