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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 한국불교사 시대구분론 ③

중국불교 의존 수준 못 벗어났다는 일제 식민사관 입각

▲ 일본인 학자에 의해 이뤄진 최초의 체계적인 한국불교통사인 누카리야 카이텐의 ‘조선선교사’의 목차 부분.

이상 박한영·이능화·권상로 등 3인의 한국불교사 시대구분론에서 보여주는 역사의식의 공통점은 자신들이 살고 있는 당대의 불교에서 그때까지의 침체를 벗어나 부흥시킬 수 있다는 새로운 가능성을 모색하고 있었다는 점이다. 불교계몽운동가·불교개혁가로서의 공통된 견해였다고 평가할 수 있다.

조선총독부 자료조사 토대로
서구 학문 안목 갖춘 학자들
한국불교사 연구성과 선보여

누리카야 쓴 ‘조선선교사’는
방대한 자료섭렵 돋보이지만
불교 전통·계승에는 무관심

에다 토시오도 한국불교 매진
이전 학자들 시대구분론 종합
한국불교사 부정적 인식 한계

그러나 대한제국과 조선총독부의 불교정책, 교육기관의 설치, 원흥사와 각황사의 설립, 통일기관의 출현 등 현상적인 사실만에 의거하여 불교 발전을 낙관하는 자세는 역사의식의 부족이라는 문제점을 나타내 주는 것이다. 이능화와 권상로 등이 처음부터 일제의 식민지 통치에 적극적으로 동조하고 협력하려는 의도는 아니었다고 하더라도 조선총독부의 불교정책의 의도와 불교계의 상황을 정확히 인식하지 못하고 피상적으로 평가한 것은 근대 불교사학의 역사인식의 한계성으로 지적되지 않을 수 없다.

이능화가 1928년 조선총독부에서 설치한 조선사편수회에 참여하여 식민지사학의 성립에 협력하였던 사실이나, 1943년에 간행된 권상로의 ‘임전(臨戰)의 조선불교(朝鮮佛敎)’(卍商會)에서 일제의 침략전쟁에 호응하는 글을 발표하였던 사실 등은 어쩌면 예견된 일이었는지도 모른다. 그리고 이러한 불교사 시대구분론에서 나타난 역사인식 문제는 일제강점기 대다수의 불교인들이 보여 주었던 역사의식 부족이라는 불교계 상황과도 무관하지 않았다. 결국 이러한 사실은 불교 발전의 장애가 되었을 뿐만 아니라 근대 불교사학의 역사인식 성장에 한계를 가져다 준 것이었다.

한편 1910년대 불교개혁운동과 함께 출발한 한국인 연구자들에 의한 근대적인 불교사학 연구가 서서히 발아하여 시대구분론에서 보여주는 바와 같이 불교사의 체계적인 이해가 추구되고 있는 동안, 조선총독부의 조직적인 자료조사 사업과 서구적 학문의 안목을 갖춘 일본인 학자들에 의한 한국불교사 연구는 한 단계 앞서 이미 본궤도에 올라가고 있었다.

일제강점기 일본인 학자들에 의한 한국불교사의 연구성과 가운데 가장 뛰어난 업적으로는 다카하시 토오루(高橋亨, 1877~1966)의 ‘이조불교(李朝佛敎)’(寶文館, 1929), 오야 도쿠죠(大屋德城, 1882~1950)의 ‘고려속장조조고(高麗續藏雕造攷)’(便利堂, 1937), 누카리야 카이텐(忽滑谷快天, 1867~1934)의 ‘조선선교사(朝鮮禪敎史)’(春秋社, 1930) 등 3편을 꼽을 수 있다. ‘이조불교’는 시대별의 연구, ‘고려속장조조고’는 분야별의 연구, 그리고 ‘조선선교사’는 통사의 저서로서 각각의 대표적인 저술인데, 일제강점기뿐만 아니라 오늘날까지도 커다란 영향을 미치고 있는 업적으로 평가된다.

이 가운데 특히 ‘조선선교사’는 일본인 학자에 의해 이루어진 최초의 체계적인 한국불교통사로서 주목된다. 누카리야는 일본 조동종의 승려로서 도쿄제국대학의 박사학위 논문으로 제출한 ‘선학사상사(禪學思想史)’(1925)는 선종사 분야의 명저로 평가되었다. 그가 한국불교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고마자와(駒澤)대학에서 조선불교 강의를 담당하게 되면서부터였다. 그는 1929년 6~8월 사이에 한국사찰의 현황을 조사하고, 다음 해 ‘조선선교사’를 간행하였다. 이 책은 고마자와대학에서 강의한 내용을 정리한 것인데, 한국불교사의 흐름을 교종과 선종, 특히 선종의 역사를 중심으로 4시기로 시대구분을 하면서 각 시대 불교를 특징짓고 있다. 방대한 자료의 섭렵과 일관된 이해체계의 설정은 이능화의 ‘조선불교통사’에 대비되는 업적이라고 아니할 수 없다.

누카리야는 한국불교사를 교학전래시대(敎學傳來時代), 선도울흥시대(禪道蔚興時代), 선교병립시대(禪敎竝立時代), 선교쇠퇴시대(禪敎衰頹時代) 등 4시기로 구분을 하고, 1910년 이후의 근대불교사에 대해서는 침묵하였다. 누카리야의 4시기 구분은 대체적으로 이능화의 구분과 거의 일치함을 보아 그 영향을 직접적으로 받았음을 알 수 있다. 즉 이능화의 제1 경교창흥시대는 교학전래시대, 제2 선종울흥시대는 선도울흥시대, 제3 선교병륭시대는 선교병립시대, 제4 선교통일시대는 선교쇠퇴시대에 대응되어 거의 일치함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세부적으로 시대명칭과 시기 설정에서는 약간의 차이를 보여주고 있다.

▲ 1928년부터 1957년 사망할 때까지 일생 동안 한국불교사를 연구했던 에다 토시오의 ‘조선불교사의 연구’.

우선 제1기 경교창흥시대를 교학전래시대로 명칭을 바꾸고 하한연대를 헌덕왕대부터 올려서 소수림왕 2년(372)부터 경덕왕 23년(764)까지 대략 393년간을 설정하였다. 그리고 제2 선종울흥시대는 선도울흥시대로서 명칭은 같지만, 시기는 혜공왕 초년(765)이후 경순왕 말년(936)까지 대략 191년을 설정하여 이능화의 200년과 약간의 차이를 보이고 있다. 이어 제3 선교병륭시대는 선교병립시대로서 명칭은 같지만, 시기는 고려태조 19년(936)부터 공양왕 2년(1391)까지 대략 455년을 설정하여 이능화의 400년과 약간의 차이를 보이고 있다. 다음 제4 선교통일시대는 선교쇠퇴시대로 명칭을 바꾸어 조선시대 불교의 쇠퇴를 강조한 점이 주목되고, 시기는 조선태조 원년(1392)부터 융희 4년(1910) 조선왕조의 멸망까지 대략 519년을 설정하여 이능화의 세종대부터의 500년설과 약간의 차이를 보이고 있다.

그러나 가장 커다란 차이점은 누카리야가 일제에 의한 한국병합 이후의 근대불교사를 제외시키면서 1910년 당시 사찰 1300여개, 승려 7100인이 존재하는 조선불교는 폭정으로 멸망하게 되었다는 말로 끝맺고 있었던 점이다. 이능화가 한국불교를 선교양종이 양립과 통일을 겪으면서 명맥을 유지하고 전통을 계승해가는 것으로 인식하고 장래의 불교부흥을 기대하면서 불교인의 책임을 토로하고 있었던 것에 비하여 누카리야는 선교가 쇠퇴하고 불교가 멸망한 것으로 끝맺음으로써 불교전통의 계승과 발전에는 관심이 없었음을 나타내주었다. 이로써 1910년대 일제강점 전후부터 근대적 의미의 한국불교사 연구가 시작되었는데, 한국인 학자와 일본인 학자 사이에는 역사인식의 면에서는 근본적인 차이가 있었음을 알 수 있다.

누카리야는 ‘조선선교사’의 서문과 범례에서 도움을 준 학자로서 정황진(鄭晄震)·권상로·이능화·다카하시 토오루 등의 영향을 받았음을 명시하고 있었으나, 또한 한국불교의 역사적 성격을 언급하면서는 “조선불교의 많은 점은 지나불교(支那佛敎)의 연장이며, 선종 같은 것도 또한 지나선종의 직수입에 지나지 않다”라고 하여 부정적인 인식을 그대로 나타내주었다. 누카리야는 조선총독부와 직접적인 관련이 없었으면서도 한국역사를 정체성(停滯性)과 타율성(他律性)으로 규정한 일제의 식민사관의 인식에서 한발작도 벗어나지 못하였음을 알 수 있다.

한국불교의 역사적 성격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은 누카리야만이 아니고, 다카하시 토오루의 “고착성과 종속성”, 오야 도쿠죠의 “대륙불교의 연장으로서의 독창성 결여, 의천불교의 송조불교의 수입에 지나지 않은 점” 등의 표현에서 볼 수 있는 바와 같이 일본인 학자들의 공통적인 모습이었다. 또한 누카리야는 조동종의 입장에서 조선후기 전개된 선 논쟁에서 조동종보다 임제종을 더 높은 단계로 배치한 것에 대해 격렬한 어조로 비판하는 종파의식을 보여주고 있었다. 조동종과 임제종의 관계에 대해서는 임제종을 정통으로 인식하고 있던 이능화·권상로·김영수 등 한국인 학자들과 분명한 차이를 보여주고 있었다.

한편 일제강점기 혜화전문학교 교수로 재직하면서 한국불교사 연구에 전념한 대표적인 학자는 에다 토시오(江田俊雄, 1898〜1957)였다. 그는 1922년 조동종대학을 졸업하고, 1926년 도오호구(東北)제국대학의 우이 학쿠쥬(宇井伯壽)와 스즈키 무네타다(鈴木宗忠) 등에게서 인도불교사와 중국불교사 등을 폭넓게 공부하였다. 1928년 경성의 중앙불교전문학교(뒤의 혜화전문학교) 교수로 부임하면서 한국불교사 연구를 시작하여 1957년 사망할 때까지 일생동안 계속하였다. 그는 권상로와 함께 ‘이조실록불교초존’ 20권을 유인물로 펴냈으며, 조선시대의 불서언해와 불서간행의 연구에 집중하였다.

해방 뒤 일본에 귀국하여서도 고마자와대학의 교수로 취임하여 한국불교사 연구를 계속하여 다양한 주제의 논문들을 잇달아 발표하였다. 이 논문들은 그의 사후 제자인 나카기리 이사오(中功吉)에 의해 ‘조선불교사의 연구’(國書刊行會, 1977)로 집대성되었다. 이로써 에다 토시오의 한국불교사에 대한 관심의 폭이 상당히 넓었던 것을 알 수 있는데, 특히 만년에 집필한 한국불교사의 개설과 역사적 성격에 관한 3편의 글은 그의 한국불교사 연구의 결론으로서의 성격을 가진 것이다. 에다 토시오의 한국불교사 개설에 관한 3편의 논문 가운데 ‘조선의 불교’(講座佛敎Ⅳ, 1958)는 그가 세상을 떠난 지 1년 뒤에 발표된 것이며, ‘조선불교고찰서설’은 미발표의 유고이다. 이 논문들은 한국불교사의 시대구분과 역사적 성격론 등 한국불교사에 대한 인식을 종합적으로 서술한 것으로서 주목된다.

에다 토시오는 한국불교사를 준비기(準備期)의 불교-삼국시대(372~668), 흥륭기(興隆期)의 불교-신라시대(669~935), 난숙기(爛熟期)의 불교-고려시대(918~1392), 쇠미기(衰微期)의 불교-이조시대(1393~1910), 근대(近代)의 조선불교(1911~1957) 등 5시기로 구분하였는데, 대개 왕조의 교체, 그리고 흥성과 쇠망의 과정을 기준으로 하였음을 알 수 있다. 그리고 준비기의 불교-삼국시대는 고구려·백제·신라의 순서로 나누었으며, 흥륭기의 불교-(통일)신라시대는 교학불교가 융성한 전기와 실천불교인 선불교가 유행한 후기로 세분하였다. 다음 난숙기의 불교-고려시대는 불교의 내용에 따라 태조의 신앙, 고려판대장경, 선종확립, 불교의 도교화, 선종의 거장 등의 항목을 설정하여 연대 순서를 고려하면서 불교내용별로 구분하였다. 그 다음 쇠미기의 불교-이조시대는 3기로 나누어 불교공인기(1393~1494), 불교점쇠기(1495~1649), 불교쇠퇴기(1650~1910)로 구분하였는데, 조선시대 불교사의 3기 구분은 다카하시 토오루의 ‘이조불교’에서의 구분을 그대로 따른 것이다. 마지막으로 근대의 조선불교는 1911년 사찰령 반포부터 1929년 조선불교선교양종대회와 종헌제정까지만 다룸으로써 근대불교사 일부의 서술에 그치었고, 특히 1945년 해방이후의 불교사에 대해서는 전연 침묵하였다.

에다 토시오의 한국불교사 시대구분론은 상당히 세밀하여 이능화·권상로·다카하시 토오루·누카리야 카이텐 등의 앞서의 학자들에 의해 제기된 시대구분론을 종합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한국불교의 특징을 구체적으로 지적한 다음 그 결론으로서 일본불교와 같이 중국불교를 모태(母胎)로 하였지만, 일본의 가마쿠라(鎌倉)불교와 같이 민족에 의해 소화되어 재창조된 독특한 색채를 가진 종교가 되지 못하고, 항상 중국불교에 의존하고 그 복사의 경지를 벗어나지 못하였다고 하였다. 이로 보아 그의 한국불교사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은 일제 관학자나 선배 불교학자들의 식민지사관에 입각한 평가와 조금도 다름이 없었으며, 그러한 입장은 해방된 뒤에도 전혀 바뀌지 않았음을 알 수 있다.

최병헌 서울대 명예교수 shilrim9@snu.ac.kr
 

[1408호 / 2017년 9월 20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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