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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1. 신달자의 ‘헛신발’

기자명 김형중

허공의 꽃을 실제로 착각하는 중생
헛신발 의지해 살아가는 삶에 비유

여자 혼자 사는 한옥 섬돌 위에
남자 신발 하나 투박하게 놓여 있다

혼자 사는 게 아니라고
절대 아니라고
남자 운동화에서 구두에서
좀 무섭게 보이려고 오늘은 큰 군용 신발 하나
동네에서 얻어
섬돌 중간에 놓아두었다

몸은 없고 구두만 있는 그는 누구인가
형체 없는 괴귀(怪鬼)
다른 사람들은 의심도 없고 공포도 없는데
아침 문 열다가 내가 더 놀라
누구지?
더 오싹 외로움이 밀려오는
헛신발 하나

자신을 지키는 허세인 헛신발
마음속 믿을만한 우상과 같아
깨닫고 보면 허깨비같은 인생
내 헛신발 무언지 돌아보게 해

필자의 고모가 젊은 나이에 시골 면장 집에 시집가서 딸만 둘을 낳고 청상으로 수절하며 평생을 홀로 살고 있다. 그때는 여인에게 수절이 최고 윤리덕목이었다. 고모님은 평생을 그렇게 헛신발에 의지해서 사셨다. 고모네 집 토방 댓돌 위에 놓인 군용워커가 생생하게 떠오르게 하는 시이다.

저 허깨비 같은 군화가 그래도 당신의 예쁜 두 딸을 지켜줬다고 생각하신 고모님이다. 물에 빠지면 지푸라기라도 잡는다고 평생 힘이 되어주고 의지처가 된 헛신발이다.

신달자(1943~현재) 시인은 자신의 의지처가 되고 힘이 되어줘야 할 남편이 젊은 나이에 뇌졸중으로 쓰러졌다. 남편은 평생의 짐이었다. 그런 어려운 환경에서 무시당하지 않고 자신을 지키기 위하여 허세인 헛신발을 집 섬돌 중간에 놓아두었다. 어쩌면 마음속에 자신이 믿을만한 우상을 정해놓고 남정네의 유혹을 뿌리쳤을 것이다. 그 헛신발이 시인을 최고의 시인으로 키웠다.

“혼자 사는 게 아니라고/ 절대 아니라고/ 남자 운동화에서 구두에서/ 좀 무섭게 보이려고 오늘도 큰 군용 신발 하나/ 동네에서 얻어/ 섬돌 중간에 놓아두었다” 2연의 이 시구는 젊은 과부가 연약한 마음을 숨기고 강인한 척 하는 마음을 사실적으로 잘 묘사하고 있다. 신달자 시인의 시는 일상사의 이야기를 평이한 어법으로 표현하면서도 예리하고 기발하게 삶의 깨달음을 드러내서 독자의 심금을 울린다.

우리는 누구나 한 켤레 쯤 헛신발을 가지고 산다. 이웃에게 가난하다고 무시당하지 않으려면 안산에 있는 땅도 가끔은 챙겨야 하고, 우리 절 스님 자랑이라도 해야 허전한 마음이 안정을 이룬다. 헛신발은 진짜 길을 걸을 때 싣는 신발이 아니라, 우리 집에 사람이 살고 있다고 속이는 가짜 허깨비 신발을 뜻한다. 헛신발은 우상이며 허상을 상징한다.

인간은 불안하다. 태초에 공포가 있었다. 무지하기 때문에 벼락 천둥이 치면 공포에 떨었다. 무지하기 때문에 불안하고 무언가에 의지하고 귀의하였다. 본래 없는 신을 있다고 굳게 믿고 의지하고 신앙하면서 사는 사람이 있다.

헛신발이라도 없으면 남에게 무시당하고 괄시당하니 누가 물어보지도 않은 헛자랑을 한다.

내 깜냥대로 잘났으면 잘난대로 못났으면 못난대로 살면 된다. 폼 잡고 강남 스타일 위세부리는 것이 헛신발이다. 마지막 연에서 “다른 사람들은 의심도 없고 공포도 없는데/ 아침 문 열다가 내가 더 놀라/ 누구지?/ 더 오싹 외로움이 밀려오는/ 헛신발 하나”라고 결구하였다. 시인은 비로소 헛신발에 의지해서 살아온 삶에 대하여 깨닫고 스스로 놀란다. 어리석은 중생은 허공의 꽃을 실제라고 착각하고 바라보고 살아간다. 깨닫고 보면 꿈이요 허깨비같은 인생이다. 무상하고 덧없는 삶이다.

어리석은 여인이 밤새도록 도둑을 내 남편인줄 알고 보듬고 잠을 잤다는 경전의 말이 있다. 인간은 누구나 하나쯤 헛신발을 가지고 산다. 잘못된 믿음인 법집(法執)을 고집하는 사람이 있다. 이 시를 감상하면서 나의 헛신발은 어디에 있는가 생각해 보자.

김형중 동대부여중 교장·문학박사 ililsihoil1026@hanmail.net
 

[1407호 / 2017년 9월 13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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