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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 두려움이 없는 마음

자기를 반석과 같이 지탱해주는 정체성은 없다

불고수보리 여시여시. 약부유인 득문시경 불경불포불외 당지시인 심위희유.

사람은 누구나 정체성에 의지
‘자기’ 없다는 건 엄청난 공포
금강경 듣고도 두려움 없으면
범 모르는 하룻강아지 불과

부처님이 수보리에게 말씀하셨다. 네 말이 맞고 또 맞다. 만약 어떤 사람이 이 경전을 얻어 듣고도, 놀라고 무서워하고 두려워하지 않으면 참으로 보기 드문 사람이다.

공포는 가장 근원적인 감정이다. 팔정 희로애락애오욕구(喜怒哀樂愛惡慾懼) 중 하나이다. 생명체의 최고의 목적은 생존이다. 그래서 생존에 위협을 당하면 공포를 느낀다. 맹수·원수·기아·지진·홍수·자연재해 등 외적인 위협이 없어도 공포를 느끼는 수가 있다. 수행자가 지금껏 자기라고 알고 있던 것을 잃어버릴 때 엄청난 공포가 찾아온다. 사람들은 무의식적으로 ‘자기는 누구’라는 정체성에 의지하고 정체성을 지킨다. 유식(唯識)에서는 알라야식을 정체성으로 본다. 현대적으로는 정보(지식)와 경험과 소프트웨어이다. 기억이란 뇌신경망에 일어나는 변형이라는 점에서 커넥톰(connectome 뇌신경망)이기도 하다. 이 점은 CD나 USB에 일어나는 변형이 정보라는 사실에 착안하면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수행을 통해서, 어느 순간 자기라고 알고 있던 것이 사실은 ‘덧붙여진 것’이라는 걸 보는 순간, 엄청난 공포가 밀려온다.

‘금강경’은 무아(無我)를 설한다. 무아가 바로 벽·지붕·바닥을 사라지게 하는 역할을 한다. 이런 ‘금강경’의 가르침을 듣고도 공포와 두려움이 생기지 않으면, 이런 사람은 보기 드문 사람이다.

하룻강아지처럼 모르고 범을 무서워하지 않을 수는 있으나, 범의 번개 같은 앞발질 한 번에 경추가 부러지고 날카로운 송곳니질 한 번에 경동맥이 끊어짐을 알고도 안 무서워하기는 힘들다. 위험을 인식하고도 무서워하지 않기는 이처럼 힘든 일이다. 자아가 텅 비어있음을 알고도 두려워하지 않기는 참으로 힘든 일이다.

‘자기를 반석과 같이 지탱해주던 정체성이 사실은 없다’는 걸 깨달을 때, 공포를 느끼지 않기는 어려운 일이다. ‘나와 남을 가르는 의식’을 지닌 중생에게 (나라는) 정체성의 상실은 곧 죽음이기 때문이다.

나를 구성하는 수많은 경험과 기억과 관계를 제외하면 과연 남는 것이 있을까? 나라고 할 만한 것이 남아 있을까? 35억 년을 통해, 수많은 전생을 통해, 획득되고 축적되어 켜켜이 단단하게 박혀있는 본능·감각·지각·인식·기억·소프트웨어가 다 사라져도 남는 게 있을까? 단세포 생물 아메바로 돌아가도 남는 게 있을까? 러시아 인형 마트리오시카처럼, 아무리 겹겹이 포개져 있을지라도, 들어내고 들어내면 결국 남는 것은 빈 공간뿐 아닌가?

35억년 동안 자기라고 알고 있던 것이 떨어져 나갔다. 부모인 줄 알았던 원수가 쫓겨났다. 고통의 원인이 사라졌다.

수보리야, 그러므로, 여래는 ‘제일바라밀은 제일바라밀이 아니라 다만 이름이 제일바라밀일 뿐’이라고 설한다. 수보리야, ‘인욕바라밀을, 여래는 인욕바라밀이 아니라 다만 이름이 인욕바라밀일 뿐’이라고 설한다.
으뜸가는 바라밀을 행했어도 으뜸가는 제일바라밀이라는 실체가 있는 것은 아니다. 아무리 인욕을 행했어도 거기에는 현상이 있을 뿐이지 (인욕을 행한) 주체는 없다. 때와 환경의 연기작용일 뿐이지 주체는 없다. 이렇게 보아야 구속으로부터 벗어난다.

수행자는 만길 높이 절벽에서 몸을 던진다. 그리고 자유를 얻는다. 절벽이 정체성이다. 설산동자가 절벽에서 몸을 던지고도 살아난 것은, 낡은 자기(마음)는 죽었지만 새로운 인식으로 거듭났기 때문이다. ‘제행무상 시생멸법 생멸멸이 적멸위락’이 의미하는 바이다. 이 게송이 사람을 잡아먹는 무시무시한 야차의 모습으로 나타난 이유는, 정체성의 상실이 죽는 것만큼이나 두려운 일이기 때문이다. 제행무상이 야차이고 적멸위락이 거듭남이다.

강병균 포항공대 수학과 교수 bgkang@postech.ac.kr
 

[1407호 / 2017년 9월 13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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