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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 자기에의 응시

기자명 김용규

스스로를 바라볼 수 있는 게 인간의 힘

숲에 기대어 사는 기쁨 중 하나는 ‘저 스스로(自) 그러한(然) 것’들을 가만가만 바라보고 느끼는 것입니다, 내 자신에게 찾아오는 삶의 시간이 내 밖으로 흐르는 시간들과 흐름을 같이할 수 있도록 조정해 나가는 즐거움이 있습니다.

조화 벗어난 삶 결국 대가 치러
미국 강타한 태풍 부조화 결과
인간만 자신 바라볼 수 있지만
능력 사용하지 않아 자연 파괴

그것이 생명과 그 생명을 품고 있는 우주 질서와의 ‘조화(調和)’일 것입니다. 조화에서 벗어난 모든 삶은 어떤 형태로든 그 대가를 치르도록 돼 있는 것이 ‘자연의 법(法)’입니다. 연달아 미국을 강타하고 있는 상상하기 어려운 속도의 강력한 태풍 소식을 들으셨지요? 얼마 전 텍사스를 강타한 허리케인 ‘하비’의 시속이 200km 전후였다고 하는데, 카리브섬을 강타하고 쿠바를 거쳐 미국 플로리다 쪽으로 진행할 것으로 예상되는 새로운 허리케인 ‘어마’는 그 바람의 속도가 시속 300km에 가깝다고 합니다. 뒤이어 지중해에서 또 다른 허리케인이 생겨나고 있다는 소식도 이어지고 있습니다. 그 무섭고 안타까운 소식이 지구 저편에서 연일 들려오고 있습니다. 상상할 수 없는 속력을 가진 바람의 생성과 운행, 안타깝게도 그것 역시 문명과 자연의 부조화가 빚어내고 있는 현상임을 우리는 읽어내야 합니다.

우리가 겪는 크고 작은 부조화, 그 조화롭지 못한 삶의 근본 원인은 어디에 있을까요? 나는 그것을 ‘자기에의 응시(凝視)’가 부족해서라고 보고 있습니다. 다른 생명과 달리 인간이 가진 위대한 능력 중 하나가 ‘내가 생각하고 있다는 사실을 생각하는 능력’일 것입니다.

다른 생명과 달리 인간만이 그런 능력을 갖춘 까닭을 뇌 과학자들은 인간이 가진 특별한 뇌의 특성에서 찾습니다. 인간이 지닌 특별한 지적 능력과 마음은 뇌의 작용에서 결정되는데, 크게 세 부분으로 구성돼 있다고 합니다. 먼저 ‘뇌간(腦幹)’입니다. 뇌간은 척추에 붙어 있는데, 흔히 이것을 파충류의 뇌라고도 부릅니다. 이 부분은 소위 생존을 위해 꼭 필요한 4F를 주로 담당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4F란 먹고(feeding), 싸우고(fighting), 도망치고(fleeing), 그리고 생식(fuck)하는 것을 말합니다. 뇌의 이 부분은 배우거나 생각하지 않습니다.

다음으로 변연계입니다. 이 부분을 포유류의 뇌라고도 하는데, 4F를 넘어 학습과 기억이 더해지는 부분입니다. 그리고 이 영역에서 감정이 다뤄집니다. 분노에 사로잡히거나 사랑에 빠져 허우적대는 경우 등이 모두 변연계에 우리가 포획되었을 때라는 것이지요.

마지막으로 위의 뇌간이나 변연계 외에 원숭이, 침팬지, 그리고 호모 속의 동물에게 더해진 뇌 부분이 있으니 그것을 ‘신피질’ 영역이라고 합니다. 신피질은 무언가를 이해하고 계획하고 추진하거나 유보하는 힘을 발휘하게 하는 영역입니다. 재미있는 것은 ‘작은 원숭이’라는 뜻을 가진 ‘오스트랄로피테쿠스’와 직립보행의 특성과 함께 ‘호모’로 불리기 시작한 ‘호모 에렉투스’의 뇌 용량을 비교하면 신피질의 크기가 불과 4% 밖에 차이나지 않는다고 합니다. 인간은 76%, 침팬지는 72%. 바로 이 4%의 크기 차를 통해 인간은 인간만 할 수 있는 위대한 능력을 발휘하고 있다는 것이지요.

오랑우탄은 화가 나면 화를 즉각 표현합니다. 또한 수캐는 욕정이 발동하면 그것을 해소하기 위해 전전긍긍합니다. 하지만 인간은 화가 나는 자신을, 솟구쳐 오르는 욕망을 지긋이 응시할 수 있는 힘을 가졌습니다.

볕 좋은 자리에 사는 벚나무가 오래토록 해를 누리고 가만히 응시하다가 벌써 단풍을 만드는 것을 보며 이 가을 입구에서 나는 나와 인류 문명을 생각합니다. 나무들도 볕을 응시하다가 그 길이의 변화를 읽고 생장의 욕망을 거두고 있는데, 나는 그리고 우리는 파충류나 오랑우탄을 넘어섰는가? 자기에의 응시, 인간만 지닌 그 숭고한 힘을 발휘하는 날이 얼마나 되는가?

김용규 숲철학자 happyforest@empas.com
 

[1407호 / 2017년 9월 13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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