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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 초열지옥이 던지는 경고의 의미

기자명 김성순

진리 변형시키는 것도 지옥 업인

초열지옥의 열세 번째 별처지옥인 흑철승표인해수고처(黑鐵繩摽刃解受苦處)’ 역시 사견을 믿고, 남들에게 적극적으로 설파하며, 즐겨 행하는 외도들이 떨어지는 지옥이라고 할 수 있다. ‘정법념처경’에서는 이 별처지옥으로 떨어지는 업인이 되는 사견을 “일체 죄복이 인연에 있으며, 인이 되는 곳에서 모두 죄복을 얻는다(一切罪福在因緣中, 所因之處, 皆得罪福)”고 믿고 즐겨 행하는 것이라고 밝히고 있다. 중생 스스로가 지은 업을 모든 죄복의 근거로 보는 불교의 입장에서는 이를 사견으로 규정하고 있는 것이다.

전생에 삿된 견해 가졌다면
옥졸이 예리한 쇠칼로 쪼개
불교계 내부에도 경고 의미
기존 교의 왜곡 차단 방편

그렇다면 이 ‘흑철승표인해수고처’에서는 어떠한 고통으로 전생에 사견으로 죄업을 소멸시키게 되는 것일까? 먼저 지옥이름에서 볼 수 있듯이 검은 쇠오랏줄로 죄인의 몸을 묶는 것이 이곳의 특징이라고 할 수 있다. 옥졸은 묶인 죄인의 몸을 불꽃이 타는 날카로운 쇠칼로 겨자씨만한 틈도 없이 극히 미세하게 쪼갠다. 더 이상 가를 것도 없이 분해된 죄인의 몸은 어느 틈엔가 다시 붙어서 끊임없이 실오라기처럼 갈리고, 베이며, 나눠지는 고통을 겪어야 한다. 이러한 흑철승표인해수고처의 고통은 외도 논사들에 의해 정미하게, 마치 메스로 가르듯 논박 당했던 불교 측의 스트레스가 어느 정도 반영되어 있지 않나 생각되기도 한다.

다음 초열지옥의 열네 번째 별처지옥인 ‘나가충주악화수고처(那迦蟲柱惡火受苦處)’는 “이 세상이 변함없이 항상 되고, 모든 법도 항상 되며, 언제나 부서짐이 없는 것”이라고 믿고 적극적으로 다른 이들에게 이러한 사견을 전달하는 이들이 떨어지게 되는 지옥이다. 불교 측에서는 제행무상의 진리를 정면으로 부인하는 이들에게 물리적인 제제를 가할 수 없으니, 이렇게 고통스러운 지옥으로 떨어지게 하는 교의적 징벌을 가했던 것이리라 짐작해본다.

그렇다면 이 ‘나가충주악화수고처’에서는 외도들을 위해 어떠한 고통을 준비해놓고 있는 것일까? 죄인이 ‘나가충주악화수고처’에 들어서자마자 쇠기둥이 머리에서부터 박혀 밑으로 나오는데, 위쪽 기둥의 반은 머리 위로 뚫고 나오고, 아랫부분의 반은 땅에 박히게 된다. 결국 사람 몸의 중앙을 뚫고 들어간 기둥이 그대로 땅 속에 박혀 있는 형태이다. 그 다음엔 나가충이라는 벌레가 죄인의 몸속에서 생겨나와 근육과 살, 골수, 힘줄, 뼈 등 모든 기관을 파먹다가, 마지막에는 잘못된 사견을 사람들에게 전하고 다닌 혀를 뽑아 지옥의 개에게 던져주는 방식으로 징벌을 가한다.

초열지옥의 열다섯 번째 별처지옥인 암화풍처(闇火風處)는 요즈음 미국의 플로리다주 사람들에게 두려움과 고통을 주고 있는 허리케인을 연상하면 될 것 같다. 이 암화풍처의 죄인들은 허공에서 의지할 곳도 없이 날카로운 칼바람에 의해 바퀴처럼 빨리 돌아 다른 이들이 그의 모습을 제대로 볼 수조차 없을 정도라고 한다. 이 태풍이 끝나면 다른 강한 바람이 불어와 죄인의 몸을 모래처럼 흩어지게 만드는데, 이렇게 육신이 흩어졌다가도 어느 틈에 다시 모여서 붙고, 붙었다가도 다시 바람에 불려서 먼지처럼 흩어지는 것을 끊임없이 반복하게 된다.

이 암화풍처의 죄인들은 전생에 “모든 법에는 항상된 것과 항상되지 않은 것으로 나뉘는데, 항상되지 않는 것은 인간의 몸이요, 항상된 것은 사대(지·수·화·풍) 요소이다”라는 사견을 믿고 전한 악업으로 인해 떨어지게 된 이들로서, 진리를 변형시키는 것 역시 지옥의 업인이 되는 것을 보여준다.

다음 마지막 열여섯 번째 별처지옥인 금강취봉처(金剛嘴蜂處) 역시 “항상된 법은 원인이 없고, 움직이지 않으며, 변하지 않고, 마치 허공처럼 지을 수 없는 것”이라고 믿는 사견을 가진 자들이 떨어지게 되는 지옥이다. 그 외 자세한 금강취봉처의 고통상에 대한 서술은 생략한다.

전체적으로 초열지옥의 근본지옥과 별처지옥은 외도들은 물론, 불교 내부 전체에도 경고를 울리는 의미가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는 아무래도 경전을 해독할 수 있는 불교 내부의 승려들이 기존의 교의를 윤색하고 변형시켜서 사견을 만들어낼 가능성을 차단하고자 했던 의도도 있지 않았을까 생각되기 때문이다.

김성순 서울대 종교문제연구소 연구원 shui1@naver.com
 

[1408호 / 2017년 9월 20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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